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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핑턴포스트코리아 인터뷰] 한국 최초의 커밍아웃한 성소수자 총학생회장 김보미

  • 김병철
  • 입력 2015.12.28 05:22
  • 수정 2015.12.28 08:30

김보미 서울대 총학생회장. 알려지다시피 그는 한국 최초 커밍아웃 성소수자(레즈비언) 총학생회장이다. 개인의 인생에서 엄청난 사건인 그의 커밍아웃은 사회적으로도 큰 주목을 받았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는 지난 23일 서울대를 찾아 그를 만났다.

대담 = 김병철 에디터

사진, 영상 = 이윤섭 비디오 에디터

- 총학생회장 임기를 시작한지 한 달 정도 됐는데요. 어떤가요?

= 이제 인수인계 다 끝나고, 그 동안 이어졌던 학내 문제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 작년에 부총학생회장을 하면서 고생했을텐데, 올해 총학생회장 출마를 결심한 이유가 궁금해요.

= 부총을 하면서 일도 배우고, 이런 저런 게 보이기 시작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정책과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과 대표, 단과대회장, 부총, 총학생회장까지 학생회 대표만 4년째인데요. 이번이 마지막이니까 할 수 있는 거 다 해보고 잘 마무리하자는 생각이에요.

- 선거 중에 커밍아웃을 한 이유가 있나요?

= 개인적인 인간관계라면 상관 없겠지만 학생 대표로 출마할 때 좀더 솔직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또 살아온 배경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제 정책이 아무래도 관련이 있을 거에요.

‘쟤는 왜 이렇게 인권에 관심이 많고, 소수자를 챙기려는 정책을 내고, 학내 다양한 권리를 이야기하나’했을텐데 “퍼즐이 맞추어지는 느낌”이라고 하더라구요.

“왜 굳이 그걸(커밍아웃을) 해야 돼?”라는 이야기에 “그럼 왜 하지 않아야 돼?”라고 질문을 던지는 거죠. 어떻게 보면 “이야기하지 마라. 드러내지 마라”에 대한 작은 저항이었던 것 같아요.

- 커밍아웃이 개인적인 사안이 아니라, 이번 총학이 지향하는 서울대를 보여주는 행위라고 봐도 되나요?

= 저희 슬로건이 '다양성을 위한 하나의 움직임'이에요. 다른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좀 더 배려하고 차이가 차별, 혐오, 폭력이 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자는 거에요. 내가 (남과 다르더라도) 나임을 드러내는 게 불편이나 부끄러움이 아니고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거죠.

- 주요 공약에 대해 설명 좀 해주세요.

첫째는 학내 민주주의에요. 저희 모든 공약은 권리에 대한 건데요. 다양한 구성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 학교 운영(거버넌스)에 학생들이 참여하는 권리를 얻자는 거에요.

둘째로 다양성 공약이 있어요. 선언적 의미가 아니라, 합의된 규칙으로서 ‘서울대 인권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걸 대학본부와 이야기 하려고 해요. 그리고 나와 남의 권리에 대한 내용이 담긴 시민사회교육을 필수 교양으로 만들려고 하고요. 예비군 훈련으로 침해되는 수업권에 대한 부분도 있어요.

- 한국의 첫 커밍아웃 성소수자 대학 총학생회장이에요. 이게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세요?

= 많은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부담스러운 사람에게는 절대 강요하면 안되겠지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다양한 분야에서 나왔으면 좋겠어요. 미국 같은 경우엔 정말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면 커밍아웃은 아무것도 아닌 사회가 됐거든요. 그런 사회로 갈 수 있는 작은 시도였으면 좋겠어요. 조금의 용기를 누군가에게 줬으면 좋겠다…

(학교 차원에선 커밍아웃보다) 서울대에서는 18년 만에 연장투표하지 않고 총학 선거가 성사된 것에 더 큰 의미를 주었으면 좋겠어요. 선거는 서울대 구성원이 다같이 만든 거니까요. 장애인, 이성애자, 동성애자, 고학번, 저학번 누구에게나 한 표가 주어지는 거잖아요. 80% 이상 학생들이 찬성을 해주셨고요.

- 이성애자 총학생회장과는 어떤 게 다를 수 있을까요?

= 소수자의 경험을 해온 게, 제 장점이자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폭이 좀 더 넓은 것 같아요.

- 그만큼 짊어져야 할 부담도 있을 것 같아요.

= 벼르고 있을 분들도 있고, 기대를 할 분들도 있을 거에요. 이번 1년도 정말 완성도 있게 만들고 싶어요. 잘 해야죠. 많은 기대가 있는 만큼 더 열심히 해야죠.

- 사회적으로 커밍아웃한지 한 달 정도 됐는데 어떤 게 바뀌었나요?

