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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의 냉장고를 열어 보자 | 히어로는 무엇을 먹고 사는가? 2편

초창기 배트맨은 음식을 요리하고 즐기는 쪽이라기보다는 모든 역량을 일에만 집중하는 쪽이다. 뉴 52의 《배트맨》 27호에서 브루스는 필요한 열량과 영양을 모두 담은 셰이크 한잔으로 아침을 때우는데, 대저택의 집사답게 런던 세인트 윌리엄 요리 학교에서 다양한 요리를 습득한 알프레드 입장에서는 그런 브루스가 탐탁지 않다.

  • 이규원
  • 입력 2015.12.28 12:18
  • 수정 2016.12.28 14:12

[배트맨 데이 기념 특별 연재 14]

배트맨의 냉장고를 열어 보자

─ 히어로는 무엇을 먹고 사는가? 2편

펭귄의 스퀴드 스쿼드, 슈퍼맨 스몰빌 오리지널 버거, 미스터 J의 크레이지 칠리 치즈 프라이, '미스터 웨인의 저택'식 스테이크. 다크 아워 에스프레소, 다크 디텍티브 아메리카노, 고담 매드니스 라테, 블랙 펭귄 아이스 에스프레소, 스몰빌 카페 모카, 크립토니안 엑소더스 핫초코, 배트맨 리턴즈 얼 그레이, 시네스트로 그린티 라테. 조커의 로코 나초....

이것은 농담이 아니라 실제 존재하는 DC 슈퍼 히어로 카페의 메뉴들이다. 말레이시아와 싱가폴에 개설되어 있는 이 가게는, 지난번에 소개했던 《킹덤 컴》 마지막 장면의 식당 '플래닛 크립톤'을 재현한 듯한 테마 카페다. 이번 글은 이렇듯 실제로 재현된다면 어떤 모습일까 절로 군침이 도는 슈퍼 히어로 만화 속 히어로들의 먹거리, 그 두 번째 이야기이다.

"영웅이여, 당신의 힘을 채울 연료를 선택하세요!"

(이미지 출처: DC 코믹스 슈퍼 히어로 카페(http://www.marinabaysands.com/restaurants/american/dc-comics-super-heroes-cafe.html) 홈페이지 )

요리사 슈퍼맨, 간편함의 배트맨

조용히 스테이크를 구우며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는 브루스 웨인처럼, 슈퍼맨 클라크 켄트 역시 자신의 기지인 '고독의 요새'에서 다양한 오락거리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영웅이다. 그랜트 모리슨의 《올스타 슈퍼맨》을 읽어 보면 고독의 요새에는 병 속의 도시 칸도르와 거대한 우주 왕복선, 배트케이브의 동전을 패러디한 거대한 조커 동전, 브레이니악과 비자로, 루터 같은 캐릭터의 실물 크기 인형으로 만든 거대 체스판, 심지어 태양을 잡아먹고 사는 썬이터를 키우는 방까지 재미있는 것들로 가득하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은 슈퍼맨이 직접 인양해 보관하고 있는 타이타닉호이다. 슈퍼맨은 이 배의 식당에 상을 차리고, 로이스 레인을 초대하여 실제 타이타닉호에서 제공되던 식사를 대접한다. 재료도 직접 골라서 준비한 것이라고.

반대로 『배트맨: 제로 이어』에 나오는 초창기 배트맨은 음식을 요리하고 즐기는 쪽이라기보다는 모든 역량을 일에만 집중하는 쪽이다. 뉴 52의 《배트맨》 27호에서 브루스는 필요한 열량과 영양을 모두 담은 셰이크 한잔으로 아침을 때우는데, 대저택의 집사답게 런던 세인트 윌리엄 요리 학교에서 다양한 요리를 습득한 알프레드 입장에서는 그런 브루스가 탐탁지 않다.

브루스 웨인의 초기 배트맨 활동은 식사 시간도 아껴야 할 정도로 고되고 힘들었다. 정식 출간 예정인 『배트맨 5: 제로 이어 - 어둠의 도시』 본문에서.

(사진 제공: 세미콜론)

나의 히어로를 돌려줘! 팬들의 와플 시위

사실 많은 히어로는 (배트맨 정도는 아니지만) 주로 간단한 식사를 즐기는 편이다. 배트맨이 배트케이브에서 다른 히어로들과 함께 있거나 할 때는 주로 샌드위치가 등장했고, 배트맨의 로빈들 중 하나인 스테파니 브라운처럼 '와플'을 고집하는 케이스도 있다. 스테파니는 3대 로빈인 팀 드레이크의 여자 친구로 시작해 팀이 로빈을 할 수 없던 시기 그 자리를 대신했던 재미있는 캐릭터이다. 그 기간이 짧기도 했고, 심한 고문 끝에 충격적인 죽음을 맞은 캐릭터로도 유명한데, 인기 히어로들이 그러하듯 후일 죽음에서 살아 돌아온 후에는 카산드라 케인의 뒤를 이어 4대 배트걸로도 활동한다.

