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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역적인 위안부 협상이 남긴 5가지 불가피한 의문

  • 허완
  • 입력 2015.12.30 10:38
  • 수정 2015.12.30 14:34
South Korean former sex slave Lee Yong-su makes a gesture of protest at South Korean First Vice Foreign Minister Lim Sung-nam during his visit to a shelter for women, who were forced into Japanese military-run brothels during World War II, in Seoul, Tuesday, Dec. 29, 2015.  South Korean officials met with former sex slaves to seek their support for a landmark deal with Japan. (Jung Yeon-je/Pool Photo via AP)
South Korean former sex slave Lee Yong-su makes a gesture of protest at South Korean First Vice Foreign Minister Lim Sung-nam during his visit to a shelter for women, who were forced into Japanese military-run brothels during World War II, in Seoul, Tuesday, Dec. 29, 2015. South Korean officials met with former sex slaves to seek their support for a landmark deal with Japan. (Jung Yeon-je/Pool Photo via AP) ⓒASSOCIATED PRESS

*업데이트 : 12월 30일 오후 7시, "소녀상 이전은 위안부 기금의 전제가 아니"라는 일본 외무성의 공식 코멘트가 업데이트됐습니다.

한국과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 해결’을 선언했지만, 오히려 논란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분위기다. 피해자 할머니들은 이번 합의를 ‘외교담합’으로 규정하며 반발했고, 야당은 하루 만에 재협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국내외에서 ‘분명 일부 진전이 있었다’는 평가가 없는 건 아니다. 위안부 문제가 지닌 역사적·정치적·외교적 복잡성이나 현실적 가능성 등을 감안하면, 평가할 부분이 없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가 거센 비판에 직면한 이유는 비교적 분명하다. 아래와 같은 5가지의 의문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탓이다.

1.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은 왜 넣었나?

박근혜 대통령이 28일 오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장관 회담을 마치고 청와대를 방문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에게 자리를 안내하고 있다. ⓒAP

이번 합의의 ‘성과’를 평가하는 쪽에서도, 합의문에 이런 내용을 넣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거의 예외 없이 비판적인 의견을 내고 있다.

그러나 한일관계의 물꼬를 틀 이러한 전향성에도 불구하고 사죄와 반성, 책임이라는 말 속에서 아베 정권의 진실하고 진지한 마음을 읽어낼 수 없다. 바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국제사회에서의 상호 비난과 비판을 자제한다’는 지저분한 토씨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12월30일)

경향신문 유신모 외교전문기자는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명확히 하지 못했다는 것을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면서도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선언하고,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이 문제로 상호 비판하는 것을 자제한다는 약속을 일본에 해준 것이 진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동준 기타큐슈대 교수는 한국일보에 쓴 칼럼에서 "(1965년) 청구권협정의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이라는 대목 때문에 청구권자인 한국이 오히려 정치적, 법적으로 ‘을’이 돼버렸듯이, 이번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합의는 앞으로 한국 정부를 옭아매는 족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이 문구를 고집했다고 보도했다. “합의에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는 문구가 들어가지 않으면 교섭을 그만두고 돌아오라”고 기시다 외무상에 지시했다는 것.

반면 한국 정부는 ‘우리가 먼저 요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들은 요미우리 보도에 대해 “‘불가역적’이란 표현은 협상 도중 한국 측이 먼저 제기했다”고 전했다. 일본 정치인들이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한 고노담화 등을 부정하는 발언을 일삼는 것을 염두에 두고 “더이상은 말을 바꾸지 말라”는 취지에서 강조했다는 것이다. (서울신문 12월30일)

물론 ‘최종적·불가역적’이라는 문구가 한국과 일본 양국에 모두 적용된다고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정부도 이런 점을 강조하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와 관련해 "불가역이라 함은 한일 쌍방에 적용되는 것"이라면서 일본 정치인들이 역사 왜곡 등의 망언을 할 경우에는 다시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불가역성을 우리가 일본 측에 내준 거라고 볼 수 없다"고 단언했다. (서울경제 12월29일)

그러나 이 대목은 사실상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말자는 일본 측의 압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30일자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아베 신조 총리는 “앞으로 한국과의 관계에서 이 문제(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해 전혀 말하지 않는다”며 “어제로써 모두 끝이다. 더 사죄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2.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의견은 왜 묻지 않았나?

조태열 외교부 2차관이 29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 나눔의 집을 방문해 한일 위안부 문제 협상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에게 위안부 협상은 ‘외교적 사안’일지 몰라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정부는 할머니들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했다. ‘외교담합’이라는 반발이 나오는 배경이다.

