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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음식시민들이여!

영국 소비자들은 파괴적인 조업방식으로 잡히고 해양생태계를 오염시킨 '더러운' 통조림 참치를 더 이상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분명히 전달했고, 이에 2014년 4월, 테스코는 자체브랜드를 비롯 그 어떤 지속가능하지 않은 참치캔도 진열대에 올리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습니다. 아스다도 한 달쯤 뒤 같은 의사를 밝혔으며, 참치캔 순위 바닥에 있던 브랜드인 오리앤탈앤퍼시픽(Oriental & Pacific)사 또한 집어장치를 사용하지 않고 커다란 그물코를 이용해 참치를 잡는 등의 변화에 앞장서겠다고 약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각종 요리관련 프로그램과 먹방의 히트, '먹스타그램'이라는 해쉬태그로 SNS에 연일 오르내리는 먹음직스럽고 다채로운 음식사진 열전. 이제 '요리하고,' '먹는다'의 의미는 단순히 한 끼를 해결하고 영양을 공급받는 기본적인 식생활의 범주를 넘어, 영혼의 허기를 달래고 타인과 소통하는 방식이자 라이프스타일로 자리잡고 있는 듯 합니다.

지속가능한 어업방식으로 잡힌 수산물로 차려진 음식

이렇게 범람하는 쿡방과 먹방의 시대에, 음식을 대하는 또 하나의 신선한 접근이 있습니다. 음식을 즐기고 요리를 통해 소통하고 나누는 것을 넘어, 내가 먹는 음식이 어떠한 방식으로 타인과 '관계'하는지, 또 식생활이 개인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에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고민하고 생각해 보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처럼 조금은 더 깊고 폭넓게 음식을 대하는 태도를 갖는 사람들을 일컬어 음식시민, 먹거리시민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쿡방과 먹방의 시대에 등장한 신선한 '음식시민'

국제슬로우푸드 한국협회장이자 사회학자인 경남대 김종덕 교수는 음식시민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음식시민'이란?

능동적인 자세로 음식에 대해 성찰하고, 음식의 생산∙유통∙소비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사람. 단순한 먹거리의 구매자가 아니라 식량 체계와 관련하여...의식을 갖고 대하는 사람. 좋은 음식, 깨끗한 음식, 정의로운 음식이 생산∙가공∙유통∙소비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사람. - <음식문맹자, 음식시민을 만나다>, 김종덕 지음 中

조금은 생소한 개념이지만, 이미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윤리적 소비'의 또 다른 모습이 바로 이 음식시민의 식생활 실천입니다.

지난 해 12월 10일 '세계 인권선언의 날'을 기점으로 그린피스는 바다에서 일어나는 수산업계의 인권유린과 해양파괴를 알리고, 여러분의 동참을 부탁드리는 글을 연재해왔습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우리 식탁에 오르는 다양한 수산물, 그리고 참치와 같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가공식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모르는 사이 인권유린이나 해양환경 파괴와 같은 문제들이 벌어지고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음식시민'이라 불릴 만한 어떤 이가 있다면,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요?

영국 음식시민들, 대형 슈퍼마켓의 참치캔 유통구조를 바꾸다

지난 2014년 3~4월, 테스코(TESCO)와 월마트 계열사인 아스다(ASDA) 등, 영국의 대형 슈퍼마켓들은 시민들의 빗발치는 항의 전화를 받느라 아주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무려 8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테스코에 전화를 걸거나 이메일과 트윗을 보냈고, 이들 대형 슈퍼마켓에 서명운동을 통해 항의를 전달한 사람도 8만 5천 명 이상이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왼쪽: 시민들에게 해양보호를 위한 '피쉬 파이트(Fish Fight)'에 동참할 것을 요청하는 웹 페이지. / 오른쪽: 그린피스 영국사무소가 발표한 2014 영국 참치캔의 지속가능성 순위

같은 해 2월 28일, 그린피스의 영국사무소는 영국에서 유통되는 참치캔의 지속가능성 순위를 발표했습니다. 순위 선정 기준은 해양생태계를 파괴하고 참치를 비롯한 다양한 해양생물을 멸종의 위기에 빠트리는 파괴적인 조업방식인 집어장치 FAD(Fish Aggregating Device)를 사용하는지의 여부와, 소비자의 알권리를 존중하며 어업지역 및 조업방식을 라벨링을 통해 알렸는지의 여부, 조업과정에 대한 추적가능성, 해양 보존구역 보호 여부 등이었습니다.

2014년 3월 3일, 테스코 슈퍼마켓에 2014 영국 참치캔 지속가능성 순위 최하위를 기록한 오리앤탈앤퍼시픽사의 참치를 반납하기 위해 줄을 선 시민들의 모습

순위가 발표된 후 영국 소비자들은 파괴적인 조업방식으로 잡히고 해양생태계를 오염시킨 '더러운' 통조림 참치를 더 이상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분명히 전달했고, 이에 2014년 4월, 테스코는 자체브랜드를 비롯 그 어떤 지속가능하지 않은 참치캔도 진열대에 올리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습니다. 아스다도 한 달쯤 뒤 같은 의사를 밝혔으며, 참치캔 순위 바닥에 있던 브랜드인 오리앤탈앤퍼시픽(Oriental & Pacific)사 또한 집어장치를 사용하지 않고 커다란 그물코를 이용해 참치를 잡는 등의 변화에 앞장서겠다고 약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비자의 요구, 바로 영국 음식시민들의 요구가 실질적인 유통망과 생산망의 변화를 가져온 것입니다.

