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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속삭임 | N포세대의 경제학

승자들은 하늘이 감동할 만큼 노력하라고 요구합니다. 보수적인 언론과 정치인들은 구조적 문제점에 눈을 감고, 개인의 노오력으로 해결할 것을 주문합니다. 진보 인사들은 청년들의 정치적 무관심과 낮은 투표율을 꾸짖고, 적극적 참여를 요청합니다. 구조적 문제를 설명하고, 분노할 것을 설득합니다. 그러나 진보조차 구조적 문제의 심각성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N포세대로 상징되는 결핍 상황은 우리의 인지 능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합리적으로 분노할 수 있는 능력까지 빼앗고 있습니다. 노력 부족을 탓하는 것만큼, 정치적 무관심에 대한 타박이 허망할 수 있습니다.

  • 김재수
  • 입력 2016.01.11 05:49
  • 수정 2017.01.11 14:12

얼마 전, 이웃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알았습니다. 빈곤층에 속한 그는 차량 보험과 케이블TV를 위해 저보다 무려 두세 배의 가격을 내고 있습니다. 다른 경쟁업체들이 할인 가격을 제시하고 있으니, 서비스 업체를 바꾸라고 제안했습니다. 서비스를 끊겠다고 말하면, 현재 업체도 가격을 상당히 낮추어 줄 것이라고 이야기해 드렸습니다.

저소득층 사람들의 생활비 내역을 살펴 보면, 중산층 사람들 보다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구매하는 상품과 서비스가 의외로 많습니다. 중산층이 이용하는 할인매장에 접근하지 못해, 일상 용품을 비싼 가격에 삽니다. 앞서의 예처럼 단순히 정보 부족이나 판단능력 부족에서 비롯되는 것들도 많습니다. 카드빚 또는 사채 등을 써서 높은 이자율을 내는 일도 그렇습니다.

개인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무지 때문에 비싼 가격을 지불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이 어떤 시대입니까. 인터넷 검색만 해도, 가격비교를 쉽게 할 수 있고,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고금리 카드 빚과 사채가 얼마나 무서운지도 익히 잘 알려져 있습니다. 고통받는 이들의 이야기와 중요한 조언들이 인터넷에 넘쳐납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지불하는 세금

하버드대 경제학과 뮬라이나탄 교수 연구팀은 결핍 상황이 사람들의 인지 능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했습니다. 뉴저지의 쇼핑몰을 찾은 사람들에게 가족 소득을 묻고,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으로 구분합니다. 이들에게 간단한 IQ 테스트를 하고, 결과의 차이를 살펴봅니다. 테스트를 하기 직전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고장난 차를 수리하기 위해 $300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차량 보험은 비용의 절반만 해결해 줄 수 있습니다. 당신은 차를 수리하겠습니까? 아니면, 당분간 수리하지 않고 그냥 타겠습니까?"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IQ 테스트 결과는 차이를 보이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앞서 던진 질문을 조금 바꾸어서, 차량 수리비를 $3,000 이라고 상정했습니다. 고소득층의 IQ 테스트 결과는 앞서와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저소득층의 IQ 점수는 약 14점 정도 떨어졌습니다. $3,000라는 수리비는 저소득층 사람들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렇게 결핍의 상황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저소득층의 인지 능력은 떨어집니다.

연구팀은 또 다른 실험 대상으로 결핍 상황을 실제로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을 선택했습니다. 인도의 사탕수수 농부들은 일년에 한 차례만 수확을 거두고, 목돈을 손에 쥐게 됩니다. 수확 직전에는 보릿고개와 같은 상황을 겪습니다. 농부들을 대상으로, 수확 전후로 IQ 테스트를 실시했습니다. 물론 농부들의 영양 상태, 스트레스 정도, 노동 강도 등이 IQ에 동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연구자들은 통계적 방법을 통해서 결핍 상황이 야기하는 효과만을 구분하였습니다. 결과는 쇼핑몰 실험과 마찬가지입니다. 농부들의 IQ 점수는 수확 후보다, 수확 전에 더 낮았습니다.

이를 두고, 연구자들은 결핍 상황이 마치 인간의 정신 능력에 세금을 매기고 있다고 표현합니다. 연구 결과가 보여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무지에서 비롯된 비합리적 결정이라 해도, 개인의 문제로만 볼 수 없습니다. 결핍 상황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정보 부족, 판단능력 부족을 낳을 수 있습니다.

분노할 수 있는 만큼의 발판

연예,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가 옛말이 되었습니다. 내집 마련과 인간관계도 포기했다는 오포세대라는 말이 회자되기 무섭게, 꿈과 희망까지 포기했다며 칠포세대라 합니다. 포기할 것들을 세는 것조차 힘들어, 이제 N포세대라 부르고 있습니다.

승자들은 하늘이 감동할 만큼 노력하라고 요구합니다. 보수적인 언론과 정치인들은 구조적 문제점에 눈을 감고, 개인의 노오력으로 해결할 것을 주문합니다. 진보 인사들은 청년들의 정치적 무관심과 낮은 투표율을 꾸짖고, 적극적 참여를 요청합니다. 구조적 문제를 설명하고, 분노할 것을 설득합니다. 그러나 진보조차 구조적 문제의 심각성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출처: 경향신문 동영상 캡처

N포세대로 상징되는 결핍 상황은 우리의 인지 능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합리적으로 분노할 수 있는 능력까지 빼앗고 있습니다. 노력 부족을 탓하는 것만큼, 정치적 무관심에 대한 타박이 허망할 수 있습니다.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청년들의 분노가 필요하지만, 청년들의 분노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이들이 설 수 있는 최소한의 발판을 먼저 마련해야 합니다.

'이대로'를 외치며 축배를 나누는 이들이 왜 작은 복지정책에도 강하게 반대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서 속의 예수는 당시 민중들의 삶을 억압하고 착취하던 안식일법과 정결법을 두고 종교지도자들과 논쟁을 벌입니다. 그는 민중들에게 해방을 선언하고, 벼랑 끝에 놓인 이들이 살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줍니다. 그러자 종교지도자들은 예수가 악마의 힘을 빌려 이런 일을 행한다고 말하며, 여론몰이를 하였습니다. 최근 서울시와 성남시는 청년들이 설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청년 대상 복지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이것을 두고 "악마의 속삭임"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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