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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인턴: 몸은 하나인데

  • 김병철
  • 입력 2015.12.21 17:55
  • 수정 2015.12.21 17:56
ⓒ한겨레

취업만 되면 만사형통일 줄 알았던 대학 졸업반 학생 강아무개(25)씨는 졸업과 취업을 양손에 쥔 채 ‘멘붕’에 빠져 있다. 탄탄한 중견기업에 3개월 인턴으로 취직한 게 지난 10월의 일이다. 교수님들에겐 양해를 구하는 ‘취업계’(취업 등으로 수업결석 등을 보고하는 서류)를 내밀었다.

회사에서 인정받는 사이 학교에선 낙제할 위기에 처했다. 기말시험을 대체할 과제를 아직 내지 못해서다. 강씨는 21일 “몸이 두 쪽이면 얼마나 좋겠나. 어쨌든 취업에 골인만 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안 되면 큰일”이라고 말했다.

아직 학기도 마무리하지 않은 대학생들에게 출근을 강요하는 일부 기업들의 무리한 요구에 대학과 학생들이 고민에 빠져 있다. 기업들은 ‘합격자가 다른 곳에 지원할 수도 있어 일찍 출근을 시킬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취업률 높이기가 관건이 된 대학들은 이런 상황을 ‘모르쇠’하고 있고, 취업난에 시달리는 학생들도 ‘울며 겨자 먹기’로 기업의 방침을 따르고 있는 상황이다.

취업난이 심해지면서 정식 채용이 아닌 인턴에만 합격돼도 수업을 포기하고 학교를 빠져나가는 제자들을 지켜보는 교수들의 고민도 깊다. 윤태웅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전국에 계신 기업 인사팀 관계자분들께 부탁의 말씀을 전한다. 요즘처럼 취업이 쉽지 않은 때에 우리 학생들을 뽑아주신 건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기왕이면 대학의 학사일정을 좀 존중해주시라”고 말했다.

그나마 서울 소재 주요 대학들은 ‘곤란한 기색’이라도 비칠 수 있다. 이화여대에 재학중인 한 학생(25)은 “우리 학교는 취업계를 내고 수업을 빠지려고 해도 교수님들이 이를 허용하지 않아 학생들이 힘들어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전했다.

반면 채용으로부터 소외돼 있는 지역의 대학들은 기업의 행태로부터 자유롭기가 더욱 어렵다. 영남 지역의 대학에서 근무하는 한 교수는 “인턴 때문에 출석이 어렵다는 학생도 있고 어느 단체에 취업했다며 몇 주씩 합숙 교육을 받는다는 학생도 있다. 성실한 학생들이 이런 무리한 요구에도 응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반면 아직 졸업하지 못한 학생들을 배려하는 채용 제도로 눈길을 끄는 곳도 일부 있다. ㅅ회계법인은 재학생을 채용할 때 휴직 제도를 활용해 남은 학기를 마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무엇보다 ‘대학이 직접 나서서 졸업 전 출근 문제를 공론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 소재 대학의 한 교수는 “학교 쪽은 이런 문제를 교수 재량으로 처리하라고 한다. 학교가 합당한 규정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윤태웅 교수는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대학 당국이 학사일정의 존중을 기업에 공개적으로 요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총장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이 문제를 논의해서 함께 목소리를 내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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