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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 가다] 동물들의 정신병동 일본 텐노지동물원

텐노지동물원이 자랑하는 '아시아 열대우림 존'에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코끼리를 보았다. 코끼리는 실내 사육장으로 들어가는 문에 굳게 걸린 빗장을 코로 휘감고 앞뒤로 몸을 흔들고 있었다. 무리생활을 하는 사회적 동물인 코끼리는 침팬지만큼이나 단 한 마리만 사육하기 부적절한 동물이다. 영상 2-3도인 오사카의 겨울은 코끼리를 하루 종일 야외방사장에 내몰기에는 너무 춥다. 코끼리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고, 앞뒤로 흔드는 행동 역시 격렬하지 않은 움직임이었지만, 마치 소리 없는 절규가 들리는 듯했다.

  • 이형주
  • 입력 2016.01.13 05:35
  • 수정 2017.01.13 14:12

[동물원에 가다] 두 번째 이야기 | 동물들의 정신병동 일본 텐노지동물원

지난 1월 7일, 일본 오사카시 텐노지(天王寺)구 텐노지공원 안에 위치한 텐노지동물원을 찾았다.

텐노지동물원은 1913년 일본에서 세 번째로 개장한 동물원으로, 230여 종, 1천여 마리의 동물을 전시하고 있다. 도쿄 우에노동물원처럼 큰 규모는 아니지만, 그래도 11만 제곱미터 규모에 연간 150만 명이 찾는 관광명소다. 텐노지동물원은 1995년 '아프리카 사바나 존(zone)'과 코끼리를 전시하는 '아시아 열대우림 존'을 신설하고, 2006년에는 '아프리카 사바나 존'에 기린과 사자를 함께 전시하는 등(사실 '함께 전시'라기 보다는 사육장이 붙어있다는 표현이 더 맞다), '생태적 동물원'으로 변모했다고 홈페이지를 통해 주장하고 있다.

'생태적' 주장하는 텐노지동물원, 침팬지 사육장에는 나무 대신 벽화

그러나 안타깝게도 텐노지동물원에서 '생태적'인 요소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대부분의 사육장은 낙후한 새장형 사육장이었고, 공간은 터무니없이 비좁았다. 사육장마다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이라고는 한 곳도 없었다. 내실로 들어가는 문은 모두 굳게 닫혀 있었다.

우거진 밀림을 대신해 침팬지 사육장 벽에 그려진 '밀림 벽화'는 그렇지 않아도 인위적인 공간을 한층 더 인위적으로 보이게 했다. 비록 나무와 타이어로 구조물을 설치해 놓긴 했지만, 도구를 능숙하게 다루고 거울을 볼 정도로 자의식이 있는 동물인 침팬지가 생활하기에는 너무나 단조로운 환경이었다. 수십 마리로 이루어진 무리 안에서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사는 습성이 있어 외로움을 잘 견디지 못하는 침팬지가 덩그러니 혼자 사육되고 있었다.

구조물에 앉은 침팬지를 바라보는 관람객

아니나 다를까. 고성을 지르며 손을 흔드는 관람객들 앞에 주저앉아 있던 침팬지는 대변을 보면서, 자신의 분변을 손으로 받아 입으로 가져갔다. 자신의 변을 먹는 '식분증(Coprophagia)'은 의미 없는 행동을 반복하는 '상동증(Stereotypy)', 먹은 것을 게워내고 다시 먹는 '역류(Regurgitation)'와 함께 동물원에서 사육되는 영장류에게서 자주 볼 수 있는 이상행동 중 하나다. 감옥과도 같은 공간에서 무료함을 달래는 '시간 때우기' 방법이다. 어린 관람객들은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야유를 보냈다. 이 아이들은 저 동물과 우리가 7백만 년 전에는 같은 조상을 가졌었던 '사촌간'이라는 사실을 알기나 할까.

미쳤거나, 우울하거나 ...'동물들의 정신병원'

텐노지동물원에서는 북극곰 두 마리를 사육하고 있다. 여름이면 월평균 최고기온이 34도까지 올라가는 오사카에서 영하 20-30도 기온인 북극에 서식하는 동물을 기른다는 것 자체가 '생태적 동물원'이라는 주장과는 거리가 멀다. 두 마리 다 육안으로 보기에도 털이 많이 빠져 있었고, 한 마리는 앞발에 분홍빛 속살이 다 드러나 보이는 큼지막한 상처까지 있었다. 다른 한 마리는 내실로 통하는 문 앞에 하염없이 서 있었다.

텐노지동물원이 자랑하는 '아시아 열대우림 존'에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코끼리를 보았다. 코끼리는 실내 사육장으로 들어가는 문에 굳게 걸린 빗장을 코로 휘감고 앞뒤로 몸을 흔들고 있었다. 무리생활을 하는 사회적 동물인 코끼리는 침팬지만큼이나 단 한 마리만 사육하기 부적절한 동물이다. 영상 2-3도인 오사카의 겨울은 코끼리를 하루 종일 야외방사장에 내몰기에는 너무 춥다. 코끼리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고, 앞뒤로 흔드는 행동 역시 격렬하지 않은 움직임이었지만, 마치 소리 없는 절규가 들리는 듯했다.

