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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궁금하다, 우리 국제법 학자들이 입을 다무는 이유가

국제법을 공부하고 위안부 문제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는 학자라면 이번 합의의 형식과 내용을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문제를 심도 있게 비판할 수 있는 학자가 바로 국제법 학자들이다. 나의 설익은 입장에 그들이 나서 살을 붙여 준다면 뭔가 국제법적으로 정치한 입장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럼에도 왜 그들은 입을 다물고 있을까? 무슨 어려움이 있어서 그토록 말을 아끼고 있는 것일까?

  • 박찬운
  • 입력 2016.01.16 06:06
  • 수정 2017.01.16 14:12
ⓒASSOCIATED PRESS

지식인 사회에서 동료를 비판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비판하는 사람은 완전한가? 그도 불완전하긴 마찬가지인데 누가 누굴 비판한다는 말인가.

하지만 세상사, 완벽한 사람이 나올 때가지 기다릴 수는 없다. 내가 부족해도, 나도 비판의 대상이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걸 하는 게 내 운명이라면 받아들여야 한다. 오늘 나는 그런 심정으로 하기 힘든 말을 여기에 쓴다.

구랍 28일 한일양국 정부가 일본군위안부에 관한 합의를 한 뒤 나는 분에 넘치는 역할을 했다. 나는 대학교수 중 처음으로 그 합의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나는 6번에 걸쳐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그리고 그것들은 대부분 언론으로 퍼져나갔다.

내 입장의 골자는 간단한 것이다. 이번 합의는, 형식적으론 양국을 법적으로 구속할 수 있는 조약이 아닌 단순한 정치적 합의(선언)에 불과하고, 내용적으론 국제범죄로서의 전시 성노예 문제를 해결하는 국가 간 합의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의 견해는 학자적 양심으로 보면 정치한 연구를 토대로 발표한 게 아니었다. 그저 국제법을 공부한 사람으로서(나는 국제법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기초적 지식을 활용해 입장을 적시에 개진한 것에 불과하다.

나는 이런 입장을 내놓으면서 내심 이 견해가 우리 국제법 학자들을 추동해 본격적인 학문적 비판으로 연결되길 바랐다. 나는 원래 실무자 출신으로 국제법 이론에 일가를 이룬 사람이 아니다. 인권을 국제법적 시각으로 연구하는 교수일 뿐, 스스로 생각해 봐도, 연구역량이 많이 떨어지는 사람이다. 우리나라엔 국제법의 이론적 깊이에서 나와는 비교할 수 없는 기라성 같은 연구자가 즐비하다. 그들은 국제법을 본무대인 하버드에서, 옥스퍼드에서, 케임브리지에서, 파리에서 공부한 사람들이다.

나는 이분들이 이번 위안부 건에 대해 제대로 된 입장을 내놓아 주길 바랐다. 하지만 연말이 다가도록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몇 사람이 이 대열에 뛰어들었는데, 거명하면, 이용중 교수(동국대)가 한겨레신문에 내 의견과 유사한 칼럼을 썼고, 조시현 교수(전 건국대)가 어느 토론회에서 역시 유사한 발표를 했을 뿐이다. 이분들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애석하게도 국제법 학자들 사이에서, 이 두 사람이 우리나라 국제법 학계를 대표하는 분이라고는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런 생각도 했다. 연말연시라 기자들도 휴가에 들어갔고, 교수들도 대부분 휴식을 취할 테니, 전문가들의 입장을 담은 기사가 쉽게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그래서 나는 연초가 지나길 기다렸다. 이제 보름이 지난 오늘, 나는 이런 생각을 접어야겠다.

국제법 교수들이 바빠서 입장을 못낸 게 아니라 입장 내기를 포기했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 없다. 합의가 있은 지 보름이 넘었지만 우리나라 국제법 학회를 움직이는 교수들의 입장을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일부 교수가 외교부 소속의 국립외교원 주최 토론회에서 매우 실망스런 입장을 냈을 뿐이다.

국제법을 공부하고 위안부 문제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는 학자라면 이번 합의의 형식과 내용을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문제를 심도 있게 비판할 수 있는 학자가 바로 국제법 학자들이다. 나의 설익은 입장에 그들이 나서 살을 붙여 준다면 뭔가 국제법적으로 정치한 입장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나는 행동하고 그들은 뒤에서 이론을 만들고... 얼마나 좋은 역할분담인가?

그럼에도 왜 그들은 입을 다물고 있을까? 무슨 어려움이 있어서 그토록 말을 아끼고 있는 것일까? 국제법 학회에서 인정도 받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이 그렇게도 열심히 글을 쓰고 인터뷰를 하는 데, 그것을 지원하든, 아니면 논리적 비약이 있다고 비판을 하든, 뭔가를 해야 할 텐데, 왜 그들은 그것을 하지 않을까?

그들에겐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관심이 없다는 것인가? 이런 문제에 끼어드는 건 학자적 품위에 어긋난다는 것인가? 아니면 이 합의를 비판하면 정부와 껄끄러운 사이가 되니 그게 부담스럽다는 것인가?

법을 함께 공부해 온 나와 그들 사이에 이렇게 큰 의식의 차이가 있다는 게 놀랍다.

그래도 정말 궁금하다. 우리의 석학들이 입을 다무는 이유가.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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