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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살아나니까 내가 살았어요"

"내가 농사지은 거 죄의식 없이 팔 수 있고, '내가 기른 게 남한테 도움이 되겠구나' 하고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게 되죠. 유기농은 '농약·화학비료 안 주고 어떻게 농사가 되느냐?'는 생각만 바뀌면 돼요. 한 번 체험하면 그 다음부터는 안 주게 될 거예요.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대단하니까."

경기 여주에서 벼·고구마·땅콩 농사짓는 경영란·송두영 씨

"내가 농사지은 거 죄의식 없이 팔 수 있고, '내가 기른 게 남한테 도움이 되겠구나' 하고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게 되죠. 유기농은 '농약·화학비료 안 주고 어떻게 농사가 되느냐?'는 생각만 바뀌면 돼요. 한 번 체험하면 그 다음부터는 안 주게 될 거예요.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대단하니까."

글 이선미(살림이야기 편집부) \ 사진 류관희

"우리는 한살림 농사지으려고 태어났나 봐요"

경기 여주로 경영란·송두영 부부를 찾아간 11월 중순, 수확을 끝내고 갈색 민낯을 드러낸 땅들은 큰일을 마치고 여유롭게 쉬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침나절 내린 부슬비를 받아들인 땅은 폭신하고 부드러웠다.

부부는 논 약 4만 2천975㎡(1만 3천 평)와 밭 약 1만 9천835㎡(6천 평)에 농사를 짓는다. 벼·녹두·수수·감자·고구마·땅콩·파·양파 등 가짓수도 많다. 농지 중 부부가 소유한 건 1/3 정도, 나머지는 주로 친지들에게 빌렸다. 논농사는 송두영 씨가 맡아 주로 농기계로 짓고, 밭농사는 경영란 씨가 맡아 한다. 오랜 밭일로 허리가 상한 경영란 씨는 일을 좀 줄이려고 하는데 막상 생각처럼 안 된다고.

"남의 땅까지 빌려 농사짓는 게 욕심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에요. 우리 옆에 관행농사짓게 둘 수가 없거든. 남한테 넘기면 농약 주고 화학비료 줄 테니까 안 할 수가 없어요."

여주가 고향인 송두영 씨와 이웃 마을에 살던 경영란 씨는 1979년 중매로 만나 결혼했다. 제대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농사에 뛰어든 남편과 함께 아내도 농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결혼해서 관행농사짓는데 너무 힘든 거예요. 남편이 원체 농약에 약해서 제초제 냄새를 맡으면 하루 종일 힘들어 하니까 밭고랑에 제초제를 못 줬어요."

그러다 2001년 한살림을 알게 되고, 2002년 정식 활동을 시작한 여주 금당리공동체의 '창립멤버'가 됐다.

"지금 한살림경기동부생협 상무이사인 곽현용 씨 등 한살림농장 식구들이 귀농 오면서 한살림을 알게 됐어요. 그 전에도 친환경 농사를 알고 있었고 몇 번 시도도 해 봤지만 판로가 없으니까 머뭇거리고 있었지. 그러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연결될 수 있다고 하니 바로 한살림 농사를 시작했지요."

그러나 수년간은 실패뿐이었다. 오리농법으로 벼농사를 시작했는데 너구리가 오리를 다 잡아먹어 버리고, 우렁이농법도 풀 잡는 노하우가 없어 3년을 고생했다. 감자는 굼벵이가 먹어 다 버려야 했다. 빚이 늘어갔다. 하지만 4~5년째부터 부부의 노력은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우렁이농법은 노하우를 터득하면서 궤도에 올랐고, 농약중독에서 해방되면서 "비리비리하던 몸"도 좋아졌다.

"누가 농사 3~4년 망치면서도 계속하겠어요? 친환경 농사로 삶이 달라지는 걸 체험하니까 도무지 포기 못 하겠는 거예요. 우리는 한살림 농사지으려고 태어났나 봐요. 땅이 살아나고 내 몸이 살아나니까 이건 계속해야 하는 거죠."

또 가격이 보장되기에 최선을 다해 농사짓는 데만 신경 쓰면 된다는 점도 한살림 농사의 큰 장점이다.

"이거는 확실한 농사예요. 농사만 잘 지으면 예상 수입이 정확히 나오니까요."

친환경 농사지은 지 15년이 넘다 보니 어느 정도 안정되어 저축은 못해도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

"애들한테 달라 소리 안 하고 일 년에 한 번은 여행도 하고요. 그게 낙이죠."

연두색 녹두도 곱게 말리는 중. 부부가 자가 채종해 기른 귀한 곡식이다. 요리솜씨 좋은 경영란 씨 손을 거치면 또 얼마나 맛난 음식이 될까.

오전 내내 오던 비가 그치고 보리 싹에 물방울이 맺혔다. 밭에 보리를 심었다가 갈아엎으면 병해충도 예방되고 거름도 된다. 또 미생물이 활성화된다고 하니 내년 농사도 기대가 된다.

