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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책 7권으로 돌아보는 신영복

  • 김병철
  • 입력 2016.01.17 12:52
  • 수정 2016.01.17 12:55
ⓒ돌베개

신영복 교수는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돼 20여년의 수형생활을 마치고 1988년 8월 세상 밖으로 나오며 그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펴냈다. 깊은 사색과 공부에서 길어올린 통찰로 깨우침을 주었고,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라며 새 세상을 향한 희망과 연대, 우정을 힘주어 말했다.

시대의 어른이자 스승으로서 그가 펴낸 여러 책들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대표작이자 첫책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특히 ‘현대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하며 지금까지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평소 ‘사람과의 관계’를 중시하던 그는 지난해 마지막으로 펴낸 책 <담론>에서 ‘사람이 처음이고 끝’이라는 ‘석과불식’(碩果不食)을 강조했다.

간장 게장을 평소 잘 먹다가 어떤 시를 읽고 엄마 꽃게의 최후가 생각나서 먹기 힘들었다는 에피소드에서는 그의 섬세하고 다감한 심성을 확인할 수 있다.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 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안도현 시, 스며드는 것)

2014년 성공회대 마지막 강의

2006년 정년퇴임 이후 지난 겨울학기까지 한 강의 마지막 시간, 그는 “언약은 강물처럼 흐르고/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라는 구절을 좋아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 언약들이 언젠가는 여러분의 삶의 길목에서 꽃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426~427쪽, <담론>) 다음달에는 서화에세이 <처음처럼> 개정판이 돌베개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1.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옥중서간

(1988년 초판 햇빛출판사, 1998년 증보판 돌베개)

20년 20일 동안의 옥중생활이 낳은 ‘신영복식 사색’의 결정판이며 옥중문학의 백미라고 일컫는 그의 대표작이다. 1980년대 말 출간되어 시대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글귀로 독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자기 성찰이라는 맑은 거울로 시대의 반듯한 초상을 그려낸 이 책은 첫 출간된 뒤 10년만에 증보판이 나왔고, 20대 청년 시절 지은이의 생각과 징역 초반의 면모까지 살펴볼 수 있다. “한 젊음이 삭고 녹아내려 키워낸 반짝이는 사색의 기록”(김명인 문학평론가, 인하대 교수)이라는 평을 받았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은 잔지 37도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6쪽)

“사랑이란 생활의 결과로서 경작되는 것이지 결코 갑자기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한 번도 보지 않은 부모를 만나는 것과 같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까닭도 바로 사랑은 생활을 통하여 익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22쪽)

“고립되어 있는 사람에게 생활이 있을 수 없다. 생활이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적·정치적·역사적 연관이 완전히 두절된 상태에 있어서의 생활이란 그저 시간의 경과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이 물질의 운동양식이라면 나는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바위처럼 풍화당하는 하나의 물체에 불과하다.”(23쪽)

”그러나 생각해보면 ‘창문’보다는 역시 ‘문’이 더 낫습니다. 창문이 고요한 관조의 세계라면 문은 힘찬 실천의 현장으로 열리는 것입니다. 그 앞에 조용히 서서 먼 곳에 착목(着目)하여 스스로의 생각을 여미는 창문이 귀중한 ‘명상의 양지(陽地)’임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결연히 문을 열고 온몸이 나아가는 진보 그 자체와는 구별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81년 세모에.”(194쪽)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한 법입니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적 연대가, 실천적 연대보다는 입장의 동일함이 더욱 중요합니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 형태입니다.”(313쪽)

2. 엽서

(1993년 너른마당 초판 출간, 2003년 돌베개 재출간)

신영복 선생의 육필원고 영인본. 애초 신영복 선생의 옥중서한을 한두장씩 받았던 친구들이 원본을 본인에게 돌려주고 초고와 같은 영인본을 만들어 나누어 가지기로 하면서 책을 찍어낸 데서 시작했다. 책 일부가 서점을 통해 일반 독자들에게 전달되어 널리 번졌지만 초판 소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절판되었다. 독자들의 출간 요구가 빗발쳐 헌책방에 나온 책이 고가의 희귀본으로 팔리기도 했다. 2003년 돌베개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증보판을 내면서 230여편의 엽서와 조각글, 그림을 실은 <신영복의 엽서>로 재출간했다.

3. 나무야 나무야

(1996년, 돌베개)

감옥에서 세상에 나온 뒤 8년 만에 선보인 책. 허난설헌의 무덤, 소광리 소나무숲, 백담사, 모악산 등 국내 여러곳을 여행하며 쓴 25편의 글들이다.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믿음을 갖고 ‘메마른 땅을 지키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보내는 헌사이기도 하다. 공부와 지식 창출에 관심을 기울인 그는 “진정한 지식과 정보는 사랑과 봉사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으며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서서히 성장해가는 것”임을 강조했다.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이 세상을 조금씩 바꿔갑니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잘 맞추는 사람인 반면에 어리석은 사람은 그야말로 어리석게도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세상은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으로 인하여 조금식 나은 것으로 변화해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직한 어리석음, 그것이 곧 지혜와 현명함의 바탕이고 내용입니다.(82쪽)

