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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한국인이 되는 법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정치적 타결은 매우 제한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오히려 이 문제는 시민사회의 영역에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처럼 많은 시민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위안부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뜨거운 관심의 방향을 보면 우려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 최범
  • 입력 2016.01.03 08:02
  • 수정 2017.01.03 14:12
ⓒgettyimageskorea

지금은 좋은 한국인이 되기에 아주 좋은 시간이다. 박근혜와 아베를 욕하고(더불어 <제국의 위안부>를 쓴 박유하도 욕하고), 위안부 소녀상 이전을 반대하며 우리 손으로 위안부재단을 만들자고 외치기만 하면 좋은 한국인이 될 수 있다. 이 얼마 만이던가. 정치의 파탄과 저성장과 청년실업으로 고통받는 헬조선에 모처럼 찾아온 난장의 시간이 아닌가. 우리들은 2002년 월드컵 이후 모처럼 서로의 번들거리는 얼굴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하나 된 한국인임을 확인하고 있다. 뿌듯하지 않은가. 대~한민국!

하지만 지금 나는 이 열기가 왠지 수상하다. 아니 솔직하게 말해서 공포스럽다. 2002년 월드컵 때 그랬던 것처럼. 이 민족의 이름으로 하나 된 힘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이것은 정말 제대로 된 정념의 산물인가. 혹시 빗나간 광기는 아닐까.

한일 위안부 협상이 잘 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어차피 대한민국과 박근혜 정부에 아무런 기대가 없다. 이들은 미국과 일본이 시키면 얼마든지 전쟁이라도 할 세력들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정치적 타결은 매우 제한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오히려 이 문제는 시민사회의 영역에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처럼 많은 시민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위안부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뜨거운 관심의 방향을 보면 우려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첫째,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민족 문제 이전에 보편적 인권의 문제로 본다면, 왜, 미군 위안부와 한국군 위안부 문제는 도외시하는가. 아니 오늘날에도 만연한 매춘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이와 무관하다고 할 수 있는가. 물론 모든 문제가 언제나 동시에 다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문제는 일정하게 초점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너무 맹목적이고 편협하다. 우리가 진정 일본군 위안부의 고통에 대해 공감한다면, 당연히 그와 유사한 다른 고통들에 대해서도 그리하여야 한다. 하지만 혹여 지금 우리는 일본군 위안부의 고통만을 유달리 특권화하고 있지 않은가. 민족과 무관한 존재는 자신의 고통을 주장할 권리를 갖지 못하는가. 이 점에서 나는 우리가 위안부 문제를 보편적 인권의 문제가 아니라, 실은 민족주의적인 분풀이의 도구로 삼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종군위안부라는 야만적인 제도를 운영한 일본 제국주의의 범죄 행위에 대해 분노하면서 왜, 일제의 위안부 동원에 협력한 우리 내부의 범죄자들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는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국가에 의한 범죄는 그리 일방적인 것만은 아니며, 수많은 자발적, 비자발적 협력자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법이다. 나치의 범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범죄자는 히틀러와 나치당원만은 아니었다. 범죄 행위에 가담한 많은 주체들이 있었으며, 그들 존재에 대한 인지와 단죄 없는, 단지 최고 책임 구조에 대한 비판만으로는 범죄적 현실에 대한 올바른 통찰은 이루어질 수 없다. 이러한 주장을 단지 일제의 범죄를 희석시키려는 시도라고만 몰아붙일 것인가.

나는 이러한 이유에서, 지금 뜨겁게 일고 있는 한일 위안부 협상에 대한 거족적인 반대 운동을 흔쾌하게만은 지켜볼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운동이 사실상 민족주의적으로 선택된 분풀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 위안부 문제를 보편적 인권 문제가 아니라, 나쁜 일본을 혼내주기에 딱좋은 아이템으로 삼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작금의 현상을 결코 긍정적으로만 볼 수 없다.

한국의 민족주의는 서구 제국주의의 그것과는 달리 저항적 민족주의로서 일정하게 불가피하거나 긍정적인 면을 갖고 있다고 흔히 이야기한다. 하지만 지금 또 한 번의 민족주의적인 광기를 보면서도 그렇게 이야기할 수는 없다. 사실 우리의 민족주의라는 것 자체도 식민지 경험의 산물인 것이며, 우리가 좀 더 보편적인 문명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극복되어야 그 무엇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과연 좋은 한국인이 되기에 좋은 시간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좋은 한국인이 되기 이전에 먼저 좋은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좋은 인간이란 나와 이웃을 넘어서 되도록 많은 인간의 고통에 대해서도 반응할 수 있는 존재이다. 일본군 위안부의 고통에만 분노하는 우리는, 정작 우리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다른 인간의 고통에는 둔감한 존재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좋은 한국인 이전에 좋은 인간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인간은 언제나 좋은 한국인을 포함할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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