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현재 종로에서 토익강의를 하고 있다. 토익 강의를 한지도 벌써 7년째이다.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토익강의를 시작했고, 그래서 강사 시절 초반에는 수강생의 반 정도가 나와 동갑이거나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그렇게 나는 20대의 대부분의 시간을 토익과 함께했다. 내가 현재 강의 중인 종로는 강남과 함께 대한민국에서 가장 토익학원이 많은 곳이다. 그만큼 많은 학생들이 토익점수를 위해 종로로 온다. 그래서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났었고 그들의 토익점수 향상을 위해 수업을 하고 있다.

내가 토익강의를 하면서 동시에 '기무상'이라는 이름으로 레즈비언 유튜브/팟캐스트 방송을 한 지 3개월 정도 지났는데, 나의 토익 수업 수강생이었던 학생들에게서 방송에 대한 반응이 조금씩 오고 있다. '토익 선생님'이 아닌 '기무상님' 혹은 '기무상언니'라고 나를 부르며 자신을 밝히는 나의 토익 수강생들. 정말 신기하다. 얼마 전까지 토익 문제를 물어보던 아이들이 이제는 애인과 알콩달콩 잘 사귀고 있다든지, 솔로탈출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든지 그런 이야기를 나에게 한다. 그리고 또 다른 어떤 수강생은 (레즈비언은 아니지만) 기자가 되어 나에 대해 취재를 하고 싶다며 정식으로 취재요청을 해왔다. 신기하고도 신기하다. 참으로 놀라운 인연이다.

어떤 한 여자아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에 빠졌는데 그게 여자여서 너무 당황스럽다며 나에게 장문의 카톡을 보내왔다. 나는 그 어떤 토익 문제를 풀 때보다도 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그 아이의 고민을 읽었고, 그 고민 내용보다 더 긴 답변을 해주었다. '여자인데 여자를 좋아하는 게 당황스러워요.'라는 고민에 대해서 나는 언제나 이 말로 답변을 시작한다. '나는 이성애자다, 동성애자다라고 정의 내리려 하지 마세요.'

스스로를 이성애자로 알고 있던 사람이 동성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건 어렵지 않지만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나 같은 경우는 인정하기까지 거의 10년 정도 걸렸다.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 여자아이가 나의 첫사랑이었지만 계속 나는 나 자신을 거부해왔다. 그리고 서른이 다 돼서야 마침내 인정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것에 대해 사실 내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은 많지 않다. 그래도 성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경험을 토대로 조금이나마 이런저런 조언을 해줄 수 있다는 게 참 기쁘다. 나는 그들에게 단순히 토익 점수를 올려주는 강사보다는 스스로를 깨닫는 인생의 전환점에서 만난 친한 언니이고 싶다.

토익, 특히 내가 담당하는 RC(Reading Comprehension - 문법, 어휘, 독해) 점수를 올리려면 문제를 풀 때 그 문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문장 속의 빈칸에 보기로 제시된 단어들을 한 개씩 넣어보며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만들려고 한다면 토익점수는 오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러한 문장을 말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뭐가 자연스러운지 어색한지를 구분할 수 없다.

성 정체성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느끼는 감정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사전에 나와있는 단어들, '이성애', '동성애'라는 틀에 맞춰 억지로 자연스러운 자신을 만들려고 한다면 진정한 사랑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러한 사랑에 빠져본 적이 없기 때문에 뭐가 자연스러운 나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없다.

토익은 정답이 있다. 하지만 사랑에는 정답이 없다. 너무나 다른 토익과 사랑에도 공통점은 있다. 둘 다 스스로를 인정해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10년이나 늦었지만 나 자신을 인정했고 그리고 원하는 것을 얻었다. 나는 현재 토익도 사랑도 만점이다.

토익 인강중인 기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