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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히어로의 세계화 | 배트맨, 고담 밖으로!

DC코믹스는 수 십 년에 이르는 히어로 만화의 긴 역사 속에서 꾸준히 배트맨의 세계를 국제무대로 넓히고 확장해 왔다. 그렇게 배트맨은 고담 시와 배트배밀리를 뛰어넘어 DC 유니버스 전체를 아우르는 멘토로까지 성장했다. 오늘은 배트맨이 슈퍼맨 이상의 거인이 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요소인 만화 시리즈 《배트맨: 더 브레이브 앤 더 볼드》와 슈퍼 히어로 팀 '아웃사이더즈'. 그리고 악당 '라스 알굴'을 소개하려 한다.

  • 이규원
  • 입력 2016.01.05 05:53
  • 수정 2017.01.05 14:12
ⓒDC

[배트맨 데이 기념 특별 연재 15] 슈퍼 히어로의 세계화

─ 배트맨, 고담 밖으로!

'고담'이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활동하는 어둠의 기사. 팀 버튼과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영화를 보아도 배트맨은 별로 이 도시를 벗어나는 법이 없다. 그의 활동과 싸움은 주로 한 도시 안에 국한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배트맨이 DC 코믹스 슈퍼 히어로의 만신전 안에서 가장 위대한 영웅 중 하나로 추앙받고 있다는 사실, 그에게는 GCPD나 배트패밀리 외에도 '저스티스 리그'나 '아웃사이더즈' 같은 여러 히어로 팀에 친구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어디에서건 항상 리더이자 지휘자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어느날 그가 우주적 위협에 맞서 슈퍼 히어로 군단을 이끄는 수장을 맡는다고 해도 의문을 품을 사람은 없다. 왜 그럴까? 배트맨의 인기가 높기 때문에? 아니면 브루스 웨인의 엄청난 재력과 영향력 때문에?

DC코믹스는 수 십 년에 이르는 히어로 만화의 긴 역사 속에서 꾸준히 배트맨의 세계를 국제무대로 넓히고 확장해 왔다. 그렇게 배트맨은 고담 시와 배트배밀리를 뛰어넘어 DC 유니버스 전체를 아우르는 멘토로까지 성장했다. 오늘은 배트맨이 슈퍼맨 이상의 거인이 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요소인 만화 시리즈 《배트맨: 더 브레이브 앤 더 볼드(Batman: The Brave and the Bold)》와 슈퍼 히어로 팀 '아웃사이더즈'. 그리고 악당 '라스 알굴'을 소개하려 한다.

DC 세계의 메인에 서다. 《더 브레이브 앤 더 볼드》

골드, 실버 에이지 컨셉의 디자인과 현대적 액션이 조화를 이룬 《배트맨: 더 브레이브 앤 더 볼드》 오프닝.

(동영상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Mu_yazDpHWc)

먼저 《배트맨: 더 브레이브 앤 더 볼드》의 오프닝부터 감상하자. 2008년부터 2011년까지 방영된 이 애니메이션에서 배트맨은 복고풍의 코스튬을 입고 빠르고 시원시원한 현대적 액션을 선보이고 있다. 그러나 《더 브레이브 앤 더 볼드》는 원래 슈퍼 히어로를 그리는 만화가 아니라 로마 시대 '황금의 검투사', 바이킹 시대 '바이킹 왕자', 십자군 시대 '침묵의 기사' 등 고전적 주인공과 그 영웅담을 그린 만화로 채워진 잡지였다. 이것이 어떻게 배트맨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변신한 것일까?

