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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의 '피아노맨'도 독일에 도착했다

‘시리아의 피아노맨’ 아이함 아흐마드(27). 그는 참혹한 내전을 힘겹게 견디는 다마스쿠스의 이웃들에게 피아노로 희망을 전했다. 폐허가 된 거리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던 수척한 그의 모습은 인터넷을 타고 세계로 퍼졌다. 때론 그의 낡은 피아노 옆에서 아이들이 함께 노래를 불렀다.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을 배경으로 한 그의 피아노 선율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타고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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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아흐마드는 독일 본의 국립예술갤러리 무대에 섰다. 이곳에서 그는 ‘야르무크의 노래들’을 연주했다. 야르무크는 그가 떠나온 다마스쿠스 외곽의 팔레스타인 난민촌으로, 그는 이곳의 폐허에서 피아노를 연주했었다. 그의 뒤를 이어 아르헨티나 출신의 세계적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독일 피아니스트 카이 슈마허가 나와 베토벤의 곡들을 연주했다. 이 무대는 아흐마드가 인권과 평화를 위한, 그리고 빈곤에 맞선 싸움을 위한 ‘국제 베토벤상’의 첫 수상자로 선정된 자리였다. 국제 베토벤상은 독일 예술감독 토르스텐 슈라이버 등이 올해 처음 만든 상이다. 음악도에서 거리의 악사로, 한명의 난민으로 독일에 건너간 아흐마드는 “(내가 연주하는) 이 노래들은 내 안 깊은 곳에 있는 시리아에 대한 씁쓸하고 아름다운 기억 등 복잡한 감정을 상기시킨다”고 <도이체 벨레>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피아노를 거리에서 이동하고 있는 아마드의 밴드. 2014.02.02.

아흐마드가 유럽행을 결심한 것은 지난 5월이었다. 난민촌 밖에서 연주를 하려고 나갔던 그를 가로막은 검문소의 이슬람국가(IS) 대원은 그 자리에서 그의 피아노를 불태웠다. 이슬람국가는 ‘음악은 죄악’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는 “그 순간, 내 피아노만 탄 게 아니었다. 내 심장도 탔다”고 회고했다. 그의 생일날이었다.

난민촌에 드리운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당당히 마주해 음악으로 난민촌 주민들에게 희망을 전해야겠다던 그였다. 수레에 피아노를 싣고 죽음이 일상이 된 거리로 나가 자신이 작곡한 곡들을 연주하던 그는 지난 9월 생의 대부분을 보낸 고향 야르무크 난민촌을 떠났다. 배가 고픈 아들이 울음을 멈추지 않을 때 느낀 절망감도 그를 재촉했다. 아흐마드는 어머니가 마련해 준 3000유로(약 384만원)를 손에 쥐고 길을 나섰다. 아내와 두 아이도 동행했지만, 홈스에서 발이 묶였을 때 가족은 난민촌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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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마드는 유럽에 정착해 가족을 불러들일 생각으로 혼자 여정을 이어갔다. 그는 유럽행 시리아 난민들 대부분이 거쳐 가는 터키~그리스~오스트리아 루트를 통해 독일에 도착했다. 현재 그는 독일 중부 헤센주의 도시 기센 인근의 난민 숙소에서 최종 정착지가 결정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여기서 나는 야르무크 난민촌의 목소리가 되고 싶다. 시리아를 위해 기여하고 싶고, 나의 두 아들 아흐마드와 키난에게 안전한 미래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많을 때는 20만명의 팔레스타인 난민을 수용했던 야르무크는 지난 4월 이슬람국가가 장악한 뒤 “죽음의 캠프”가 됐다. 현재 반군이 장악한 이곳엔 8000~1만6000명 정도밖에 남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 1000만명 이상의 시리아 난민들이 피난길에 올랐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400만명 이상이 시리아 국경을 넘어 터키와 레바논, 요르단, 이라크에서 새로운 거처를 찾았다. 80여만명은 유럽 국가들에 난민 신청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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