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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1월 18일 05시 42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1월 18일 05시 43분 KST

비서들이 '조합'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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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모두의 경영’이란 모바일 게임이 신체 사이즈와 함께 노출이 심한 복장을 한 캐릭터로 여성 비서를 표현해 논란이 됐다. 결국 개발업체는 관련 내용을 수정하겠다고 밝혔지만, 중견기업에서 비서로 일하는 김희선(가명·29)씨는 “이게 비서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인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다른 직원들과 달리 (우리 회사에선) 비서실 여직원들에게만은 항상 치마를 입어야 한다는 복장 규정이 있다”며 “왜 비서 업무와는 전혀 관계없는 복장 규정이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임원실을 들락거리는 방문객들은 ‘치마가 너무 긴 게 아니냐. 그래서 (임원이) 일할 맛이 나겠느냐’는 등의 불쾌한 농담을 수시로 던지기도 한다. 김씨는 “불쾌하다고 불쾌한 내색을 할 수조차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한 대기업 계열사에서 비서로 일하는 오미나(가명·24)씨는 지나치게 ‘개인적인 지시’를 하는 상사 때문에 속앓이를 했다. 상사는 최근 대학교에 합격한 아들의 해외여행 일정표를 짜라는 지시를 오씨에게 내렸다. 오씨는 “아들 일정표를 짜려고 30쪽짜리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수차례 만들었다. 이런 일을 하려고 비서가 된 건지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상사가 이사갈 때는 이삿짐을 싸고, 자녀가 결혼할 때는 결혼 준비를 해주는 일이 다반사라는 게 오씨의 얘기다. 그는 “이건 아닌데 싶어도, 어디 하소연할 데조차 없는 게 더 답답하다”고 말했다.

전문비서들이 자신들의 열악한 처우를 바꾸기 위해 ‘조합’을 만들었다. 김씨와 오씨를 비롯한 전·현직 비서 80명은 지난달 직능조합 형태로 비서들의 모임인 ‘전문비서협회’를 출범했다. 노경은 전문비서협회 초대 회장은 “지금까지 비서들이 부조리한 현실에 처해 있으면서도 집단적인 목소리를 낼 통로가 부족했다”며 “앞으로 비서들이 전문 직업인으로서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구심점 역할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전국에 10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비서직 대다수가 비정규직이어서 인사팀이나 노조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고 한다. 한국팔로워십센터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10월 한달 동안, 비서 채용 전체의 76.1%가 파견직이나 계약직 같은 비정규직 형태였다. 협회는 수행기사를 수시로 폭행한 몽고식품 회장 쪽에 항의 서한을 보낸 데 이어, 다음주부터는 기업이 정규직 비서를 채용할 경우 협회 차원에서 해당 업체에 비서 전문교육을 제공하는 등 정규직 비서 채용을 장려하는 캠페인을 벌일 계획이다.

비서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바꾸는 것도 이들이 꼽는 중요한 과제다. 한 중견기업에서 정규직 비서로 일하는 조은영(가명·30)씨는 “비서는 전화받고 차나 따라주는 사람 정도로 인식되고 있지만, 실제로 비서들이 하는 일은 생각보다 다양하고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경영진의 눈과 귀, 손과 발이 돼서 경영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게 비서의 역할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단지 비서라는 이유로 초면부터 반말을 하는 등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협회 활동을 통해 비서에 대한 인식이 바뀌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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