DC 코믹스는 슈퍼 히어로의 전성기가 도래할 때면, 새로운 히어로의 아이디어를 무작정 남발하기보다는 특정한 만화 하나를 시험 무대로 삼아 독자의 반응을 살펴보는 방법을 선택한다. 맨땅에서 히어로의 시대를 일궈낸 골든 에이지 시대의 경우에는 《올스타 코믹스》를 통해서 여러 히어로를 선보이다가 그중 인기가 있는 히어로를 하나씩 독립시키는 방식을 취했고, 이후에 찾아온 1960년대 실버 에이지 시대에는 DC와 마블 모두 기존에 출판하던 역사물이나 SF물에 슈퍼 히어로의 밑밥을 슬그머니 던져 보는 식으로 독자의 반응을 살폈다. 물론 그중에는 애초에 히어로물로 발전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내용도 있었지만, 이 방식이 먹힌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어느새 몇몇 만화들이 슈퍼 히어로의 시험장으로 변신하고 있었다. 마블 같은 경우에는 앤트맨을 탄생시킨 《테일즈 투 어스토니시(Tales to Astonish)》나 토르를 탄생시킨 《저니 인투 미스테리(Journey Into Mystery)》 같은 만화 잡지가 그런 케이스였고, DC에서는 《더 브레이브 앤 더 볼드》가 같은 역할을 했다. 한 예로 2016년 개봉 예정인 DC의 히어로팀인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1959년 《더 브레이브 앤 더 볼드》 25호를 통해서, '저스티스 리그'는 《더 브레이브 앤 더 볼드》 28호를 통해 실버 에이지의 문을 두드렸다. 로빈, 키드 플래시, 아쿠아래드 등 어린 히어로가 주인공인 히어로팀 '틴 타이탄즈' 또한 《더 브레이브 앤 더 볼드》 54호로 데뷔했다.

틴 타이탄즈의 시작을 알리는 《더 브레이브 앤 더 볼드》 54호 표지. 저스티스 리그가 시작된 25호의 표지는 '배트맨의 냉장고를 열어 보자' 1편에서 찾을 수 있다.

(이미지 출처: http://dc.wikia.com/wiki/Brave_and_the_Bold_Vol_1_54?file=Brave_and_the_Bold_54.jpg / TM &Copyright © DC Comics, Inc. ALL RIGHTS RESERVED.)

1966년 아담 웨스트의 TV 시리즈가 인기를 얻고 배트맨의 시대가 돌아오자 DC 편집부는 탄탄한 인기를 자랑하는 배트맨을 이 시리즈의 전면에 내세우고, 매 호 새로운 히어로가 그의 파트너가 되어 모험을 펼치는 포맷을 정착시킨다. 이 시리즈를 통해 배트맨은 원더 우먼, 그린 랜턴, 플래시, 아쿠아맨, 그린 애로우, 블랙 카나리, 스펙터, 호크맨, 아톰, 플라스틱맨, 와일드캣, 팬텀 스트레인저, 데드맨, 메타모르포, 메탈맨, 크리퍼, 아담 스트레인지, 데몬, 미스터 미라클, 스웜프씽, 카만디, 언노운 솔저, 락 상사, 슈퍼걸, 틴 타이탄즈, 레드 토네이도, 닥터 페이트, 블랙 라이트닝, 블랙호크, 자타나, 네메시스, 스캘프헌터, 파이어스톰, 로이스 레인, 일롱게이티드맨, 로빈, 헌트리스, 슈퍼 보이, 가라데 키드, 랙맨 등 다양한 만화 주인공과 팀을 이루어 활동하는데, 이 리스트는 비단 슈퍼 히어로 만화의 주인공에만 머물지 않고 DC에서 출판하는 전쟁 만화, 서부 만화, SF만화, 재난 만화, 공포 만화 등 다양한 장르의 주인공들까지 아우르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시리즈를 통해서 배트맨은 단순히 인기 높은 캐릭터가 아닌, DC 만화 세계 전체에서 히어로를 이끄며 다양한 문제에 뛰어드는 중심인물로 성장한 것이다.

낡은 원칙을 버리고 선택한 새로운 정의 '아웃사이더즈'

짐 고든: 자네들은 누구인가? 저스티스 리그 멤버들인가?

배트맨: 아닙니다. 국장님. 난 이제 리그 소속이 아닙니다. 저들은... 아니 우리는 아웃사이더입니다.

"이 사람들이 내 새로운 파트너야!"

배트맨이 새로이 조직한 히어로 조직, '아웃사이더즈'가 처음으로 등장한 《배트맨과 아웃사이더즈》 1호 표지.

