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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1월 07일 14시 13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1월 07일 14시 12분 KST

불안해서 못살겠다

화성연쇄살인 사건은 한국사회가 처음 경험하는 유형의 사건이었다. 당시의 수사기법이나 수사진의 상상력을 가지고는 연쇄살인범을 체포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당시 범인 검거에 어려움을 겪은 이유가 단지 시대를 앞선 범인의 신출귀몰하는 능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범죄의 예방과 범인 체포에 실패한 보다 주요한 원인은 국가가 치안 보다는 시국사건에 경찰력을 집중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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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역사에서 <살인의 추억>은 손에 꼽힐 영화다. 이 영화처럼 영화가 갖추어야 할 요소를 완벽에 가깝게 구비한 영화는 드물다. 봉준호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영화로서도 우뚝하지만, 영화의 모티브 자체가 워낙 충격적이다. <살인의 추억>은 화성연쇄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다. 화성연쇄살인 사건은 1986년부터 1991년 사이에 화성시 태안읍 반경 2킬로미터 내에서 발생했는데, 사망자 10명이 모두 여성이었고 범행수법이 극히 잔인하고 엽기적이었다는, 그리고 8차 사건을 제외하고는 범인이 끝끝내 검거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지금까지도 세인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준 사건이었다.

<살인의 추억>을 보면 알 수 있지만, 화성연쇄살인 사건은 한국사회가 처음 경험하는 유형의 사건이었다. 당시의 수사기법이나 수사진의 상상력을 가지고는 연쇄살인범을 체포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당시 범인 검거에 어려움을 겪은 이유가 단지 시대를 앞선 범인의 신출귀몰하는 능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범죄의 예방과 범인 체포에 실패한 보다 주요한 원인은 국가가 치안 보다는 시국사건에 경찰력을 집중했기 때문이다.

사건이 발생한 때는 전두환 정권 말과 노태우 정권 후반을 관통하는 시기인데, 이 기간은 민주화운동과 노동자대투쟁, 통일운동 등이 가장 성했던 때였고 정권도 이에 대응하는데 동원가능한 공권력을 쏟아부었다. 정권의 안위와 관련된 것이니만큼 대통령을 위시한 정권 수뇌부의 관심도 당연히 시국사건에 집중됐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자연스럽게 화성연쇄살인 사건 등 치안사건에 국가기관이 투입할 관심과 자원이 제약될 수 밖에 없었고, 그 결과 사건을 예방할 수도, 범인을 검거할 수도 없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를 가장 중요한 존재목적으로 하는 국가가 그 임무를 수행하는데 완전히 실패한 것이다.

뜬금없이 화성연쇄살인 사건을 언급한 건 북한의 4차 핵실험(북한은 수소폭탄 실험이라고 주장한다)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북한의 4차 핵실험을 사전에 예방하는데 실패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북한이 핵실험을 하는지도 몰랐다.

박근혜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호전시켜 북한이 3차 핵실험 이후 추가 핵실험을 할 유혹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었다. 누구나 알다시피 박근혜 정부에서 남북관계는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남북관계 개선에 철저히 실패했다면 북한의 다양한 군사적 도발에 대한 대비는 완벽해야 한다. 사실상 장님 신세였던 군과 국정원을 ([단독][북 4차 핵실험]국정원장 "우리가 졌다"···핵실험 한 달 전엔 알 수 있다더니)보니 그런 기대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알겠다.

박근혜 정부는 더할 나위 없이 무능하다. 보수정부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포괄적 안보에도 무능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침몰의 예방과 구조에도, 메르스 방역과 조기차단에도, 북한의 군사적 도발에 대한 억제와 사전 인지에도 실패했다. 불안해서 살 수가 없다. 전염병과 사고와 군사충돌 등의 온갖 재난에 벌거벗은 채 각자도생해야 하는 대한민국 시민들의 처지가 가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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