유기농으로 정성껏 길러도 모양 안 좋으면 버려져

2월 고구마와 파 모종을 기르고, 3월 말 감자를 심고 못자리를 만들면서 한 해 농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그 후 각종 작물을 심고 김을 매다 보면 8월이 되어서야 잠깐 짬이 났다가 9~10월까지 다시 수확으로 정신 없이 바빠진다.

"형제들이 와서 많이 도와줘요. 그러면은 며칠 할 것을 하루 이틀이면 할 수 있지. 오면 여기서 먹을거리를 다 가지고 가라고 해요. 다 퍼 주니까 또 오죠."

부부는 특히 땅을 살리는 일에 애정을 쏟고 있다. 이를 위해 밭농사는 전부 다 유기농으로 한다. 감자·고구마는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내버려 두고, 파에나 조금 쓰는 미생물제제는 돼지감자 등으로 직접 만든다. 늦가을에는 보리를 심었다가 갈아엎어 땅에 거름 역할을 하게 한다.

"모르는 사람들은 어떻게 농약 안 쓰고 농사짓냐고 하지만, 유기농 오래 하다 보면 땅에 미생물이 생겨서 농사가 알아서 돼요."

땅을 살리다 보니 토박이씨앗에도 관심이 생겼다. 원래 고구마·땅콩·벼와 녹두·팥 등 잡곡은 직접 받은 씨를 심어 왔고, 최근에는 '게걸무'라는 토종 무도 기르고 있다.

"여기서는 '장아리'라고 부르는데, 어렸을 때부터 먹어 와서 씨앗은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어요. 일반 무에 비해 매운 맛과 톡 쏘는 맛이 있어요. 또 단단해서 쉽게 상하지 않기 때문에 김장할 때 좀 짜게 담가서 여름까지 먹어요."

송두영 씨가 밭 주변에 토박이 민들레도 구해 심었다.

고구마는 한 밭에서 3년 이상 기르면 바이러스가 생겨 연작할 수 없는 작물이다.

"관행농사를 하면 살균제를 쓸 수 있어 바이러스가 덜 오지만 100%는 못 잡아요."

그저 정성을 들이고, 자연의 처분을 기다릴 뿐이다. 바이러스 때문에 고구마 농사가 어려워지면서 땅콩 농사에도 눈을 돌렸다. 2009년에는 공동체 출자와 지자체 지원을 더해 금당리공동체에서 땅콩 가공공장도 만들었다. 생산부터 가공까지 산지에서 한 번에 하게 된 셈이다.

"처음에는 생산자들이 공장 운영까지 직접 했어요. 그러다 보니 농사지으면서 하기가 버겁고 겨울에도 쉴 새 없이 일해야 해서 지금은 직원이 따로 있어요."

작물 중에는 양파가 밭도 더 매야 하고 망에 넣어 무거운 짐도 옮겨야 해서 힘들다.

"한살림 양파가 모자라게 생겼어요. 생산자들이 나이가 들고 힘드니까 안 하는 거야. 게다가 올해가 가뭄이 심해 밭을 완전히 갈아엎은 집도 많아요." 여주는 파가 잘되는 지역이라 부부는 노지에서 파를 기른다. 파는 특히 관행농에서 농약을 많이 치는 작물이다. "관행 파는 농약이 진짜로 범벅이에요. 파뿌리에서 노린내가 나는데, 그게 농약이에요. 내가 아는 사람에게는 못 먹여요. 없으면 내가 줄 테니 파는 절대 사 먹지 말라고 해요."

하지만 정성 들여 기른 농산물들이 조합원들에게 닿기까지는 어려움이 많다.

"올해 가뭄 때문에 고구마들이 수분을 찾아 땅속 깊이 자라다 보니 수확할 때 껍질이 많이 까였어요. 껍질 까서 먹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도 모양이 안 좋다고 클레임이 들어온대요. 수확할 때 20%는 밭에 내버렸는데, 물류센터에서도 많이 버려질 거 같아요." 경영란 씨는 "고구마나 감자도 작은 것은 물품으로 못 나가는 게 너무 아깝다"고 덧붙였다.

《살림이야기》 2015년 10월 호의 '버려지는 먹을거리' 특집에 따르면 "해마다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식품 중 1/3은 그냥 버려지고, 내용이 아닌 외형에 맞추어진 품질기준이 멀쩡한 식품을 순식간에 '쓰레기'로 만든다"고 했는데 그 말대로다. 화학비료와 농약 없이 다만 자연에 기대어 길러 낸 작물들이 늘 매끈하고 흠 없을 수 없는데. 유기농, 친환경 농산물이라면 너무 예쁘고 반듯한 게 오히려 이상한 건데. 지금 이 농산물이 어떻게 나에게 왔는지 안다면 조금은 달라질까?

