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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나에게 가르쳐 준 교훈

  • Katie Dreyer
  • 입력 2016.01.14 10:26
  • 수정 2017.01.13 14:12
ⓒAlamy

존 디디온은 비통함은 당신의 예상과는 전혀 다르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내가 남들처럼 추상적이고 모호하게 내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걸 생각했을 때, 나는 내가 무너져 내리고, 며칠이고 침대에 파묻혀 있을 거라고 상상했다. 세상은 어두워질 것이고, 나는 그 어둠 속에 스스로를 묻을 것 같았다. 어머니와 함께 내 자신을 묻을 것 같았다. 몇 주, 몇 달, 몇 년 뒤에 어떻게 될지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그 지극히 고통스러운 순간에 잡혀 있었다. 나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무능력한, 파괴된 상태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몸은 잘 움직였다. 팔다리가 내 뜻대로 움직였고, 나는 화창한 가을날에는 커튼을 열어두었다. 어머니를 화장한 뒤 불과 며칠 뒤 대학원 과정으로 돌아갔다. 성적도 좋았다.

나를 죽이지 않는 죽음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한 가지는 안다. 내 어머니는 죽을 운명이 아니었다. 이건 실수다. 나는 우주가 실수를 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이성적으로는 매일 비극이 일어난다는 걸 알고 있다. 암이 병이라는 것도 안다. 병은 영혼이나 마음을 갖고 있지 않다. 병은 사람들에게 벌을 주는 게 아니라 그냥 일어나는 일이다. 그리고 병이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사람은 살고, 또 죽는다. 누구나 마찬가지다.

카뮈는 '이별의 고통은 붉고 시끄러울 것 같다.'고 한 적이 있다. 그는 틀렸다. 죽음은 점진적이고 부드러우며, 어떤 파멸보다도 잔인하다. 붉고 시끄럽다고 하면 신속하다는 의미를 갖지만, 죽음은 복잡하다. 죽음은 길다. 죽음은 영원하다.

내 어머니는 내 결혼식에서 웃고 계셔야 했다. 건배를 하셨어야 했다. 말을 타셨어야 했다. 은퇴해서 일요일엔 정원을 돌보셔야 했다. 나이 들어가셔야 했고, 내가 아이를 보는 것을 도와주셔야 했다. 내 아이들과 서로 아는 사이가 되셨어야 했다. 나는 '~했어야'라는 말을 많이 쓴다. 비통해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 말을 계속 듣게 될 것이다. 우린 인생의 계획을 짠다. 계획을 다 짜놓으면 죽음이 일어난다. 죽음이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일이다. 이건 실수다.

나는 내가 용감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왔지만, 죽음은 우리의 자만을 전부 벗겨낸다.

나는 용감하지 않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나는 겁이 났다. 나는 어머니가 숨을 거둘 때 곁에 있을 용기가 없었다. 어머니가 병에 걸리시자 나는 도망갔다. 나는 (지금도) 젊고 활기차고 살아있다. 나는 24살이다. 죽음은 아직도 내게 먼 것, 일어나지 않는 것,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어머니 옆에 누워서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 볼 걸. 어머니에게 무엇이 두려운지 여쭤 볼 걸. 죽음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눠 볼 걸. 그렇지만 나는 어머니의 우울한 기분은 무시하고, 결국 다 잘 될 거라고 말씀드렸다. 나는 역겨울 정도로 쾌활했고, 불안할 정도로 긍정적이었다. 나는 부정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울 필요가 있었는데 아무도 듣지 않았다.

지금 어머니는 어디에 계시는가? 나는 CEO인 내 어머니가 천국에서 하프를 켜는 모습은 상상하기가 힘들다. 졸업식이나 결혼식이면 친척들은 서로 "걔가 지금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어."라고 말하며 미소 짓는다.

하지만 자기의 죽은 어머니가 내내 자기를 내려다 본다고 생각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는 나는 어머니가 어디 계신지 알았다. 지금은? 생전에 내가 어머니로부터 필사적으로 숨기던 사적인 순간들을 엿볼 수 있게 된 걸 즐기고 계실까? 아니면 나를 존중하고 자애로워서, 졸업, 결혼, 손주의 탄생 등 중요한 때만 보실까? 나는 모른다.

이것, 나는 모른다는 것이 죽음의 가장 큰 교훈이다.

나는 우리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죽는 이유가 뭔지 모른다. 나는 아직 행복하고 건강한데 어머니는 지금도 돌아가신 상태라는 걸 이해하지 못하겠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내겐 어머니가 있었다. '있다'라고 해야 하나? 어머니에겐 단점이 있었다. 우리는 싸웠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다. 하지만 서로 사랑하기도 했다. 모녀 간의 강렬한 사랑이었다. 너무 강렬해서 증오와의 경계가 모호한 사랑이었다. 어머니는 내게 필요한 것 이상을 주셨다. 내 마음, 통제가 안 되는 내 금발머리, 책에 대한 사랑, 완벽주의, 내 삶을 주신 어머니께 감사한다. 1년은 너무 길지만, 앞으로도 계속 더 길어질 것이다.

어머니가 아셨으면 하고 바라는 것은, 내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내 마음 속 깊은 곳의 떨림, 내 안의 천둥은 슬퍼서 우는 게 아니라, 강렬하고 압도적인 기쁨으로 울고 있다는 것이다. 엄마, 이건 아셔야 돼요. 이제까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어요.

고맙습니다.

죽음은 우리에게 이런 걸 가르친다. 다른 모든 게 사라졌을 때, 우리의 계획이 실패하고 당신에게 절대 일어날 수 없는 비극이 일어났을 때, 당신은 살아남을 것이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것이다. 친구들과 웃을 것이다. 사랑에 빠지고, 일하고, 꿈을 가질 것이다. 당신의 어머니가 살고 웃고 울고 죽었기 때문에 당신은 살 것이다.

언제나 최후의 진실은 결국 고마움뿐이다.

허핑턴포스트US의 What Death Taught Me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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