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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공정성의 판타지가 2016년에도 계속될까?

ⓒASSOCIATED PRESS

2015년에 진보적 컬럼니스트 조너선 체이트는 '정치적 공정성(politically correct)의 문화'와 '언어 경찰'이 되돌아온 것을 한탄했다. 그는 선하고 진보적인 사람들조차 자신들의 정체성을 긍정하지 않는 생각들은 검열하는 '사회 정의 전사들'의 조롱을 받을까 봐 두려워한다고 적었다. 그는 '정치적 공정성은 사회적 평등에 대한 철저한 헌신이라기보다는 좌익의 이데올로기 탄압 시스템이다.' 라고 썼다. 작년 가을, 공화당 대선 후보에서 1위를 달리는 도널드 트럼프는 '정치적 공정성'의 문화와 반대되는 것으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정의했다. 그는 자신의 경쟁자들도 믿고 있는 사실을 소리 높여 발언했다. "나는 정치적 공정성이라는 헛소리가 신물이 난다."

토마스 에드설은 뉴욕타임스에 진지한 훈계조로 미국인들의 대다수가 이제는 정치적 공정성이 '큰 문제'라고 믿고 있다는 게 여론 조사로 밝혀졌다고 썼다. 한편 워싱턴 포스트는 이 주제에 대해 쉴 새 없이 기사를 내고 있다. 명망 있는 이 신문은 지난 달에만 이에 관한 기사를 8개 냈고, 이는 캠퍼스와 언론 자유에 대한 컬럼은 포함하지 않은 숫자이다. '정치적 공정성'과 '대학의 엘리트들'을 연결하는 것은 수십 년 전부터 흔히 해오던 일이다.

늘 이렇지는 않았다. 최근 컬럼니스트 필립 범프는 이렇게 지적했다. '1990년대의 전성기 이후, 미국의 인구적, 경제적 변화가 문화 집단 간의 불확실성과 분한 마음을 다시 일으킬 때까지는 이 용어는 표면 아래에서 부글거리고 있었다.' 이제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을 가진 필자들이 이 말을 자기들이 참아줄 수 없는 사람들, 혹은 그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생각들에 대한 방패로 마구 휘두르고 있다. 정치적 공정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더 작디 작은 위반들에 대한 더 많은 민감함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하는 앤드류 설리번과 같은 사람들이 많다.

안타깝게도 나는 2016년에는 정치적 공정성의 귀신들이 학계와 전국적 정치 담론에 더욱 널리 퍼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대학에서 '정치적 공정성'이라는 것은 중요한 기능을 한다. 현재 상태(status quo)에 우호적인 생각들에 대한 관용의 부족이 우리의 가장 큰 문제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부추긴다. 남학생들이 파티를 준비하는 방식이 달라져야 해서 언짢을 때, 그들은 계속해서 '정치적 공정성'을 외칠 것이다. 대학교 때 시위를 했던 중년 동창들이 이젠 그들의 싸움과 슬로건이 현재의 학생들의 입에 오르지 않을 때, 그들은 정치적 공정성의 문화가 언론의 자유를 약화시킨다고 불평할 것이다.

2016년에 정치인들과 전문가들은 분명히 정치적 공정성의 함정을 들먹일 것이다. 집단적 사고는 '정치적 공정성'을 상상 속의 괴물로 만들었고, 이를 공격해서 불리할 점이란 없기 때문에, 우리는 용기있게 '정치적으로 공정하지 않기'를 선택했다고 자랑하며 사회에서 특히 취약한 집단들을 공격하는 이들을 보게 될 것이다. 테드 크루즈는 '정치적 공정성이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라고 선언함으로써 이미 재미없는 공격성의 아주 높은 기준을 세운 바 있다. 하지만 다른 후보들도 앞다퉈 자기 생각을 말하지 못하게 하는 이 유령 같은 힘에 맞선다는 걸 보여주는 모습을 우리는 목도하게 될 것이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엘리트주의에 대한 공격에 얹으면 인종차별과 외국인 혐오도 받아 들여지기 때문에, 2016년에는 이런 모습을 더 많이 보게 될 것 같아 두렵다.

정치적으로 공정하지 않다고 행세하는데 열을 올리는 공화당 후보들에 대한 훌륭한 글에서, 폴 월드먼은 '정치적 공정성에 대한 공격이 모든 비판에 대한 만능 대답이 되어버렸다'는 걸 보여준다. 불평등은 광범위한 불안을 낳고 있으며, 진보적 대화가 기회를 넓히는 것보다는 특권을 제거하는데 집중되면 이 문제를 더 키울 뿐이다.

그래서 현재 많은 미국인들은 자신의 경제적 전망이 어둡고 사회적 지위는 위태롭다고 느낀다. 불평등이 그 어느 때보다 치명적이 되어가며, 대공황이 절정을 이룰 때 널리 사용되던 '사회 정의'라는 말이 최근 다시 입에 오르고 있다. 이 말은 타인들의 이른바 특권이라는 것 때문에 그들의 지위를 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보다 공평하고 모두를 아우르는 문화를 만들자는 것이다.

미래의 새 희망을 열지도 않으며 잠재적 동맹들에게 수치를 주는 진보 순수주의자들이 있다는 판타지를 2016년에 우리가 더 키울 필요가 없다. 올해 우리는 어떤 것을 바꾸고 어떤 것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 더 자세한 대화를 나눌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우리의 대학들이 앞으로도 정치인들과 전문가들의 타겟이 된다 할지라도, 캠퍼스는 새로운 생각들을 키우고 학생들이 대학을 넘어선 곳에서도 문제를 해결하고 기회를 만들어 내게 해주는 곳으로 남아 잘못된 이미지를 깰 수 있다. 앞으로 진정한 정치적 문화를 만들어, 정치적 공정성에 대한 판타지를 깨는 것이 대학의 가장 큰 기여일 수도 있다.

허핑턴포스트US의 Will the Fantasy of Political Correctness Continue in 2016?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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