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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미래의 밥그릇을 작게 던져주고 젊은 세대끼리 서로 싸우도록 만든 것"

ⓒ한겨레

[더불어 행복한 세상] 청년에게 공정한 출발선을

계나는 호주에서 여전히 행복할까?

장강명(41) 작가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의 여주인공 계나는 “한국이 싫어서” 호주로 떠난다. 계나는 홍익대를 졸업한 뒤 금융회사에 취업한 20대 직장여성이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남자친구도 있다. 그런데도 그는 한국에선 자신이 ‘2등 시민’이라고 읊조린다. “명문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집도 지지리 가난하고, 그렇다고 내가 김태희처럼 생긴 것도 아니고. 나 이대로 한국에서 계속 살면 나중에 지하철 돌아다니면서 폐지 주워야 돼.”

이 소설은 지난해 5월 출간된 이후 2만부 이상 팔렸다. 지난달 26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장 작가는 “이 정도면 한국에서 살아도 되는 거 아닌가 싶은 조건의 주인공이 한국을 떠난 데 대해 독자들이 크게 공감하더라. 결국 한국에 돌아오지 않기로 한 대목도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준 것 같다”고 말했다.

계나는 호주에서 공부한 HJ와 호주 시민권을 취득한 P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인물이다. HJ는 호주 유학 뒤 영주권을 취득한 적이 있는, 장 작가의 아내다. P는 30대 후반 남성으로, 호주 시민권자다. 계나가 위조수표인 줄 모르고 환전하려다가 경찰에 체포된 일 등은 P가 실제 겪은 에피소드다. 장 작가는 “호주 시민권자인 P님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관광가이드를 하고 있었는데, 현지 생활이 만족스러운 것 같았다”고 전했다.

최근 한 온라인서점이 ‘올해의 책’ 선정을 위한 투표를 벌인 결과, <한국이 싫어서>를 고른 이들은 30대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 배경에 대해 장 작가는 “청년층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서 미래가 답답해 보이는 것도 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의 전근대적 문화가 20·30대를 못살게 구는 것도 이 나라를 떠나고 싶게 만드는 이유”라고 말한다. 청년세대의 인권감수성은 높아지는 데 비해, 연령이 낮거나 여성일수록 존중받지 못하는 문화가 사회 곳곳에 배어 있다는 얘기다. 계나가 아프리카 초원 다큐멘터리에서 사자한테 잡아먹히는 ‘톰슨가젤’에 스스로를 빗댄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려는 동생에게 “호주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게 한국에서 동사무소에서 일하는 것보다 나쁘지 않을걸”이라며 한국 사회를 조롱한다.

청년 독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소설에 공감한다는 대학생 ㄱ씨는 ‘한국을 대하는 20대의 태도’와 관련해, 주변 지인들을 직접 인터뷰한 내용을 보내오기도 했다. 한 취업준비생은 “우리 세대는 할 수 있는 최선의 선을 넘어 안드로메다급으로 하고 있다. 전세계 어느 나라에서 먹고살려고 연애, 결혼, 출산 등 기본적 생활을 다 포기하느냐”며 답답한 현실을 토로했다. “우리는 너무 약자이기 때문에 삶을 지키려면 침묵해야 한다”거나 “과거 세대보다 ‘헝그리 정신’이 없어서 노력을 덜 한 것 같다”는 움츠린 모습도 전해졌다.

장 작가는 “1980년대 이후 한국에서 태어난 것 자체가 일종의 ‘핸디캡’이 돼버렸다. 과거 기성세대가 코뿔소처럼 돌진하던 것과 똑같이 하라고 해선 안 된다. 바로 옆이 천길 낭떠러지인데 어떻게 돌진을 하나. 청년들로서는 웅크리고 있다가 기회가 왔을 때 먹이를 확 물 수 있는 호랑이나 뱀의 생존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마흔 줄에 들어선 작가가 왜 청년 문제를 직시하게 됐을까. 그는 “진보냐 보수냐를 떠나서, 한국이 청년들에게 동등하게 기회를 못 주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적어도 인정을 해야 한다. 그걸 못 하면 노력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요즘 공채 제도의 문제를 드러내는 논픽션을 쓰려고 부지런히 취재하고 있다. “사법시험 존치 논란을 취재하는데 로스쿨생들과 고시생들이 서로 증오로 가득 차 있더라. 미래의 밥그릇을 작게 던져주고 젊은 세대끼리 서로 싸우도록 만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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