= 개인으로선 좀 더 자유로워졌어요. 일단은 제가 불편할 만한 이성애 중심적인 질문이 들어오지 않아요. 굳이 ‘어떻게 거짓말을 해야 하나’라고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되요. 예를 들어서 “남자 친구 있어요?” 그러면 “없어요”하는데, “애인 있어요?” 물으면 “있어요”하잖아요. 그런 게 많이 편해진 것 같아요.

- 커밍아웃 과정을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 대사회 커밍아웃한다는 건 정말 많은 용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이후 나의 가깝고도 먼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지, 3개월 동안 미친 듯이 시뮬레이션 돌려보고, 어떻게 될까 고민했어요. 많은 지인들에게 물어보기도 했고요.

그 전에는 그런 엄두가 안 됐던 것 같아요. 이게 나에게 어떻게 타격을 줄까? 미래에 불이익이 되는 상황이 오면 어떻게 하지?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 한국은 갈 길이 먼 사회니깐요.

- 커밍아웃을 결심할 때 무엇이 가장 고민됐나요?

= 가족. 어려웠던 것 같아요. 형제들은 괜찮았는데 부모님이 조금 많이 걱정이 됐어요. 제가 출마한다는 걸 부모님 직장이나 지인도 알고 계셨고, 친척들도 있는데… 나는 내가 하기로 결심한 거니까 견디면 되는 부분이지만, 의도하지 않게 그것을 경험해야 하는 지인들 중에 가족, 특히 부모님이 그랬던 것 같아요.

- 부모님께는 어떻게 말씀 드렸어요?

= 커밍아웃하기 4일 전에 부모님께 4장짜리 편지를 드리고 왔어요. 용기가 없어서… 거기에 이런 내용을 썼어요. 제가 언제 처음 그걸 느꼈고, 그때부터 얼마나 괴로웠고. 기쁜 순간 힘든 순간도 있었고. ‘이성애자가 될 수 있을까’ 시도했지만 잘 되지 않았고, 지금에 와서는 나를 인정하고 매우 좋아하고, 내가 정말 행복하다. 이건 절대 부모님의 잘못이 아니고 그것 때문에 많이 이해를... 아직 이해는 아니지만 아무튼 납득을 해주신 것 같아요.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제가 너무 적게 드린 것 같아요. 저는 10년이지만 부모님은 1달밖에 안 됐거든요.

- 지난 10년 동안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달라졌다고 느끼나요?

= 대학 입학할 때 제 고등학교 친구에게 동성애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 친구가 “그거 정상적인 거 아닌 것 같다”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그 친구에게 ‘카톡’이 왔어요. “너 유명해졌더라.” 제가 “근데 나는 너한테 카톡 와서 놀랐다. 절연할 줄 알았다.”고 했더니 “그 때는 내가 잘 몰랐다”고 하더라고요. 일단 내 주변부터 한 명 한 명이 바뀌는 걸 제가 체감해요.

- 성소수자 관련 기사에 많이 달리는 댓글 중 하나는 "개인의 자유인 건 알겠는데 동의를 강요하지 말라. 싫어할 권리가 있다"에요. 여기에 대해 하고 싶은 말 있으세요?

= 개인의 자유를 존중한다면 그런 댓글을 안 달아야죠. 그런 표현은 진정한 존중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게 어렵다면 그 친구와의 관계를 포기할 생각이었어요. 강요할 수는 없어요. 다만 ‘우리는 인연이 아니었나 보다’하는 거지.

(동성애를) 정말로 이해 못하는 친구도 저한테 “너를 위해서 기도해줄게”라고 했어요. 저는 고맙죠. 그 친구가 저의 성적 지향을 지지할 수는 없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한다는 게. 기도를 한다고 제가 바뀌지는 않겠지만 저에 대한 존중이라고 생각하거든요.

- 동성애를 혐오하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 평소에도 아마 그런 이야기를 하실 거에요. 그런데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 먼 친구 중에 (동성애자가) 한 명쯤은 있을 텐데요. 당신이 하는 한 마디, 댓글 하나가 그 친구에게 어떤 상처가 될지, 그걸 통해서 그 분은 당신과의 관계를 어떻게 재조명할지를 말씀 드리고 싶어요.

- 지지, 응원을 한 분들에게도 한 말씀 부탁 드릴게요.

= 감사드리죠. 제가 어떻게 말씀 드려야 할지 모르겠는데 힘이 돼요. 진짜 큰 힘이 돼요. 저의 신념을, 소신을 다시 지키게 되는 그런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나의 언행이 의미가 있다고 해주는 건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저의 자존감과 앞으로 행보에도 도움이 되고요.

- 학내 전도금지 공약이 논란이 됐었는데요.

= 그게 논란이 돼서 너무 당황스러웠어요. 학기 초 이사 때문에 기숙사 문이 열려있을 때, 외부 교회에서 봉고차를 타고 와서 방마다 돌면서 전도를 하시는 일이 있거든요. 그걸 제한하자는 공약이었어요. 거부해도 계속 쫓아오는 과도한 노상 전도도 그렇고요.

