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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원 감축안 부결시킨 일산의 한 아파트

ⓒgettyimagesbank

“지금처럼 20명의 경비 아저씨들이 계속 같이 있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려울 때, 서로 돕는 건 아주 좋은 마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호수초등학교 6학년 학생)

아파트 경비원 구조조정에 대해 주민들의 찬·반 의견을 묻는 안내문이 부착된 경기도 고양시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 해고에 반대하는 의견을 적은 주민들의 따뜻한 ‘소자보’가 연이어 게재된 사실이 알려져 뒤늦게 화제를 낳고 있다.

고양시 일산동구 장항동에 있는 호수마을 4단지 엘지롯데아파트에서 5년째 사는 공헌(55)씨는 지난해 12월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경비원 구조조정에 대한 입주민 의견수렴’ 안내문과 주민들이 쓴 소자보가 촬영된 사진 5장을 올렸다.

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명의로 적힌 안내문을 보면, 입주자대표회의는 경비원 구조조정 제안 이유를 “2014년 1억5000여만원의 공사비 투입으로 현관문 자동화 시시티브이(CCTV) 보완설비 완비로 도난 등 문제 해결했다”고 밝혔다. 안내문은 이어 “2015년 최저임금 재인상으로 입주민 (관리비) 부담액이 4억여원으로 늘게 됐다”며 “2년간 전체 8억원의 부담이 현실화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구조조정이 불가피해 경비 20명에서 10명으로 감축하여 운영해도 문제가 없다”는 내용을 담았다. 안내문은 또 “아파트 경비원 구조 조정시 감축 금액이 연간 2억1천여만원”이라며 “이는 보도블록 전체 공사비에 해당하는 비용”이라고 밝히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의 한 아파트에 거주하는 가족이 경비원 감축안에 반대하는 의견을 담은 글

이에 이 아파트 주민들은 자신이 사는 동과 호수까지 밝히면서 경비원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견해를 글로 써서 붙이기 시작했다.

경비원 감축안에 반대한다는 한 가족은 “‘몇 명을 자르면 몇 억원이 절감된다’는 식으로 총액을 앞세우는 것은 중립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이 가족은 “경비원들은 아파트 경비는 물론, 분리수거 정리, 택배의 안전한 전달, 낙엽과 나뭇가지 치우기, 화단 가꾸기 등 관리비 계산에 잡히지 않은 많은 수고를 하고 계시다”며 “경비원들에게 최저임금의 인상은 삶의 질의 부분적 개선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이어 “최저임금으로 경비원들의 생존권이 흔들린다면, 우리 스스로 사회적 모순에 앞장선 꼴이 된다”며 “아침, 저녁으로 인사를 나누던 분들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는다면 과연 우리 공동체가 지향하는 가치는 무엇이겠냐”고 반문했다.

이 아파트에서 20년째 살아왔다는 입주민 역시 소자보에 적은 글에서 “이번 사안은 이미 2014년 말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해 (경비원) △20명 유지안 △5명 감축안 △10명 감축안을 놓고 주민 투표를 벌여 20명을 유지하기로 한 사안”이라며 “그때 가장 적은 투표수를 기록한 10명 감축안으로 다시 투표를 한다는 것이 어떤 이유인지, 누구를 위한 투표인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호수 4단지는) 2014년 전국적으로 문제가 됐던 경비원 구조조정 문제에 대해 관리비를 조금 더 내더라도 같이 생활했던 경비원 아저씨들과 함께 간다는 결정을 내렸다”며 “최저임금은 당연한 노동의 대가다. 사람이 보도블록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손글씨로 적은 소자보도 속속 등장했다. 또 다른 입주민은 글에서 “깨끗하고 안전한 아파트는 CCTV도 보도블록도 그 어떤 기계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호수초등학교 6학년이라고 밝힌 학생도 “경비원 인원 감축 의견을 반대한다”는 의견을 손글씨로 적었다. 이 학생은 “경비 아저씨들과 인사도 많이 나누고, 겨울에 같이 주차장 길의 눈도 치워드렸다”며 “이렇게 정이 많이 든 경비 아저씨들인데 10명만 남기고 자르는 것은 너무하다”고 전했다. 이어 “2014년에는 20명의 경비 아저씨들이 같이 있기로 투표했는데, 1년도 안돼서 바꾸는 건 말도 안 된다”며 “돈이 부족하면 입주민분들이 좀 더 내면 되지 않겠냐”고 했다.

학생은 또 “어려울 때, 서로 돕는 건 아주 좋은 마음이 아니겠냐”며 “(경비원 인원 감축 찬반 투표 때) 경비 아저씨들의 입장도 생각해보고 투표를 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런 의견이 모인 결과, 이 아파트는 경비원 구조조정을 시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엘지롯데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4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새롭게 구성된 입주민 대표자 회의에서 새해에 최저임금이 오르니까 경비원 고용 유지와 관련해 찬반 여부를 묻게 된 것인데, 주민투표 결과, 경비원 20명이 현행대로 근무하게 됐다”며 “경비원들의 최저임금이 올라도 주민들이 비용을 부담할 테니, 경비원을 줄이지 말자는 의견이 더 많았다”고 설명했다.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 공씨는 “각박한 인심에 우울했는데, 여러 장의 구조조정 반대 소자보가 붙었다. 주민들이 쓴 소자보가 투표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며 “경비원분들의 일자리가 줄어든다면 안타까울 것 같았는데, 주민들의 의견이 모여 경비원 인원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한 것이 고맙다. 이런 주민들과 같이 산다는 게 뿌듯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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