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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1월 04일 08시 49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1월 04일 14시 12분 KST

바보야, 문제는 '임금 격차'야!

그 이유가 무엇이건, 정부의 잦은 입시제도 변경이 공식적으로 표방했던 주요 목표는 늘 분명했다. 국민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입시지옥'과 '사교육 공포'로부터의 해방에 도움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그런 고상한 목표를 가진 일이 매번 실패로 돌아갔을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고도 분명하다. "바보야, 문제는 '임금 격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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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 따라 정권 따라 바뀌는 입시제도에 신물이 날 지경이다. 교육부 장관이나 대통령 마음대로 입시를 좌지우지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낸 이주호씨가 장관이 되기 전에 했던 말이다.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던 명언이었다. 그러나 그 역시 입시정책을 주도하면서 "정권마다 성형수술되는 대입에 국민은 진절머리가 난다"는 비판을 받았다. 박근혜 정부 역시 "아이들을 상대로 교육과정을 실험하고 있다"는 비판에 어울리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왜 그럴까? 왜 정부는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학생과 학부모를 괴롭히고 사교육 시장을 키우기만 할 뿐인 그런 어리석은 짓을 끈질기게 반복해대는 걸까?

지적으로 모자라는 사람들이 정부에 몰려 있기 때문일까? 학생과 학부모를 괴롭히겠다는 악의 때문일까? 사교육 업체들의 포로가 되었기 때문일까? 10대를 입시지옥에 묶어둬 체제 순응 정서를 함양시키겠다는 생각 때문일까? 이전 정권이나 장관을 부정하면서 새 역사를 만들고 싶어하는 정략적 과욕 때문일까? 아니면 사실상 답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뭔가 일을 하는 척 밥값을 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일까?

그 이유가 무엇이건, 정부의 잦은 입시제도 변경이 공식적으로 표방했던 주요 목표는 늘 분명했다. 국민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입시지옥'과 '사교육 공포'로부터의 해방에 도움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그런 고상한 목표를 가진 일이 매번 실패로 돌아갔을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고도 분명하다. "바보야, 문제는 '임금 격차'야!"

학력과 학벌에 따른 임금 격차를 완화하지 않는 한 '입시지옥'과 '사교육 공포'로부터의 해방은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아예 불가능하다. 이 대원칙에 대한 국민적 합의와 확인이 필요하다. 그래야 정부 내의 기존 분업 체제가 낳고 있는 가공할 폐해를 없애는 게 가능해진다. 즉, 교육부가 임금 격차 완화는 소관 업무가 아니라는 이유로 입시제도 변경을 통해서만 답을 찾으려고 하는 원초적 오류를 중단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화제가 된 장하성 고려대 교수의 <왜 분노해야 하는가: 분배의 실패가 만든 한국의 불평등>은 그런 임금 격차 문제에 대한 명쾌한 답을 제시하고 있어 반갑다. 장 교수의 주장에 내 생각을 조금 보태 말씀드리자면 이런 이야기다.

중소기업 노동자는 대기업 노동자가 받는 임금의 60%,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 노동자가 받는 임금의 60%를 받는다. 변화는 거의 없다. 처음에 부여된 신분이 평생 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 신분 획득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학력과 학벌이다. 그래서 한국인에겐 어느 대학을 가고 어느 기업에 어떤 조건으로 취직하느냐가 목숨을 건 전쟁이 된다. 전쟁을 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게다.

그런데 우리는 이상한 미신을 갖고 있다. 임금 격차는 시장논리에 따른 것이므로 인위적으로 줄이는 게 불가능하다고 믿는 미신이다. 그래서 야당과 진보 정치권도 임금 격차 완화를 위한 방안에 주력하기보다는 사회복지 확대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임금 격차 완화를 위한 시도가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 간의 '노노 갈등'을 만들 가능성을 두려워하는 당파적 보신주의 때문에 모든 문제를 '자본 대 노동'의 구도로만 몰아감으로써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장 교수는 '시장'에 대한 우리의 착각과 맹신을 지적하면서 임금 격차를 완화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며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역설한다. 나는 그가 제시한 여러 대안들을 놓고 국민적 대토론이 치열하게 벌어지길 바란다. 언론이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싸움에 쏟는 관심의 반의반만이라도 이 문제에 할애해 정치적 갈등을 생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을 열어주면 좋겠다. 임금 격차가 계속 악화되는 걸 방치하면서 상위 10% 안팎의 좋은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각자도생과 승자독식 방식으로 국민적 혈투를 벌이는 건 너무 어리석고도 잔인하지 않은가.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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