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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1월 05일 10시 11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1월 05일 14시 12분 KST

생활계획표가 지켜지지 않았던 이유

새해가 되고 새학기가 되고 또 어떤 새로운 환경이 마련되면 우리는 그럴듯한 계획을 세우곤 한다. 유명한 지침서들을 베끼기도 하고 유행을 좇거나 그럴듯한 문장들을 다이어리에 갈무리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에겐 생활계획표라는 공통의 뼈저린 실패 경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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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되고 어김없이 방학이 돌아왔다.

교사들은 이 시기가 되면 날짜별로 정리된 방학 중 연수계획서를 제출하게 되는데 문득 어릴 적 생활계획표 만들던 시간이 떠올랐다.

커다란 도화지에 컴퍼스로 큼직한 원을 그리고 적당한 비율로 칸을 나누어 계획을 적고 색을 칠하거나 그림을 그려 넣었던 그 시간은 방학이 다가왔음을 알리는 알림이 같은 것이었다.

칸의 배분은 언제나 '꿈나라' 부터였던 걸로 기억된다. 새나라의 어린이는 9시에는 자야 하고 아침일찍 일어나서 체조도 해야했기 때문에 기상 시간 6시도 계획표에서는 오래전부터 정해져서 거스를 수 없는 룰 같은 것으로 느껴졌었다.

어느 부대의 식사시간을 옮겨놓은듯 이른 아침식사 시간과 최적의 간격으로 조정된 나머지 두 끼니의 칸이 정해지고 난 후에도 빈 공간을 채워가기 위한 큰 고민의 시간은 필요하지 않았다.

지덕체가 고루 발달한 전인간적 인격함양으로 시작되는 선생님의 강연내용은 정확히 무얼 말하는지 이해하긴 힘들었지만 공부, 독서, 운동을 골고루 넣어서 짠 계획표를 제출했을 때 칭찬을 받거나 적어도 다시 만들어 오라는 불호령이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어떤 방학엔가는 솔직하고 현실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말씀을 따라 '휴식'의 지분을 대담하게 넓혀 보기도 하지만 그 위세는 교실이라는 보수적 압박과의 타협을 거쳐 얼마 가지 못해 그 위세를 대부분 거둬들이고 말곤 했다.

방학이 시작되면 책상 앞에 당당히 붙여진 계획표를 바라보며 굳은 결심과 함께 새학기 참고서들과 명작단편 모음집까지 꺼내보지만 그 계획은 6.25 때 서울이 함락되던 시간 이상을 버텨본 적이 없었다.

사실 그 계획은 아버지 출퇴근 시간에 맞춰서 밥을 준비하시는 어머니의 식사 준비 시간을 내 계획대로 옮겨오려던 말도 안되는 저항의 시간 이전부터 불가능했던 것이었다.

나름 빼곡하게 채워진 우리집의 책들도 나의 엄청난 독서시간을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했고 계획된 시간대로 체력을 단련했더라면 난 지금쯤 엄청난 운동선수가 되었거나 진작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눈 앞에 펼쳐진 자유의 물결들과 몸을 뚫고 나올듯한 어린 혈기는 처음부터 그런 작은 계획표와 어울리는 것이 아니었다.

온통 문제투성이의 계획표였지만 실패의 원인을 간단히 생각해 보면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거기엔 현실성이라는 것이 없었다. 도달할 수 없는 목표들과 실행 가능성 없는 계획은 실패를 반복시켜 줌으로서 포기하게 만드는 계기를 주었다.

두 번째는 창조목적인데 그것은 계획표라는 이름과는 달리 계획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선생님의 칭찬을 받기 위해서 혹은 책상 앞을 그럴듯하게 장식하기 위한 목적이 우선적 가치로 작용하고 있었다.

왜곡된 발생적 의미로 인해 그 녀석은 나의 계획을 이끌어줄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계획표 안에 나의 의지나 흥미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표가 작성되기 이전에 내가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성찰의 시간이 있었다면 계획표안에 조금 무리한 것들이 들어있었더라도 내재적 동기들은 스스로에게 흥미를 발생시키고 그것은 목표달성의 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새해가 되고 새학기가 되고 또 어떤 새로운 환경이 마련되면 우리는 그럴듯한 계획을 세우곤 한다.

유명한 지침서들을 베끼기도 하고 유행을 좇거나 그럴듯한 문장들을 다이어리에 갈무리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에겐 생활계획표라는 공통의 뼈저린 실패 경험이 있다.

남들에게 보이긴 좀 그렇지만 대단하진 않지만 생각만 해도 신나는 계획 한 번 세워보는 건 어떨까?

PRESENTED BY 호가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