정부는 거듭 ‘최선의 결과’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승적 견지에서” 이해를 구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만약 피해자 할머니들의 요구를 모두 관철시키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 미리 그 내용을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박두식 조선일보 사회부장은 역대 한국 정부가 할머니들에게 늘 ‘희망고문’을 해왔다며 이렇게 지적했다.

우리 정부는 일본에 국가 차원의 배상을 요구하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솔직하게 이것이 '쉽지 않은 요구'인지를 설득할 용기도 없었다. 그렇다고 일본을 향해 대담한 제안을 내놓을 자신도 없었다. (중략) 우리 정부는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이런 식으로 '희망 고문'을 해왔던 것이다. (조선일보 12월30일)

29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 나눔의 집에서 할머니들이 조태열 외교부 2차관의 한일 위안부 협상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합의문이 발표된 뒤에야 시작된 정부의 뒤늦은 ‘설득’도 문제로 지적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제 피해자와 국민의 이해를 당부하는 짤막한 메시지를 낸 것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직접 찾거나 청와대로 초청해 정부의 노력을 설명하고 합의안을 받아들여 달라고 간곡히 설득하는 성의가 필요하다. (동아일보 사설 12월30일)

위안부 협상 타결의 '얼굴'이었던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차관들이 할머니들을 만나고 있을 시각에 국회를 찾았다. 외부에 알리지 않고 나경원 외교통일위원장을 만났다. (중략) ...외교부 안팎에서는 "윤 장관은 국회가 아니라 피해자 할머니들부터 찾아갔어야 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조선일보 12월30일)

29일 나눔의집을 방문한 조태열 외교부 2차관이 남긴 말도 썩 적절해보이지 않는다. 조 차관은 “할머니들이 100% 만족스럽지는 않아도 일본 정부와 대표자로부터 정식 사죄를 받은 것이 이번 회담의 의미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코끼리 다리 만지듯 부분만 보지 마시고 전체의 모습을 천천히 들여다보고 의미를 평가해 주셨으면 합니다.”

피해 할머니들이 이 같은 당부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일보는 “두 차관이 할머니들에게 쓴 시간은 채 1시간이 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3. 소녀상 이전은 왜 언급했나?

“일본정부가 한국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을 우려하는 점을 인지하고 관련단체와의 협의하에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는 내용을 합의문에 담은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비판이 제기되는 건 크게 두 가지 지점이다. ①정부가 무슨 자격으로 그걸 언급하느냐는 것, ②그런 일은 없다더니 왜 말을 바꿨냐는 것.

일본 정부가 소녀상 철거를 합의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웠다는 얘기는 11월 초에도 있었다. 아베 총리가 한일 정상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런 뜻을 직접 전달했다는 보도가 있었고, 정상회담 직전에 열린 외교 회담에서도 이런 요구가 있었다는 뉴스도 전해졌다.

반면 한국 정부는 그동안 일본 측의 이런 요구에 대해 ‘소녀상은 민간이 자발적으로 설치한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심지어 합의 전날까지도 한국 정부는 이런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한국 정부가 소녀상 이전을 검토한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가 나오자 “소녀상은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설치한 것으로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못 박은 것.

그러나 막상 발표된 합의문에는 일본 측의 요구를 거의 그대로 수용한 내용이 담겼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외교 당국자는 “소녀상이라는 대상이 물리적으로 한국 땅에 있기 때문에 한국 장관이 말했지만 철거를 약속한 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또 청와대 고위 당국자는 “소녀상은 일본이 줄곧 문제를 제기해 온 사안이어서 이 요소를 빼고는 협상이 중단되고 말았을 것”이라며 “교섭을 진행하기 위해 한국이 언급은 했지만 일본에 양보한 건 없다”고 강조했다.

[업데이트] 연합뉴스 30일 오후 7시 보도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소녀상을 옮기는 것이 위안부 지원 재단에 돈을 내는 전제라는 아사히 신문의 보도를 강력하게 부인했다.

"일본 외무성은 30일 연합뉴스에 보내온 '공식 코멘트'를 통해 "이번 합의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공동 기자발표의 장(28일 서울)에서 발표한 내용이 전부"라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고 밝혔다. 또 일본 정부 고위 당국자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보도 내용에 대해 "멋대로 해석해서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은 정말 이상하다"며 "누가 말했는지 모르겠으나 (정부 인사라면) 그런 것을 멋대로 말할 리도 없다. 기시다 외무상에 대한 큰 실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당국자는 "(일본) 국민감정으로 10억 엔을 내므로 평화의 비(소녀상)가 철거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 약속의 전제 조건이라는 것은 전혀 다르다"며 "만약 전제 조건이라면 기시다 외무상이 얘기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그런 합의가 있었다면 비밀로 약속한 것이 된다. 일본 정부는 절대 그런 것을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12월 30일 보도

4. 왜 이렇게까지 서둘렀나?