텐노지동물원의 북극곰들. 등쪽에 털이 많이 빠져 있고 한 마리는 오른쪽 앞발에 상처가 보인다. 다른 한 마리는 내실 문 앞을 떠나지 않았다.

문에 걸린 빗장을 코로 감고 있는 코끼리

텐노지동물원은 '동물들의 정신병동'에 가까웠다. 대부분 정형행동을 보이고 있지 않으면 무력하게 누워 있거나 매달려 있었다. 일본흑곰은 작은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같은 자리에서 돌고 있었고, 맨드릴(Mandrill)은 좁은 우리 안을 앞뒤로 서성이고 있었다. 몸이 겨우 잠기는 목욕탕만한 수조에 격리된 물개는 반복적으로 몸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마치 "이렇게는 단 하루도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온 몸으로 표현하려는 듯이. 늑대들은 한 마리가 있는 방이건, 여러 마리가 같이 있는 방이건, 그 종과 나이를 불문하고 약속이나 한 듯이 바쁘게 사육장 끝에서 끝을 종종걸음 치고 있었다. 한참을 돌던 늑대 한 마리가 갑자기 하늘을 보며 "우우~" 긴 울음을 토해냈다.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도는 정형행동을 보이는 일본흑곰 (Japanese black bear)

사육장 안에서 양 옆으로 왔다갔다하는 정형행동을 보이는 늑대

사육장 안을 서성이는 '페이싱(pacing)' 행동을 보이는 맨드릴

유리벽 뒤 호랑이와 '셀카' 찍으며 '가와이~'

관람객과 동물의 거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동물원. 몸을 숨길 바위 하나, 풀 한 포기 없이 통유리로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육장 안에 갇힌 동물들은 오사카 시내에 즐비한 쇼윈도에 진열된 크고 작은 물건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방 두 칸만한 실내공간 앞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설마 저기가 호랑이사일까' 의심을 품으며 다가간 그 곳에 감금된 호랑이를 보는 순간 나는 그만 눈물을 왈칵 쏟고 말았다. 고백하자면, 수 년 동안 동물원 조사를 다니면서 적어도 현장에서 이렇게 눈물을 쏟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동물 중 가장 용맹한 호랑이라지만, 좁고 더러운 시멘트 바닥을 의미 없이 왔다 갔다 하는 호랑이는 너무나 나약한 존재일 뿐이었다. 벽 앞에는 '셀카'를 찍기 위해 명당자리를 확보하고 배경에 호랑이가 지나갈 때 마다 연속 플래시를 터뜨리는 일본인 관람객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다른 큰고양이과 동물들의 형편도 마찬가지였다. 스트레스를 받다 못해 절망적으로 보였지만, 여성 관람객들은 특유의 하이톤으로 '가와이~'를 연발하며 스마트폰을 들이대기 바빴다. 좁은 공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유리창에 가까이 앉은 표범의 얼굴을 향해 손가락을 들이대는 사람들. 스트레스를 받다 못한 설표 한 마리는 '어흥'하며 손가락을 물려고 하는 공격성까지 보였지만, 결국 이빨만 유리벽에 부딪히는 꼴이 되고 말았다.

벽에 붙어 사진을 찍는 관람객(위)과 유리벽을 두드리는 관람객(아래)

'교육'은 빠지고 '학대'만 남은 동물원

텐노지동물원에서 '교육'은 찾아볼 수 없었다. 동물의 생태나 서식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표지판은 놀라울 정도로 작고 초라했고, 그나마 관심을 보이는 사람도 없었다. 국민소득 3만 3천불이라는 경제대국 일본. 남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깍듯하며 예의가 바른 것이 일본 국민성이라고 하지만, 사람보다 밑에 있는 '동물'에게는, 그것도 철저히 상품으로 취급되는 '관상용 동물'에게는 어떤 배려나 친절도 찾을 수 없었다. 그나마 우리나라가 동물원 동물의 복지가 뒤처지는 유일한 나라가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하는, 다소 어이없는 생각마저 들었다.

처참한 심정으로 동물원을 한 바퀴 다 돌고 출구 앞에 서니, 들어와서 처음 만난 침팬지가 마음에 걸렸다. 동물들을 뒤로 하고 나 혼자 문을 걸어 나오기가 불편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기분. 저들이 고통 받고 있는 것이 뻔히 보이는데도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현실에서 드는, 슬프고, 미안하고, 곤란하고 , 화가 나고, 한 마디로 내 자신이 무력해지는, 내가 가장 싫어하지만 또 가장 익숙한 감정이다.

마침 맑은 하늘에서 소나기가 내렸다. 사육장 앞을 빼곡히 메웠던 관람객들이 모두 떠난 그곳에 침팬지는 홀로 남아 있었다. 그리 넓지 않은 천정 밑에서 몸을 웅크린 채, 침팬지는 떨어지는 비를 혼자 맞았다. 아니, 펜스 앞에 선 나와 함께 맞았다.

[동물원에 가다] 첫 번째 이야기 | 동물이 보이지 않는 파리동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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