송두영 씨는 아내 경영란 씨의 손을 어색함 없이 잡고 눈을 맞춘다. 유기농사 잘해 온 것도 대단하지만 부부 간의 담뿍한 정을 늘 간직하며 살아온 게 더욱 대단하게 느껴졌다. 남편은 "부지런하고 뭐든지 하려고 한다"고 아내를 칭찬하고, 아내는 "의지가 강하고 인정이 많은" 남편을 좋아한다.

"중부지역은 날이 추워서 양파가 안될 줄 알았는데 실험재배해 보니 잘되더라고. 한 지 3년이 안 됐어요." 부부는 가을에 심어 겨울을 나고 이듬해 6월에 수확할 양파 농사에 정성을 많이 들인다.

토종 무인 게걸무는 이렇게 생겼다. 누군가 이 무로 만든 김치를 게걸스럽게 먹었다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찾는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갓김치보다도 톡 쏘는 맛이 별미란다.

기후변화와 쌀 소비 감소에도 첫마음을 잃지 말고 '한살림' 합시다

경영란 씨는 요리솜씨가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우리 조합원들이 저 사람 같으면 아마 한살림 생산계획이 늘어나야 할 것"이라는 남편의 말처럼 모든 식재료를 한살림 물품으로만 써서 맛깔난 음식을 만들어 낸다.

"화학조미료 안 쓰고 재료 우린 육수로 맛을 내요. 또 양조간장 안 쓰고 음식을 좀 싱겁게 하고요. 메주를 네다섯 말 직접 만들고 고추장도 스무 근씩 담가서 형제들과 다 나누어 먹어요. 형제들이 주말에 쉬고 싶을 텐데도 와서 우리를 도와주니까 나도 즐거운 마음으로 해요."

또 현재 공동체 여성대표로 한살림생산자연합회 여성위원회에서도 활동한다. "공동체가 활성화되려면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며 전폭적으로 밀어 주는 남편 덕에 경영란 씨는 바쁜 농사일 중에도 "안 만나면 안 되는" 한살림 활동을 잘할 수 있다. 지난 10월 한살림서울생협 가을걷이 때에는 여성위원회에서 장사로 300만 원, 모금으로 300만 원 총 600만 원을 모아 네팔에 한살림학교 짓는 일에 기부도 했다.

"내가 봐도 우리는 참 희한해요. 몇 번 못 봐도 만나면 형제처럼 반갑고 좋아요." 경영란 씨가 여성생산자 일이라면 아무리 먼 데서 오라 해도 가는 이유도 이것. "헤어질 때 서운하고 언제 또 얼굴 보나 아쉬워요. 한살림 안 했으면 내가 이렇게 전국을 다니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겠나 싶어요."

농사지으면서 가장 큰 걱정은 다름 아닌 기후변화. "농사지으면서 보니까 그야말로 다 인간 탓이더라고. 급속한 산업 발전 때문에도 그렇고 땅도 증산을 위해 마구 쓰잖아요." 그래서 부부는 쓰레기 분리수거부터 철저히 한다.

"마을에서 큰 행사를 하면 쓰레기가 화물차 몇 대만큼 나와요. 그럼 내가 가서 다 분리수거했어요. 요즘은 많이 바뀌긴 했지만 여전히 비닐류를 태우는 걸 아무 생각 없이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런 것 때문에 시골에 봄가을이 없어졌지. 농사시기도 많이 바뀔거예요. 환경이 이대로 가다가는 손주들이 태어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 하나 걱정은 쌀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다.

"벼농사가 확대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축소시켜야 하니 제일 안타깝죠. 신규 생산자가 더 들어오게 해서 농업을 살려야 하는데 쌀 소비가 그렇게 줄어들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집에서 밥을 안 해 먹으니 문제지요."

송두영 씨는 세상이 바쁘게 돌아가다 보니 농산물로 직접 요리하지 않게 된 세태를 안타까워하면서도, "변화한 시대에 따라 조합원들이 가공품을 원한다면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개발된 쌀국수를 비롯해 즉석밥 등을 통해서라도 쌀 소비를 늘려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하루하루 변하는 시대 속에서 부부가 바라는 건 소비자든 생산자든 모두 '첫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유기농산물의 가치를 인정해 주면 좋겠어요. 생산자들은 돈을 따라가지 않고 환경을 살리는 일에 더욱 힘쓰면 좋겠고요. 세태에 따라 우리 생각이 변하는 게 아쉽지만 같이 노력해야겠지요. 망가진 땅을 살리고, 내 몸을 살리고, 환경을 살리는 게 우리 한살림이죠."

금당리공동체 땅콩 가공공장 앞에 선 부부. 몇 년 동안 송두영 씨는 공장 운영을 맡아 했고 경영란 씨는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밥을 해 줬다. "우리 땅콩 맛있는 건 사람들이 다 알아요. 술 마시는 사람들은 특히 더 잘 알고. 수확해서 바로 볶아 먹으면 더 맛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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