그것도 기독교인인 부총학생회장이 낸 공약이었고요. 그런데 종교탄압으로 알려져서 놀랐죠. 지금은 서울대기독교연합 분들과 설문조사를 해서 피해사례를 받고, 어떻게 할지를 논의하고 있어요.

그는 지난 5일 선거운동본부 정책간담회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커밍아웃했다. 아래는 그의 연설문이다.

열심히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 괴로워하지 않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상성’이라는 틀에 자신을 억지로 맞추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이 가진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긍정하고 사랑하며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레즈비언입니다.

대학 생활 4년 동안, 인간 김보미는 기정사실처럼 이성애자가 되었습니다. 남자친구가 있느냐, 네가 못생겨서 남자친구가 없는 것이다, 네가 그런 쪽에 능력이 없나보다. 술자리에서 어렵지 않게 들었던 말들입니다. ‘당연히 이성애자일 것이다’는 전제에서 파생된 이러한 질문에 저는 어떠한 답변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내놓을 수 있는 거짓 아닌 답변이 정말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 대학 생활은, 글쎄요, 한 반 정도 진실이었던 것 같습니다.

개인의 성적지향은 사적 영역의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굳이 선거 출마를 결심하며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학교생활에서 성적지향은 필연적으로 언급될 수밖에 없으며 언급될 때마다 사실 그대로 이야기하기가 어렵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하면서 저는 완전히 ‘제 자신’으로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성소수자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저는 제 얼굴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저 게이 친구가 많아 그런 이슈에 관심을 갖는 이성애자로 존재할 뿐이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는 못 살겠다’는 생각에 주변 친구들에게 하나 둘씩 커밍아웃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친구 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친구들은 저의 성적지향에 대하여 부정적이기보다는 긍정적으로 반응해주었습니다. 나름대로 성공적인 커밍아웃이었죠.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신기하게도 제 친구들과 주변의 분위기가 바뀌어갔습니다. 자연스럽게 소수자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과, 자기도 사실 성소수자라며 커밍아웃을 하는 친구들의 모습, 그리고 커밍아웃을 통해 그 전보다도 더 쾌활하게 생활하는 친구들을 보았습니다.

개인적 계기로 커밍아웃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과 저는 함께 자신의 삶과 관점이 바뀌는 경험을 하였고, 이는 정말 뜻 깊은 경험이었습니다. 제가 총학생회장으로서 학교에 불러오고 싶은 변화 또한 이 경험과 맞닿아있습니다. 얼마 전 커밍아웃한 애플의 CEO 팀 쿡의 말처럼, 성적지향을 사적 영역의 문제로 두기를 포기함으로써 우리들의 삶을 바꿀 수 있다면, 저는 포기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적지향은 사람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저는 레즈비언이지만, 여전히 회라면 정신을 못 차리고, 노래방에 가면 마이크를 놓지 않으며, 집에 들어가는 길에 사람들과 맥주 한 잔 하기를 좋아합니다. 제 좌우명은 변함없이 ‘언젠가 해야 할 일이면 지금하고, 누군가 해야 할 일이면 내가 하자’이며,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의 김보미도 ‘내가 한 말은 행동으로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인생철학을 갖고 있습니다. 디테일 선본의 정후보 김보미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은 김보미가 가진 요소 중 단지 하나의 요소일 뿐입니다 제가 믿는 바, 제가 부총학생회장으로서 해온 일들, 그리고 앞으로 제가 하고 싶은 일들은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저는 레즈비언이라고 커밍아웃합니다. 그러나 커밍아웃 한다고 한들,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여전히 서울대학교 학생사회는 시급한 문제와 산재한 안건을 해결해야만 합니다. 저는 단지 우리가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불문하고 힘을 모아 일해 나가는 동료라는 점, 이 사실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저를 시작으로 모든 서울대학교 학우들이 본인이 속한 공간과 공동체에서 자신의 목소리와 얼굴을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 모두의 삶이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 인정되는 사회.’ 이것이 제가 바라는 이 학교의 모습이자 방향성이며, 오늘 출마와 함께 여러분께 커밍아웃을 하는 이유입니다.

제58대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한 디테일 선본의 이번 슬로건은 ‘다양성을 향한 하나의 움직임’입니다. 각자 고유의 색깔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는 학생사회를 만들기 위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되 뜻을 함께 하는 하나의 움직임.

저는 이 움직임을 여러분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서울대 학우 여러분들, 안녕하십니까?제58대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 김보미, 부총학생회장 김민석 당선 인사드립니다.이번 선거는 저희에게도, 선본에게도, 그리고 서울대학교 학우 여러분 모두에게도 뜻 깊은 선거였다고...

Posted by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on Monday, November 3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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