수산물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들: 해양 환경 파괴와 선원 인권 착취

지난 2004년 참치캠페인을 시작한 이래로 그린피스는 참치업계를 비롯한 수산업계의 파괴적인 조업방식을 고발하는 것에 이어, 원양어선에서 벌어지는 노동착취 문제를 널리 알리고 그 해결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지속해 왔습니다.

2015년에는 타이유니온(Thai Union Group)과 같이 글로벌 공급유통망을 보유한 수산물 기업 소유의 배에서 벌어진 인권유린 사태를 고발했습니다. 타이유니온은 현대판노예 사건으로도 알려진 인도네시아 벤지나섬의 선원 노예노동과도 연관이 있는 기업입니다.

태국 수산물 산업에 만연한 노동착취 현실 - 전체 인포그래픽 자세히 보기

이런 문제는 수산물의 조업과정뿐 아니라 가공과정에서도 발생합니다. 그린피스는 지난 해 말 전 세계의 대형 슈퍼마켓에서 손쉽게 찾을 수 있는 냉동새우를 잡는 과정에 동원되었던 노예노동과 아동노동력 착취 문제를 많은 이에게 알리기도 했습니다.

여기 한 '새우 공장'이 있습니다. 임신 8개월차 여성이 피를 흘리는데도 4일 동안 계속 새우를 까도록 강요당했습니다. 어린 아이는 일하다 3.6미터 높이에서 떨어진 뒤에도 제대로된 치료를 받지 못했습니다. 이 비참...

Posted by Greenpeace 그린피스 on 2015년 12월 15일 화요일

한국 수산업계도 자유롭지 못한 해양생태계 파괴와 선원 인권 문제

지난 수년간 불법어업과 선원 인권유린 등으로 국내외 언론에 오르내린 바 있는 한국의 수산업계 또한 해양생태계 파괴는 물론이고 인권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지난 5년 사이, 오양 70호, 오양 75호, 오양 77호, 사조 501 오룡호, 101 소진호 사건 등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한국 국적 어선에서 발생하는 인권경시, 안전불감증, 불법어업 등의 문제가 국내를 넘어 국제사회에까지 알려졌고, 우리나라는 인권후진국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습니다.

물론 '모든' 원양어업 선박에, 혹은 오늘 내가 점심, 저녁으로 사먹는 수산물이나 통조림 참치에 '반드시' 노동착취나 인권유린이 연루되어 있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해, 어디서 그런 일이 얼마나 자주 벌어지고 있는지조차 제대로 알 수가 없다는 점이 정말 큰 문제인 것입니다. 언론을 통해 드러난 이 문제들은 그야말로 선원들의 탈출, 배의 전복과 같은 '사고'에 의해 알려졌을 뿐이며, 그 빙산의 일각 밑에 얼마나 더 큰 문제들이 남아있는지 모릅니다.

이는 해양파괴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참치캔의 원료인 가다랑어를 잡는 선망선에서 사용하는 집어장치 FAD는 가다랑어뿐 아니라, 바다거북, 상어 등 멸종위기에 처한 해양 동물들과 눈다랑어와 황다랑어 치어까지 낚아 올립니다, 하지만 한국의 소비자가 FAD를 사용하지 않고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조업된 참치를 먹고 싶어도, 현재로선 조업방식에 관한 정보를 알기 어렵고, 따라서 더 나은 선택을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변화를 만들 수 있는 궁극적인 힘은 소비자, 즉 음식시민들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수산업계의 인권 문제에 대한 감시를 요구하고 지속가능한 조업방식으로의 전환을 촉구하는 것은 결코 기업을 매도하거나 소비자를 먹거리에 대한 불안에 떨게 하려함이 아닙니다. 이는 수산업계가 좀 더 깨끗하고, 투명하고, 윤리적으로 변하고 성장하기를 바라는 소비자의 '정당한' 요구입니다. 우리가 맛있게 먹는 수산물을 잡는 선원들이 보다 안전한, 그리고 인권이 보장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또 수산업계가 멸종을 향한 경주를 멈출 수 있도록, 우리의 알권리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기업에 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린피스는 지난 2014년 정부에 대한 정책 제안과 함께 기업에 대한 지침을 보고서에 담아 발간했습니다 (* 이 보고서의 한국어판은 1월 셋째 주 그린피스 홈페이지를 통해 발간됩니다.) 이 보고서에서 그린피스는 현존하는 수산업 관련 규정의 준수 및 이행과 더불어 수산물의 조업∙가공∙유통 과정에서 인권유린과 환경파괴가 일어나지 않도록 국제기준에 따라 새롭게 정책을 마련할 것을 각국 정부에 요구했습니다. 또 수산업계에는 보다 책임감 있고 지속가능한 수산물 조업 정책을 도입할 것과, 어선에서 시장 진열대에 이르기까지 조달 과정을 투명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추적 시스템과 정기감사 시스템을 도입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태평양에서 조업중인 한 한국 선박의 갑판. 멀리 동이 트고 있는 모습.

우리의 밥상 위 공정하고 윤리적이며 지속가능한 수산물이 오르게 하기 위해서는 분명 정부와 수산업계 모두가 변해야 합니다. 하지만 정부와 업계를 움직이는 궁극적인 힘은 소비자, 즉 음식시민들에게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글:

경규림 /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선임 커뮤니케이션 담당자,

김지우 /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해양보호 캠페이너

* 이 글은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의 날을 맞아 시작된 스토리펀딩 "참치뿐일까요?"에 연재된 내용 중 일부를 축약한 내용입니다. 음식시민으로써 행동할 수 있는 보다 자세한 내용은 스토리펀딩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스토리펀딩 "참치뿐일까요?"를 통해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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