(이미지 출처: http://dc.wikia.com/wiki/Batman_and_the_Outsiders_Vol_1?file=Batman_and_the_Outsiders_Vol_1_1.jpg / TM &Copyright © DC Comics, Inc. ALL RIGHTS RESERVED.)

프랭크 밀러의 『다크 나이트 리턴즈』와 『배트맨: 이어 원』이 배트맨의 세계를 더 어둡고 현실감 있게 바꾸어 놓기 직전인 1983년, 《배트맨과 아웃사이더즈》 1호가 출간된다. 웨인 엔터프라이즈의 대표 이사인 루시우스 폭스가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위치한 (가상의) 소국 마코비아에서 일어난 쿠데타에 휘말려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배트맨은 저스티스 리그에 도움을 요청하지만, 저스티스 리그는 정치 사태에 개입하지 말라는 UN의 명령을 받고 있는 상태. 결국 배트맨은 리그를 탈퇴하고 친구를 구하러 마코비아로 달려간다. 그 과정에서 그는 메타모르포, 블랙 라이트닝, 지포스, 카타나, 헤일로라는 다섯 히어로를 친구로 얻어 루시우스를 구해 낸다. 그리고 이들은 힘을 합쳐 쿠데타의 괴수인 베들럼 남작을 물리치고 마코비아를 안정시킨다.

배트맨: 모두들 나를 따라와. 내가 도와주마. 너희들이 찾는 것. 힘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법. 혹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해답, 혹은 자신의 삶의 목적에 대한 해답. 내가 찾을 수 있게 해 주마.

이후 배트맨은 새로이 알게 된 젊은 히어로들에게 자신이 예전에 사용하던 고담 파운데이션 지하의 배트케이브를 본부로 제공하고 그들을 훈련시키기 시작한다.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 이 팀은 마블의 '엑스포스'처럼 메인 히어로 팀이 명분상 손댈 수 없는 사안에 뛰어드는 비밀 특공대가 되어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더럽고 은밀한 사건을 처리하는 일을 맞는다. 이 시리즈를 통해서 배트맨은 주류 히어로들을 리드하면서도 독자적인 노선을 추구하는 히어로이자, 고담 밖의 초보 영웅들을 자신의 전쟁에 끌어들이고 실력을 갖추게 성장시키는 스승의 모습으로 영역을 넓혀 나간다.

가장 고전적인 악당이 가져온 진화 '라스 알굴'

1971년 《배트맨》 232호(국내에 정식 출간된 『DC 앤솔로지』에 수록되어 있음)에서는 라스 알굴이라는 새로운 악당이 등장한다. 라스 알굴은 세계 정복과 세계 파괴를 꿈꾸는 악당으로, 그의 등장으로 배트맨의 싸움은 고담이라는 경계를 벗어나 세계적 규모로 확장된다. 이제 배트맨의 적은 고담의 연쇄 살인범과 사이코 범죄자, 조직 폭력단뿐만 아니라 제임스 본드처럼 국제적 테러리스트, 정체불명의 비밀 조직까지 아우르게 되었다.

재미있게도 배트맨의 이러한 진화는 그의 신화를 그 기원에서부터 재조명함으로서 이루어졌다. 라스 알굴은 영국 작가 색스 로머가 만든 중국인 보스이자 《디텍티브 코믹스》 1호의 원조 악당이었던 푸 만추, 그리고 배트맨의 전신이었던 펄프 히어로 섀도우의 악당 '시완 칸'을 모델로 만들어진 캐릭터였다. 푸 만추는 암살자 출신으로 공산주의 국가가 된 중국을 전복해 옛모습을 되살리고 유럽을 정복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으며, 영생의 약물을 개발해 수명을 늘렸고, 자신에게 완벽한 충성심을 보이면서도 적을 돕는 아름다운 딸을 두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라스 알굴에게는 무한의 생명을 누릴 수 있게 하는 라자러스 핏이 있고, 그의 딸 탈리아 알굴 역시 아버지 라스 알굴과 그의 적 배트맨 양쪽 모두와 손을 잡고 있다.

