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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88' 마지막회가 보여준 지극히 현실적인 3가지

  • 강병진
  • 입력 2016.01.17 07:10
  • 수정 2016.01.17 12:09

1. 우리는 모두 아파트를 꿈꾼다.

‘응답하라 1997’은 1997년도에 살았던 10대의 이야기였다. ‘응답하라 1994’는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같은 하숙집에 살던 1994년도의 대학생 이야기다. 그리고 ‘응답하라 1988’은 ‘동네’의 이야기였다. ‘응답하라 1997’에서는 ‘이사’가 그리 큰 의미를 갖지 않았다. ‘응답하라 1994’에서도 하숙집을 떠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20년 넘게 한 동네에서, 그것도 자가주택을 갖고 살았던(물론 덕선이네는 셋방살이지만, 주인집과의 관계상 월세 오를 걱정이 없어 보이는 집이다), ‘응답하라 1988’의 사람들도 결국 집을 팔고 동네를 떠난다. 동네를 맨 처음 떠나는 사람들은 택이 아빠와 선우 엄마 가족. 덕선이는 나레이션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길동이 아저씨는 아줌마가 더 나이 들기 전에 새 아파트에서 살게 해준다며 가장 먼저 이곳을 떠났다.”

그리고 김성균-라미란 가족과 덕선이네도 판교로 떠난다. 극중에서는 “우리도 잔디도 밟고 바베큐도 해먹으면서” 살기 위해 넓은 판교로 떠난다고 했지만, 2015년을 사는 사람들은 이미 그 결과를 알고 있다. 성과장 집도, 김사장 집도 결국은 판교에서 산 집을 팔고 지금은 아파트에 살고 있을 것이다. (관련기사 | '판교'로 이사간 덕선이네는 나중에 얼마나 벌었을까?)

2. 그래서 한국에서 아파트가 들어서지 않은 동네는 무너진다.

‘응답하라 1988’이 마지막에 보여준 쌍문동 골목의 모습은 충격적이다. 벽에는 빨간색 페인트로 ‘철거’란 두 글자가 적혀있고, 대문은 다 뜯어져 있고, 거리에는 쓰레기가 나도는 황폐한 골목. 뉴스로 듣고, 실제로도 보았을 법한 풍경이지만 ‘응답하라 1988’에서도 볼 줄은 몰랐던 장면이다. 사람들은 아파트로 떠나고, 아파트가 아니었던 동네는 무너진다. 거의 집성촌이나 다름없는 동네를 이루었던 '쌍문동 봉황당 골목'도 예외일 수는 없다.

3. 그렇게 흩어진 동네 친구들도 더 이상 만나지 않는다.

마지막회에서 가장 이상한 부분은 동룡과 정환의 행방이다. 이들은 선우와 보라의 결혼식 장면 이후 사라진다. 캐릭터의 무게감을 보았을때, 그리고 ‘응답하라 1997’과 ‘응답하라 1994’가 항상 모든 캐릭터들의 미래를 다 보여주었고, 모든 캐릭터들에게 한 명씩의 짝을 붙여주면서 끝났던 걸 떠올려 볼 때, 의아한 부분이다. 보라와 아빠 성동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분량 조절에 실패한 탓일 수 있다. 2015년의 모습을 미리 보여준 덕선, 택, 보라 외에 나머지 캐릭터들의 현재를 갑자기 다른 배우들로 대체해 보여주는 게 드라마의 감정을 깨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40대의 선우도 이종혁의 목소리로만 등장한다.)

하지만 그런 드라마 제작 배경에 대한 의구심 없이 그냥 드라마 자체로만 본다면, 2015년이 된 지금, 친구들은 흩어졌을 게 분명하다. 그래서 간간히 소식만 듣는 중일 것이다. 덕선, 택, 선우, 보라는 겹사돈 관계로 맺어져 있기 때문에 지금도 만나면서 살 수 있다. 하지만 이사를 가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후에는 각자의 생활에 충실히 살면서 가끔씩 경조사때나 만나는 게 한국에서는 가장 현실적인 모습일 것이다. 혹시 드라마 제작진은 이처럼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드러내기 위해 정환과 동룡이를 사라지게 만든 게 아닐까? 직접적으로 이들의 현실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쌍문동 부모들 중 한 사람의 장례식이 열려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라도 생각하면서 아쉬움을 달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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