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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부산국제영화제

재작년 부산영화제가 부산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다이빙벨>을 틀었고, 지난해 초 부산시장이 이 위원장을 사퇴시키려다가 영화계의 반발을 샀다. 이후 공동 집행위원장 체제를 도입하고 영화제를 성공적으로 치르면서 잠잠해지는가 했는데, 부산시가 이 위원장을 고발했다. 진짜 기관사가 누구이든, 부산시는 앞에 무엇이 있는지 상관없이 달려가는 기차처럼 보인다.

  • 임범
  • 입력 2016.01.05 09:50
  • 수정 2017.01.05 14:12
ⓒBusanfilmfestival

부산시가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검찰에 고발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조금 엉뚱한 기억이 떠올랐다. 오래전, 검찰 출입 기자 할 때 서울지검이 유명한 국악계 인사를 대마초 흡연 혐의로 구속하면서 대대적으로 보도자료를 돌렸다. 돌릴 땐 표정이 좋았는데 다음날 낯빛이 흐렸다. 청와대에서 쓴소리 들었다고 했다. 세계적인 예술가의 명예를 그렇게 떨어뜨려야 했느냐고. 사전에 이런 사람을 구속한다고 별도로 보고를 안 했단다. 한 간부 검사가 그랬다. "그렇게 유명한 사람인 줄 알았나." 미리 보고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나도 모르겠다. 노태우 대통령 때였다.

하고자 하는 말은, 권력이 사법처리를 제 맘대로 하고 말고 해도 되느냐가 아니라, 그때도 사람의 명예에 관한 일을 다룰 땐 남들의 이목을 신경 쓸 줄 알았다는 거다. 세계적으로 유명하기로 치면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도 만만치 않을 거다. 외국 영화인들에겐 한국의 간판 같은 사람일 거다. 아무리 그래도 고발할 일이 있으면 하고, 사법처리할 일이 있으면 해야 한다. 그런데 고발한 내용이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고발 사유는 영화제 사무국이 협찬금 중개 수수료를 증빙서류 없이 줬고, 협찬활동을 하지 않은 업체에도 수수료를 지급했다는 건데, 영화제 쪽은 관행과 행정착오이며 유사한 사안을 가지고 고발한 전례가 없다고 한다. 또 일반 기업에서 받은 지원금이어서 감사원의 감사 대상도 아닌데 '보복감사'를 했다고 한다. 부산시는 감사원이 고발을 권고해서 했다고 하는데, 이게 고발해야 할 사안인지, 그런 전례가 있는지에 대한 감사원의 설명은 들리지 않는다. 남들의 이목 같은 건 신경 쓰지 않겠다? 내가 의아한데, 전세계 영화인들이 다 의아해하지 않을까.

이 권력은, 이 권력에 속해 있는 이들은 참 집요해 보인다. '찍힌 인사', '밉보인 인사'는 끝까지 몰아낸다. 어떨 땐 '밉보이면 끝이다'라는 교훈을 남기려고 하는 것 같기까지 하다. 위에서 시키는 건지, 스스로 그러는 건지 여하튼 집요하다. 이 건도 마찬가지다. 재작년 부산영화제가 부산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다이빙벨>을 틀었고, 지난해 초 부산시장이 이 위원장을 사퇴시키려다가 영화계의 반발을 샀다. 이후 공동 집행위원장 체제를 도입하고 영화제를 성공적으로 치르면서 잠잠해지는가 했는데, 부산시가 이 위원장을 고발했다. 진짜 기관사가 누구이든, 부산시는 앞에 무엇이 있는지 상관없이 달려가는 기차처럼 보인다.

<와이어>라는 미국 드라마를 보면, 마약조직이 지역 주민들에게 '교훈'을 남기겠다고 자신들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증인을 살해해서 경찰과의 전쟁을 불러온다. 어떤 일이든 무리하면 원치 않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이 위원장에 대한 고발을 비난하는 성명이 외국에서 날아들고, 영화인들은 이 위원장의 변호사 비용 마련을 위한 '1일 호프'를 열고 하는 가운데 아직은 조용한 분위기에서 '부산영화제 출품 거부' 소리도 조금씩 들린다. 말을 아끼고 자제하는 모습이지만, 지금 부산시가 달려가는 저 철도 앞에 영화인들이 막고 서 있는 게 보이는 것 같다.

표현의 자유와 영화제의 독립성 확보라는 명분 앞에선 영화인들도 어쩔 도리가 없을 거다. 실제로 그런 일들이 있었다. 칸영화제에선 영화인들이 영화제를 보이콧했고, 부천국제영화제에선 영화제 출품을 거부했다. 영화제의 역사는 그런 검열과 간섭에 맞선 싸움이기도 하다. 칸영화제 레드카펫 위에서 빛나는 스타들의 화려한 향연이 가능한 것도, 그 영화제가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투쟁을 게을리하지 않았기 때문일 거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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