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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저성과자 해고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다

  • 허완
  • 입력 2015.12.30 11:49
  • 수정 2015.12.30 11:56

정부가 30일 '저성과자 해고'와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 지침 초안을 발표했다.

양대 지침은 노동계가 가장 강력하게 반대하는 사안으로, 올해 9월 노사정 대타협 과정에서도 최대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노동개혁 5대 법안의 국회 통과도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노정(勞政) 간 격렬한 갈등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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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 "공정한 절차 거치면 저성과자 해고 가능"

고용노동부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직무능력과 성과 중심 인력운영 가이드북 및 취업규칙 변경 지침 마련을 위한 전문가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정지원 고용부 근로기준정책관이 발표한 가이드북 초안에는 올해 노동계의 최대 논란거리였던 일반해고(통상해고) 관련 내용이 담겼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의 해고를 엄격하게 제한해 사측에서 근로자를 해고할 수 있는 근거로 '징계해고'와 '정리해고' 두 가지를 규정한다.

징계해고는 근로자가 횡령 등 개인적인 비리나 심각한 법규 위반을 저질렀을 때 해고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정리해고는 기업의 경영사정이 극도로 악화됐을 때 대규모 해고를 가능케 한다.

정부 초안은 '근로계약의 본질상 업무능력이 결여되거나, 근무성적이 부진한 경우' 등을 근로제공 의무의 불완전한 이행으로 보고, 이것이 해고의 사유가 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다만 해고의 정당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 단체협약·취업규칙 등에 업무능력 부족이 해고 사유에 해당함을 명확히 규정 ▲ 객관적·합리적 기준에 의한 공정한 평가 ▲ 교육훈련·배치전환 등 개선 기회 부여 ▲ 업무능력 부족으로 인해 상당한 업무 지장을 초래함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정당성 판단의 핵심 요소를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로 보고 평가제도의 설계와 타당성·신뢰성 확보 방안 등을 상술했다.

평가제도 설계에서는 개인의 주관적 판단이 아닌 업무능력과 근무실적을 대상으로 하고, 평가항목을 세분화·구체화해야 합리성을 높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설계 단계에서 노사협의회, 근로자 대표, 노동조합 등의 참여도 권고했다.

평가방법의 타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업무능력이나 성과를 영업실적 등 객관적 수치로 나타내는 '계량평가'나, 개인별 일정 목표를 정해놓고 달성 여부를 평가하는 '절대평가' 방식이 객관성을 높일 수 있다고 밝혔다.

평가의 신뢰성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평가위원회 등 복수의 평가자를 두거나, 여러 평가단계를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근로자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절차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평가 결과가 낮다고 무조건 교육훈련이나 배치전환 대상자로 선정할 경우에는 그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상에서 제외될 사례로는 ▲ 전직 명령 후 1년 이내인 자 ▲ 노조 전임 등 파견 복귀 후 1년 이내인 자 ▲ 업무상 재해로 인한 휴직 후 복귀 1년 이내인 자 ▲ 출산 또는 육아휴직 후 복귀 1년 이내인 자 등을 들었다.

해고에 앞서 근로자의 업무능력을 향상시키는 내용의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해고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근무실적이 낮은 원인이 근로자 적성과 업무의 불일치에서 비롯되는 경우에는 배치전환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고 밝혔다. 예컨대 대인업무를 기피하는 영업직원은 개발직 등 다른 직무로 전환해야 한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와 이를 토대로 한 교육훈련, 배치전환의 기회 등을 줬음에도 업무능력 또는 성과 개선의 여지가 없거나, 업무의 상당한 지장을 초래할 때는 근로자를 해고할 수 있다고 밝혔다.

◇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 추진…노동계 "쉬운 해고 만연·노동조건 악화"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청년과 함께하는 노동개혁 연내 입법 호소 대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정부 초안에는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와 관련된 지침 내용도 포함됐다.

취업규칙은 채용, 인사, 해고 등과 관련된 사내규칙을 말한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임금피크제처럼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취업규칙 변경은 노조나 근로자 과반수 대표의 동의를 받도록 규정했다.

정부 초안에서는 판례 등에 근거해 근로자의 동의를 받지 않은 취업규칙 변경이라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변경의 효력을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회통념상 합리성의 판단 기준으로는 ▲ 근로자의 불이익 정도 ▲ 사용자 측의 변경 필요성 ▲ 변경된 취업규칙 내용의 적당성 ▲ 다른 근로조건의 개선 여부 ▲ 노동조합 등과의 충분한 협의 노력 ▲ 동종 사항에 관한 국내 일반적인 상황 등 6가지를 제시했다.

고용부는 이날 전문가들이 제시한 의견을 적극 반영하고, 간담회 이후에도 중앙 및 현장 노사의 의견 등을 다양하게 수렴해 최종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기권 장관은 "양대 지침은 노사정 합의 정신에 입각해 철저히 현행법에 근거하고, 엄격한 요건과 절차를 요구하고 있는 판례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그 구체적인 기준과 절차를 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동계는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고용안정성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악인 상황에서 일반해고까지 도입되면 고용 불안이 극에 달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근로자의 고용안정성을 보여주는 근속기간의 경우 우리나라는 평균 5.6년에 불과해 관련 통계가 발표되는 OECD 25개국 중 가장 짧다.

한국노총의 강훈중 대변인은 "두산인프라코어의 예에서 알 수 있듯 기업들은 20대 청년들까지 무차별적으로 해고하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일반해고까지 도입되면 '쉬운 해고'가 만연하고 노동조건이 악화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고 말했다.

한노총은 정부의 일반해고 및 취업규칙 지침 추진을 노사정 대타협 파기로 간주하고 노사정위 탈퇴 등 강력한 대응 방침을 강구키로 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이날 토론회에 반발해 각각 정부서울청사 후문과 정문에서 고용부를 규탄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우려의 목소리는 학계에서도 나온다.

김상호 경상대 법학과 교수는 이날 간담회에서 "산업부가 아닌 노동부가 지침을 만들 때는 사용자가 아닌 근로자를 보호하는 지침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며 "저성과자 해고자 선정에서 노조나 근로자 대표의 참여를 보장해 그 공정성을 높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통상임금 논란 때도 고용부의 관련 '지침'이 있었지만, 기업 노조들이 이에 불복해 상위법인 근로기준법에 호소한 소송을 낸 결과 고용부의 지침을 뒤엎는 판결이 잇따랐으므로 이를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정 사안에 대해 예외적인 성격을 갖는 판결을 보편화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있다.

하갑래 단국대 법학과 교수는 "판례는 특정 사안에 대해 나온 특정 판결이며, 비슷한 사안에 대한 여러 판례가 쌓여야 판결 등의 근거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며 "판례가 바뀌면 해석이 바뀌기 때문에 지침으로 발전하려면 많은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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