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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노래하는 남자 | '문학은 노래다' 제갈인철

적어도 책을 읽었으면 뭐라도 해야 한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는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제갈인철이야말로 신세계를 개척한 탐험가라고 추앙할 만하다.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가설 즉 문학은 노래다라는 것을 입증하고 실천해온 '북뮤지션' 이기 때문이다. 그간 무려 150여 곡의 '소설 노래'를 작곡했고 500여 회 이상의 공연을 해온 제갈인철의 공적은 뻔한 말로 독서를 장려하는 그 어떤 독서운동가의 노력과 성과에 뒤지지 않는다.

  • 박균호
  • 입력 2015.12.29 10:16
  • 수정 2016.12.29 14:12

책과 관련된 영원히 결론이 나지 않을 가설 중의 하나가 책을 읽고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와 '책을 읽었으면 뭐라도 해야 한다'가 아닐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토록 책을 읽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중고등학교 시절 때 밑줄을 그어가며 세밀한 행간의 의미를 분석하고 문제를 풀어야 하는 고충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이라는 주장은 전자의 가설에 힘을 실어주는 한편 하다못해 간단한 메모나 독후감이라도 남겨야 자신의 글을 쓸 수 있고, 한 단계 더 성숙한 독서가가 된다는 주장은 후자의 가설에 힘을 실어준다.

나의 경우는 두 가지 가설을 절충하는 편이다. 읽고 나서 기록을 남기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오는 책은 어떤 형태로든 추후활동을 하는 편이고, 괜히 읽었다 싶거나 별다른 인상을 주지 못하는 책은 읽고 나서 그냥 던져버리고 심지어는 재활용 쓰레기통에 직행시키기도 한다. 그렇다고 나의 독서 후 활동이 대단한 것은 아니다. 기껏해야 서평을 남기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하는 것이 전부이다. 명색이 책과 독서에 관련된 책을 두어 권 낸 나의 사정도 그렇다.

<문학은 노래다>를 쓴 제갈인철 작가의 경우는 이런 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적어도 책을 읽었으면 뭐라도 해야 한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는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제갈인철이야말로 신세계를 개척한 탐험가라고 추앙할 만하다.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가설 즉 문학은 노래다라는 것을 입증하고 실천해온 '북뮤지션' 이기 때문이다. 그간 무려 150여 곡의 '소설 노래'를 작곡했고 500여 회 이상의 공연을 해온 제갈인철의 공적은 뻔한 말로 독서를 장려하는 그 어떤 독서운동가의 노력과 성과에 뒤지지 않는다.

마치 어려운 수학공식이나 영어 문법을 노래로 가르쳐주는 선생님의 방법이 성인이 되도록 잊히지 않는 것처럼 제갈인철의 노래로 듣는 소설은 감칠맛이 나고, 오감을 만족하게 하는 공감을 충만하게 해주는 매력이 있다. <문학은 노래다>는 제갈인철의 인생의 굴곡에서 만난 책들을 노래한 서평집이다.

언젠가 한 작가가 다른 평론가를 상찬하면서 '긴 서평 글에서 단 한 줄의 사적인 에피소드를 가미하지 않아서 감탄스럽다'라고 언급한 것을 본 이후로는 주로 나 자신의 경험 즉 사생활에 엮어서 서평을 써온 나의 경력을 은연중에 '고급스러워 보이지 못한 아마추어리즘'이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해왔었다. 기실 나는 오로지 개인의 경험을 배제한 서평에 대한 동경이 없었다고 말을 못 하겠다. 그러나 <문학은 노래다>를 읽고 나서 그간 나의 개인의 경험이 배제된 서평에 대한 열등의식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문학은 노래다>는 제갈인철의 철저한 개인적인 삶의 경험이 녹아 있는 서평집이다. 그리고 개인적인 경험의 밑바탕엔 가족과 이웃이 어우러져 있고 고향이라는 공동체의 울타리가 그를 감싸고 있다. 고향 마을에 대한 그리움과 가족에 대한 사랑이 제갈인철의 책 읽기와 작곡에 대한 열렬한 조력자가 되었음이 분명하다. 그의 책 속에는 가족뿐만 아니라 희로애락을 함께 한 이웃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전통사회의 이웃은 한가족이나 진배없다. 그래서 불편한 점도 많지만, 함께 웃고 함께 슬퍼한 이력은 분명 우리들의 소중한 자산이 아니겠는가? 운동회 땐 마을의 어른들도 먹거리를 싸와서 누구 자식일 것 없이 응원하고 박수를 쳤으며, 마을의 대소사는 자기 일처럼 나서서 도왔다. 슬픈 일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것으로 여겼다. 어쩌면 전통사회에서의 삶이란 그 자체가 하나의 지속 가능했던 '축제'였다. 그래서 제갈인철에게도 전통사회에서 어우러졌던 삶이 곧 축제였고 그 속에 책이 있었으며 노래로 축제와 책을 승화시키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다.

참담한 사업의 실패는 김영하의 <검은 꽃>이, 어려웠던 고향에서의 힘든 시기는 이청준의 <눈길>이 함께 했고 치유제의 역할을 해주었다. 제갈인철이 소설을 노래로 승화시키는 그간의 행적은 신이 모든 사람에게 준 선물 즉 가족과 이웃을 향한 작지만, 의미가 깊은 몸부림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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