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지역 로비스트' 양산하는 한국 정치

접전지역일수록 최고의 우선순위는 지역구 발전이다. 지역구 발전의 핵심은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등과 긴밀한 협조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래서 국회의원들은 해당 상임위로 들어가려고 노력한다. 그곳에서 정부를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을 따내기 위한 로비가 시작된다. 국가 차원의 고민은 멀어지고, '지역 로비스트'가 되는 것이다. 예컨대, '송파구 세 모녀'로 상징되는 전국 차원의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관심과 대안제시보다 내가 속한 지역구의 개발예산 확보가 더 중요해지게 되는 것이다. 현재의 선거제도 하에서 재선을 꿈꾼다면, 그것이 살 길이기 때문이다.

  • 손정욱
  • 입력 2015.12.23 09:19
  • 수정 2016.12.23 14:12
ⓒ연합뉴스

불공정한 게임, 현역의원의 압도적 프리미엄

여의도가 가장 한가한 시기는 연말에 예산안을 통과시키고 난 이후부터 그 다음 해 2월 임시국회가 열리기 전까지다. 고로 요즘이 가장 여유로워야만 한다. 하지만 4년에 한 번씩 선거가 있는 해는 예외다. 내년 4월 총선, 그 전인 2월 즈음에는 당내경선이 있다. 고로 요즘 여의도는 어느 때보다 가장 바쁜 시기다.

2월 당내 경선을 앞두고 있지만 현역 의원들과 비교했을 때, 예비후보들은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100미터 달리기와 비교하자면, 손발을 다 묶어놓고 30미터 정도 뒤에서 뛰는 게임과 같다. 심지어 공천룰도 아직 안정해졌다. 공천룰은 누가 정할까? 현역 의원들이다. 그러니 공천룰 결정은 더디기만 하다. 시간은 흐르고 예비후보들은 제자리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현역 의원의 프리미엄은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다. 계량화하긴 힘들지만 대략 10배 정도 높은 프리미엄이지 않을까 싶다. 단적인 예가 있다. 후보들이 자신을 알리기 위한 선거공보물이 있는데, 이 때 예비후보가 뿌릴 수 있는 숫자는 '해당 지역구 전체 유권자의 10%'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현역의원은? '의정보고서'란 이름으로 전체 유권자에게 발송가능하다.

그뿐인가? 당장 눈 앞에 다가온 당내경선을 준비해야 하는데, 당원명부도 공식적으로는 현역 의원만 갖고 있을 수 있다. 예비후보는 그저 맨땅에 서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현역의원은 예비후보자를 어떻게든 주저앉히기 위해 이런저런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해도 너무하다.

접전지역에서의 국회의원? 지역 로비스트?

이러니 정치에 뜻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감히 정치를 시작할 수 있겠는가. 매 선거마다 초선의 비율이 50%가까이 된다는 것이 신기하다. 하지만 여기서 비례대표를 제외하면 30%, 그리고 다시 여기서 전략공천 등의 비율을 제외하면 10-15% 정도가 이런 열악한 환경을 뚫고 국회의원 자리에 올라선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이렇게 힘들게 당선되면? 지역구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아니, 접전지역일수록 최고의 우선순위는 지역구 발전이다. 지역구 발전의 핵심은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등과 긴밀한 협조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래서 국회의원들은 해당 상임위로 들어가려고 노력한다. 그곳에서 정부를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을 따내기 위한 로비가 시작된다. 국가 차원의 고민은 멀어지고, '지역 로비스트'가 되는 것이다. 예컨대, '송파구 세 모녀'로 상징되는 전국 차원의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관심과 대안제시보다 내가 속한 지역구의 개발예산 확보가 더 중요해지게 되는 것이다. 현재의 선거제도 하에서 재선을 꿈꾼다면, 그것이 살 길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이념과 철학이 다른 정당체제라는 것이 한국에서는 참으로 무의미하다. 새누리당이건, 새정치민주연합이건, 안철수당이건 간에 힘든 경쟁에서 살아남은 국회의원들은 당선된 이후에 모두 지역구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로비스트가 될 확률이 높다.

선거제도 개혁없는 한국정치는 비관할 수밖에 없어

결국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큰 흐름은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집권 여부와 상관없이 관료와 재벌의 견고한 카르텔 하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이를 견제해야 할 정치인들은 오히려 해당 상임위에서 적극적으로, 혹은 비공식적으로 이들에게 구애한다. 관료와 재벌로부터 예산 혹은 후원을 받아야만 당선이 될 수 있는 지역구 의원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관적이게도 내년 총선의 결과가 어떠하더라도 상황은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비례대표제를 확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순히 전문성을 갖춘 소수의 사람을 충원하는 문제가 아니다. 정당정치의 근본적인 틀을 지역구 중심에서 국가의 비전을 중심으로 바꾸는 것이다. 정당이 국가의 미래를 준비하는 철학과 비전, 구체적인 정책을 갖출 수 있도록 유인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한국정치의 악순환과 비관주의를 끊을 수 있다. 개혁을 꿈꾸는 정치인들의 존재이유, 그리고 새롭게 등장할 안철수당의 존재이유도 이런 제도적 개혁을 꿈꿀 때 그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비례대표제 #안철수 #당내경선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 #선거제도 #정치개혁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