라스 알굴의 기원을 쫓아가면 '닥터 데스'라는 인물도 등장한다. '닥터 데스'는 《디텍티브 코믹스》 29호에서 등장했던 배트맨의 초창기 멤버이기도 하거니와, 정식 출간될 예정인 뉴 52 배트맨 5권 『제로 이어 - 어둠의 도시』에서도 배트맨 시리즈가 지닌 괴기스럽고 공포스러운 면모를 돋보이게 하는 무섭고도 불쌍한 악당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닥터 데스는 본래 1935년 에드워드 노리스라는 작가의 펄프 소설(20세기 초반에 유행했던 싸구려 소설 잡지)에 등장하는 악당의 이름으로, 과학기술을 통해 발전해 가는 문명 사회를 파괴하고 지구를 본래의 자연적이고 조화로운 상태로 돌리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인물이었다. 라스 알굴 또한 이 원조 닥터 데스의 목적을 어느 정도 이어받고 있다.

밥 케인이 배트맨을 창조할 때 영향을 받았던 펄프 히어로 '섀도우'의 악당 시완 칸 역시 라스 알굴에 영감을 준 캐릭터 중 하나로, 티베트에 근거지를 두고 세계 정복을 꿈꾸는 인물이다. 구시대의 유물처럼 여겨지는 고전적 악당 속에 진화의 단초들이 숨어 있었던 셈이다. 라스 알굴의 유산은 꾸준히 진화를 거듭해 오늘날 배트맨의 아들인 데미안 웨인(그의 어머니가 탈리아 알굴이다.)에게로까지 이어지며 배트맨 세계를 넓혀 가고 있다.

《디텍티브 코믹스》 29호의 악당에게 이름을, 라스 알굴에게 자신의 사상을 전해 주었던 소설 속 닥터 데스. 『배트맨 5: 제로 이어 - 어둠의 도시』에서는 스콧 스나이더가 새롭게 창조해 낸 닥터 데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미지 제공: 세미콜론)

배트맨의 고민을 통쾌하게 풀어 준 『어소리티』

마지막으로 '아웃사이더'의 탄생에서 잠깐 언급했던 히어로와 국제 사회의 마찰, 그리고 라스 알굴과 같은 세계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이야기를 현대적인 스토리와 그림으로 재미있게 풀어낸 작품이 하나 있어서 소개한다.

『어소리티』는 보통 1950년대 로빈과의 관계를 의심받았던 배트맨에 착안하여 아예 배트맨을 동성애자로 패러디한 '미드나이터'와 그의 파트너이자 슈퍼맨을 모델로 만든 캐릭터 '아폴로'. 그 외 여러 특이한 히어로들이 어소리티라는 팀을 이루어 벌이는 활약상을 그린 만화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 이 만화는 배트맨과 동성애의 관계를 소개할 때만 언급되는 것이 아쉬울 만큼 배트맨 만화가 오랜 역사를 걸쳐서 일궈 온 국제적 영웅으로서의 모습도 반영하고 있다.

국내에도 정식 출판된 『어소리티』 1권과 2권은 워런 엘리스와 마크 밀러 두 명의 작가가 나누어 썼는데, 워런 엘리스의 스토리에서는 푸 만추와 시완 칸, 라스 알굴을 종합한 가모라라는 캐릭터가 등장해 세계 정복을 위한 무시무시한 테러를 시작하고, 미드나이터를 중심으로 히어로들이 뭉쳐서 그를 무찌른다.

워런 엘리스의 뒤를 이어 13호부터 스토리를 맡은 마크 밀러는 외부로부터의 위협이 아닌 지구 내부의 문제에 초점을 돌려 각지의 분쟁 지역, 독재 정부, 인권 탄압 국가에 개입해 압제자들을 철저히 응징하고 권력을 국민들에게 돌려주는 히어로들의 모습을 보여 준다. 이때 히어로들이 내세운 원칙은 '독재자 응징', '권력을 국민에게', 평화를 명분으로 삼은 서방국가의 간섭과 범죄 방조를 차단하는 것, 갈 곳이 없는 난민들을 자신들의 초거대 함선에 전부 받아들여 보호하는 것 등이었다.

* 이 연재는 세미콜론과 공동으로 기획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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