이렇게 다양한 역할과 비극을 겪으면서 많은 팬들을 갖게 된 그녀의 와플 사랑은 감동적인 사건을 낳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녀의 와플 사랑은 2009년 그녀를 주인공으로 런칭된 새 《배트걸》 시리즈에서 내내 와플을 입에 달고 살 정도로 대단했다. 여기엔 그녀의 기호도 작용했지만, 배트걸 활동과 학교 공부로 바쁜 새내기 대학생 딸과 직장 생활로 바쁜 엄마로 이루어진 가정에서 가장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와플이었다는 까닭도 있는 듯하다. 아침에 일어난 엄마가 와플을 준비해 딸을 깨우고, 저녁에는 먼저 돌아온 딸이 와플을 구워 퇴근하는 엄마를 기다리는 모습은 일견 다정하고 행복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2011년 DC가 뉴 52라는 이름으로 대대적인 리런치를 단행할 때 스테파니 브라운의 배트걸만 쏙 빠지는 일이 벌어진다. 바버라 고든이 《배트걸》의 주인공으로 돌아왔기 때문인데('여성 히어로의 시대, 배트걸을 주목하라' 연재글 참고) 뉴 52 이후 스테파니의 등장을 애타게 기다리던 팬들은 2년 동안이나 아무 소식이 없자 DC 편집부에 와플과 와플 믹스를 보내며 그녀를 돌려 달라고 시위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녀는 2014년 《배트맨》 28호를 통해 뉴 52에 등장하게 된다.

누구보다 와플을 좋아했던 로빈, 스테파니 브라운. 2005년 《디텍티브 코믹스》 809호 표지와 그녀의 등장을 염원하며 만들어진 패러디 표지.

(이미지 출처: 왼쪽: http://dc.wikia.com/wiki/Detective_Comics_Vol_1_809?file=Detective_Comics_809.jpg, 오른쪽: http://thecomicforums.com / TM &Copyright © DC Comics, Inc. ALL RIGHTS RESERVED.)

오직 배트맨만 견딜 수 있었던 그린 애로우의 비법 요리!

스테이크를 요리하는 배트맨, 연인을 위한 특별한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슈퍼맨처럼 요리에 소질 있다고 자부하는 또 한 사람의 영웅이 있다. 그 이름은 그린 애로우. DC 세계에서 블랙 카나리와 닭살 커플로 명성이 자자한 그는 자신만의 비법 요리를 갖고 있다. 『그린 애로우: 롱 보우 헌터스』에서는 시애틀로 이사 온 그린 애로우와 블랙 카나리 커플이 짐을 정리한 후 오붓하게 중국 음식과 와인을 먹으면서 축하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디나(블랙 카나리)가 올리버(그린 애로우)에게 감사 인사를 표하자 올리버는 집안 대대로 전해지는 레시피라며 자랑을 한다. 배달 음식을 놓고 비법이니 어쩌니 농담을 하는 것이지만, 사실 그냥 하는 농담만은 아니다. 그에겐 여러 히어로들을 경악케 만든 전설의 레시피가 있었으니!

그 레시피의 존재가 처음으로 나온 이슈는 1971년 《그린 랜턴과 그린 애로우》 85호이다. 방문을 연 올리버가 안에서 팔뚝에 마약 주사를 놓고 있는 사이드킥 스피디를 발견하는 장면이 수록된 이슈다. 방문을 열기 전 올리버는 "스피디! 입에 불 나는 스페셜 칠리 요리를 해 줄 테니까 기대하라고!" 라고 외쳤는데, 그가 이 메뉴를 직접 요리하는 모습은 그로부터 8년 뒤인 1978년 《그린 랜턴과 그린 애로우》 108호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여기서 올리버는 국자를 둘러메고는 '내장이 불타고 입에서 불을 뿜는 울트라 매운맛 칠리 요리'라며 낄낄대고, 디나는 식탁에 앉아 목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며 칠리를 떠먹고 있다. 올리버의 만행은 계속되어 이듬해 같은 시리즈 116호에서는 성질 사납기로 유명한 가이 가드너를 불러다가 한 사발 떠먹이고, 1984년 《그린 랜턴》 180호에서는 그래도 절친이라고 올리버에게 진지하게 연애 상담을 부탁하며 찾아온 할 조던에게 상냥한 얼굴로 특제 칠리 요리를 대접한다. 두려움이 없는 최고의 그린 랜턴마저도 먹는 순간 뿜어내는 올리버제 칠리의 위력!