사진은 지난 10월30일, 정상회담을 위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방한을 앞두고 열린 시위에 등장한 '가면'. ⓒAP

정부가 이번 합의를 서두른 배경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피해자분들이 대부분 고령이시고 금년에만 아홉 분이 타계하시어 이제 마흔 여섯 분만 생존해 계시는 시간적 시급성”을 언급했다. 그러나 ‘시간적 시급성’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점 등을 고려하면, 다른 이유가 있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경향신문은 다음과 같은 4가지 가능성을 거론했다.

  1. “임기 반환점을 돌면서 부쩍 ‘업적’에 집착하는 박 대통령 스타일이 투영됐다는 관측”
  2.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미국의 압박
  3. “박 대통령이 ‘연내 해결’ 공언 때문에 불완전 협상을 승인했다는 분석”
  4. “총선을 염두에 뒀다는 해석”

눈에 띄는 부분 중 하나는 “총선을 염두에 뒀다는 해석”이다. 보름 전인 15일, 연합뉴스는 ‘연내타결이 사실상 무산됐다’는 소식을 전하며 이렇게 전망한 바 있다.

한국은 내년 4월에 총선, 일본은 7월께 참의원 선거를 각각 치를 예정이어서 양측 모두 국민 정서상 예민한 문제인 군위안부 협상에서 유연한 태도를 보이기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연합뉴스 12월15일)

5. 지나치게 양보한 것은 아닌가?

평화나비 네트워크와 서울 대학생겨례하나 , 청년독립군 등 대학생 단체 소속 회원들이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일 정부간의 위안부 문제 협상 폐기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합의가 “실적 여건 하에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이루어 낸 결과”라고 밝혔다. 그러나 위안부 피해자 유희남 할머니는 “정부에 계신 분들은 잘한다고 하셨겠지만 우리는 너무 억울하고 분하다. 냉정해도 할 수 없다. 다시 가서 (회담을) 해 달라”고 말한다.

모두가 100% 만족할 만한 합의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아쉽다는 차원을 넘어 ‘굴욕외교’라는 비판까지 나오는 이유 지나친 양보 때문일 수 있다.

이번 협상은 피해자인 한국이 가해자 일본에 당당히 요구하는 지위를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한국이 더 양보하는 결과가 나왔다. 왜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했는지 정부는 국민적 의구심을 풀어줘야 할 책임이 있다. (경향신문 사설 12월30일)

‘외교무능’을 탓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양국의 협상 과정과 합의 내용이 결국 일본의 언론 보도 내용들과 거의 일치하는 결과로 이어지면서 한국의 협상력이 일본의 언론 플레이에 가로막혀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보다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에 실패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문화일보 12월29일)

한겨레는 “박 대통령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인식은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할 수 없는 것’(2013년 3·1절 기념사)이라는 초강경 기조에서 올 6월 이후 갑자기 타협 쪽으로 급선회했다”며 “박 대통령은 이후 협상의 주도권을 아베 총리한테 빼앗겼다”고 분석했다.

CBS노컷뉴스는 “박 대통령은 ‘피해자들이 수용할 수 있고, 우리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던 본인의 지론에 반하는 합의를 내놓고 말았다”며 “양국 합의가 졸속으로 의심받는 데에는 취임 초 강경 일변도였던 박 대통령 대일 기조와 최근 상황이 사뭇 달랐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사진은 "한국이 위안부 기록의 세계 기록유산 등재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점을 '부정'했다"는 산케이 신문 30일자 1면 기사(오른쪽)와 소녀상 철거가 위안부 피해자 지원재단에 대한 일본 정부의 10억 엔 출연의 전제라는 내용의 같은 날 아사히 신문 기사. ⓒ연합뉴스

일본 언론들은 합의문에 나오지 않았던 내용들을 연일 ‘이면합의’ 형태로 보도하고 있다. 연합뉴스는 일본 정부의 ‘언론플레이’를 탓하는 의견도 있지만, 한국 정부를 비판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한국 정부는 점점 궁지에 몰리고 있다.

30일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정대협의 수요집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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