4. 더불어숲

(1998년 중앙M&B 첫 출간, 2015년 돌베개 개정판)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한 뒤 10년 만인 1998년 1, 2권으로 나누어 처음 펴냈다. 1997년 한해 동안 ‘새로운 세기’라는 화두를 들고 22개국을 여행한 기록이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향해 출항한 우엘바 항구를 시작으로 역사의 현장을 두루 밟은 그는 자본주의의 오만, 무지, 반인간주의를 확인했다. 강자의 지배 논리로는 지속가능한 삶이 어렵다고 판단한 그는 내란의 세기인 20세기를 뒤로 하고 “갈등과 비극을 넘어설 수 있는 최소한의 기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진정한 용서가 역사의 진보이자 정의라고 거듭 말한다.

“우리가 많은 유적들 앞에서 매번 확인한 것은 장구하고 육중한 역사의 무게였습니다.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근본에 있어서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확인은 매우 쓸쓸한 것이었습니다. 과거의 청산은 그만큼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그렇고, 완고한 현실의 구조가 그렇습니다. 떠난다는 것은 지금까지 우리들이 쌓아 온 ‘생각의 성(城)’을 벗어나는 것일 뿐 아니라 그 성을 허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12쪽)

“우리는 이겼다’는 외침과 ‘나는 이겼다’는 외침 사이에는 참으로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이 차이가 우리들로 하여금 쓸쓸한 감상에 젖게 하는 까닭은 아마 아직도 ‘내’가 ‘우리’를 이겨야 하는 것이 바로 오늘의 현실이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철학이 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46쪽)

5. 강의

(2004, 돌베개)

동양의 고전을 통해 자본주의 체제가 양산하는 반인간적 소외, 인간관계의 황폐화 극복의 길을 찾으려 했다. 그의 고전 독법은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면서 동시에 미래의 대화를 선취하는 것”이었다. 대표적인 유교 고전인 <시경><서경><초사><주역><논어><맹자><노자><장자><묵자><순자><한비자> 등을 관통하며 ‘관계론’으로 정리한다. “사람 사이에 관계를 맺고 또 잘 소통하는 것”이 동양 사상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옛말에 이르기를 ‘군자는 물을 거울로 삼지 않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다’고 했다. 물을 거울로 삼으면 얼굴을 볼 수 있을 뿐이지만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길흉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공격 전쟁이 이롭다고 하는 사람들은 어찌하여 지백과 부차의 일을 거울로 삼지 않는가? (사람을 거울로 상으면) 전쟁이야말로 흉물임을 일찌감치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382쪽)

6. 처음처럼-신영복 서화 에세이

(2007, 신영복 지음, 이승혁·장지숙 엮음, 랜덤하우스 코리아)

신영복 교수가 기존 발표한 서화작품들 가운데 가려 뽑은 글 160편과 그림 150컷, 글씨 30점으로 구성돼있다. 사랑과 그리움, 삶에 대한 사색, 생명에 대한 외경으로 가득하다. 인생의 우직함과 ‘늘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이라는 지은이의 따뜻한 조언을 만나볼 수 있다.

“서도의 격조는 기교가 아니라 어리숙함에서 나온다. 환동(어린아이로 돌아감)의 경지를 서도의 으뜸으로 친다. 어수룩함은 보는사람으로 하여금 자기도 그렇게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하고 격려한다. 그러므로 대교약졸의 서도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춘 최고의 예술이다.”(121쪽)

“붓글씨를 쓸때 한 획의 실수는 다음자로 보완하고 한자의 실수는 그 다음자로 감싼다 마찬가지로 한행의 결함은 그 다음행의 배려로 고쳐나간다 이렇게얻은 한폭의 서예작품은 실수와 사과와 결함과 보상으로 점철되어있다.” (163쪽)

7. 담론-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2015, 돌베개)

성공회대 석좌교수로서 신영복 선생이 2006년 정년퇴임 이후 지난 겨울학기까지 학생들과 함께한 ‘인문학 특강’을 중심으로 엮었다. 27살에 사형수가 된 그가 ‘살아가는 이유’로 꼽은 것은 깨달음과 공부였다. “공부는 살아가는 것 그 자체”요, “모든 살아 있는 생명의 존재형식”이며, 그 궁극적 목적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기존의 가치를 지키는 보루일 뿐인 중심부”가 아니라 “변방”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했다. “모든 존재는 고립된 불변의 존재가 아니라 수많은 관계 속에 놓여 있는 것이며, 그러한 관계 속에서 비로소 정체성을 갖게 된다”는 관계론을 중심에 두고, 나와 세계, 아픔과 기쁨, 사실과 진실, 이상과 현실, 이론과 실천, 자기 개조와 연대, 변화와 창조에 대해 얘기한다.

"변화는 결코 개인을 단위로, 완성된 형태로 나타나는 게 아니다. 모든 변화는 잠재적 가능성으로 그 사람속에 담지 되는 것이다. 그러한 가능성은 다만 가능성으로 잠재되어 있다가 당면의 상황 속에서, 영위하는 일 속에서, 그리고 함께 하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발현되는 것이다."(2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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