심지어 2002년 『그린 애로우 시크릿 파일 & 오리진』 마지막 페이지에서는 슈퍼맨, 아쿠아맨, 마샨 맨헌터, 플래시, 그린 랜턴, 배트맨, 블랙 카나리 등 저스티스 리그 멤버에게 이 음식을 먹이는데, 아쿠아맨은 물을 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불이 몸에 닿으면 죽을 수도 있는 마샨 맨헌터는 온몸의 핏줄이 곤두선 채 벌건 눈을 하고 "불이야!"라고 비명을 질러 댄다. 주목할 점은 그 와중에도 배트맨만은 "크래커를 조금 더 곁들이면 좋겠군."이라면서 흡족한 표정으로 숟가락질을 하고 있더라는 것.

수퍼맨과 플래시가 능력을 쓰게 하고, 그린 랜턴의 의지를 꺾어 버릴 정도로 강력한 그의 칠리 요리.

(이미지 출처: http://dc.wikia.com/wiki/Green_Arrow%27s_Chili?file=Green_Arrow%2527s_Chili_01.jpg / TM &Copyright © DC Comics, Inc. ALL RIGHTS RESERVED.)

단 맛 덕후, 멕시칸 덕후

사실 많은 히어로는 매운맛보다는 유독 단 맛에 광적으로 반응한다. 《데드풀과 케이블》 시리즈를 보면 마블 코믹스 최고의 뮤턴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케이블은 눈 덮인 스위스의 산에 '안전가옥 14'라는 은신처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오는데, 왜 거기서 며칠씩이나 머무냐는 물음에 이곳의 스위스미스 핫초코가 너무나 맛있기 때문이라고 대답을 하며 머그잔을 홀짝인다. 『왓치맨』의 로어셰크는 나이트 아울의 집에서 각설탕을 싹쓸이해 주머니에 담아서는, 수시로 마스크 입부분만 살짝 걷어 각설탕을 입안에 까 넣고 우적우적 씹어 먹길 좋아한다.

달콤한 맛을 중독적으로 좋아하는 인물의 대표 주자는 역시 화성에서 온 슈퍼 히어로 '마샨 맨헌터'로 초코 쿠키 '오레오'광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2000년 《마샨 맨헌터》 24호에서는 오레오 더미 속에 몸을 파묻고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존 존즈(마샨 맨헌터)의 모습이 실려 있는데, 저스티스 리그의 장난꾸러기인 부스터 골드와 블루 비틀이 마샨을 놀려 주려고 쿠키를 몽땅 숨겼다가 혼쭐이 나는 스토리다.

오레오를 마치 금화처럼 쌓아 놓고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최후의 화성인. 《마샨 맨헌터》 24호 표지.

(이미지 출처: http://dc.wikia.com/wiki/Martian_Manhunter_Vol_2_24?file=Martian_Manhunter_v.2_24.jpg / TM &Copyright © DC Comics, Inc. ALL RIGHTS RESERVED.)

인간 세상이 아닌 곳에서 찾아와 인간의 단맛에 반해 버린 케이스는 마샨 맨헌터 같은 외계인뿐만 아니라 신의 영역에서도 발견된다. 슈퍼맨, 배트맨, 원더 우먼, 그린 랜턴, 플래시 등 DC의 주요 히어로들이 새롭게 탄생하는 모습을 그린 뉴52 《저스티스 리그》 3호에서는 아직 인간의 풍습에 익숙하지 못한 원더 우먼이 길거리 아이스크림의 달콤한 맛에 반하는 장면이 그려진다.

특정 음식에 강력한 충성심을 보이는 매니아들도 있다. 마블의 떠버리 용병 데드풀의 경우는 《데드풀과 케이블》에서 멕시코 요리 치미창가를 너무나 좋아해 치미창가 찬가를 만들어 불러 대고, 배트맨의 절친인 자타나 같은 경우는 어린 시절 아버지인 자타라가 살아계실 때 함께 먹었던 타코 요리가 기억에 남아 줄곧 최고의 타코를 찾아다녔는데, 2011년 《자타나》 12호에서는 멀티버스 전체에서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타코 요리집이 있는 도시에서 산다는 것이 무엇보다 큰 행복이라며 고백하는 것을 볼 수 있다.

* 이 연재는 세미콜론과 공동으로 기획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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