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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의 냉장고를 열어 보자 | 히어로는 무엇을 먹고 사는가? 1편

원더 우먼은 거대거북 스프라는 것을 주문하는데, 여기서 거대 거북은 슈퍼맨의 친구인 지미 올슨의 여러 버전 중의 하나다. 슈퍼맨은 비프 부르기뇽이라는 쇠고기 요리를 주문하는데, 이는 슈퍼맨의 역사에서 꽤나 중요한 요리다. 1976년 《슈퍼맨》 297호에서 로이스가 장바구니에 식재료를 가득 들고 클라크의 집 앞에 나타나서는 바쁘지만 않다면 요리해 주겠다고 말을 한다. 이때 로이스가 클라크에게 해줬던 음식이 바로 비프 부르기뇽이었다. 배트맨은 스테이크 웰던을 주문하는데, 2004년 브라이언 아자렐로의 《배트맨》 621호를 보면 배트맨이 부엌에서 스테이크를 굽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 이규원
  • 입력 2015.12.21 13:27
  • 수정 2016.12.21 14:12

[배트맨 데이 기념 특별 연재 13]

배트맨의 냉장고를 열어 보자

─ 히어로는 무엇을 먹고 사는가? 1편

"내 머리는 뱃속이 비면 돌아가지가 않아." 2003년 《버즈 오브 프레이》에서 바버라 고든의 대사이다. 이 작품은 연재글 '여성 히어로의 시대 ─ 배트걸을 주목하라'에서 소개했던 《배트걸》의 게일 시몬이 2003년부터 2007년까지 5년을 정규 작가로 활동하면서 쓴 시리즈로, 고담의 대표적 여성 히어로 오라클(바버라 고든), 블랙 카나리(디나 랜스), 헌트리스(헬레나 버티넬리)로 구성된 여성 히어로 팀 '버즈 오브 프레이'의 활약상을 다룬다. 1999년에 시작해 2009년 127호로 막을 내릴 때까지 게일 시몬은 56호부터 108호까지 53이슈, 거의 절반에 가까운 양을 썼다. 재미있는 건 여성 히어로의 위상에 누구보다 관심을 가진 여성 작가가 스토리를 맡으면서 특히 많이 나왔던 장면이 바로 그녀들이 기름진 고열량의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이었다는 점이다.

먹는 모습 그대로 그려 주세요.

말이 나왔으니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601호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2009년작인 이 만화의 표지는 국내에도 정식 출판된 마이클 J. 스트라진스키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 표지를 그렸던 J, 스콧 캠벨이라는 작가의 그림으로, 메리 제인이 양손에 뜨거운 커피잔을 들고 소파 위에 무릎을 꿇고 앉은 채, 창밖으로 날아가는 스파이더맨의 모습을 보고 있는 장면이다. 그런데 이 이미지가 뜨자 만화 팬들 사이에서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과연 이게 인간이 가능한 자세냐며 너도 나도 메리 제인을 흉내내며 인증샷을 올려 대는 해프닝이 벌어진다. 그림에 재능 있는 어떤 팬은 이 메리 제인을 좀 더 현실적인 포즈로 수정한 표지를 내놓기도 했다. 말하자면 만화 속 여성 캐릭터들은 남성들이 보는 시선으로 그려지기 때문에 비현실적이라는 건데. 그런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게일 시몬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남성이 꿈꾸는 이상형이 아닌, 실제의 있는 모습 그대로 등장한다. 먹는 모습도 바로 그런 것들 중의 하나다.

시작부터 잠깐 곁가지로 새긴 했지만, 사실 오늘의 주제는 여성 히어로에 대한 것은 아니다. 밤낮으로 바쁘게 뛰는 우리의 슈퍼 히어로들, 온갖 범죄자와 마주치며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꼬박꼬박 때만 되면 찾아오는 허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슈퍼 히어로들은 과연 무엇을 먹고 사는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그런 이야기들이다.

커피잔을 들고 벌을 서는 것에 더 가까워 보이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601호 표지의 메리 제인.

(이미지 출처: http://marvel.wikia.com/wiki/Amazing_Spider-Man_Vol_1_601?file=Amazing_Spider-Man_Vol_1_601.jpg )

잘 먹어야 잘 싸우는 고담의 여성 히어로들

앞서 말한 《버즈 오브 프레이》 56호에서 오라클은 임무를 마치고 기지로 돌아오는 블랙 카나리에게 배가 고프니 먹을 것을 사 오라고 심부름을 시킨다. 카나리는 새로 생긴 이탈리아 식당에서 새우 요리를 사 온다. 신규 멤버 영입 건으로 이런 저런 대화를 하다가 음식을 입에 댄 두 사람. 갑자기 만화는 이 맛있는 요리에 대한 칭찬으로 두 페이지를 빼곡히 채운다. 그리고 내린 결론. '내일은 이 집에서 참치 요리를 사다 먹자!'

그녀들의 이런 먹방 열전은 68호에서도 이어진다. 이번엔 바버라 고든(오라클)이 아버지 제임스 고든 경찰국장과 오랜만에 같이 식사하는 자리. 장소는 일식집이다. 젓가락을 능숙하게 사용하며 초밥을 먹는 바버라와 달리 고든 국장은 양손에 젓가락 하나씩을 들고 초밥을 해부(?)하며 "왜 이 식당에는 포크가 없는 거야!"라고 소리치더니 속이 타는지 웨이터를 불러 맥주 두 잔을 시킨다.

팀의 핵심 멤버 블랙 카나리. 이 시리즈에서 그녀는 지나가다가도 길거리에 핫도그 가게가 보이면 사먹곤 한다. 오라클이 임무 브리핑을 하면 우적우적 핫도그를 먹으며 듣는 장면도 종종 보인다. 버즈 오브 프레이 멤버들은 임무 시작 전은 물론 임무가 끝난 후에도 같이 식사하기를 즐기는데, 가장 많이 회자되는 장면은 게일 시몬의 마지막 이슈인 108호 'White Water, Epilogue: Swan Song'에서 사건을 끝낸 멤버들이 본부에 둘러앉아 테이크아웃 중국 요리를 먹는 장면이다. 96호에서도 시작부터 멤버들이 식당에 모여서 브런치와 모닝커피를 먹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여기서도 디나(블랙 카나리)의 고기 사랑은 여전해 베이컨 찬가를 늘어놓기까지 한다. 심지어 동석한 신디라는 이름의 소녀에게 팬케이크를 썰어 주는데, 디나가 시럽을 얹어 준 팬케이크를 입에 넣은 신디는 "너무 맛있어요!"라면서 감격의 눈물까지 흘린다. 이렇게 이 팀은 임무의 시작과 전에 식사로 팀웍을 다지고 스트레스를 푸는 것으로 유명한데, 사실 이런 광경은 만화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먹방 떼샷과 할랄 푸드

전 세계를 사로잡은 히어로들의 먹방이라면 영화 「어벤저스」를 빼놓을 수 없다. 자신이 마약을 끊는 과정에서 실제로 결정적 역할을 했던 치즈버거를 「아이언맨」 영화에까지 등장시켰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토니 스타크)는 뉴욕 전투 이후 지상에 추락하는 장면에서 동료들에게 뜬금없이 "샤와르마(슈와마) 먹어 봤어?"라는 애드립을 하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결국 영화 말미에 모든 멤버가 아랍 식당에 앉아 샤와르마를 우적우적 먹고 있는 장면이 보너스 영상으로 추가되었다. 그러면서 한 차례 샤와르마 열풍이 불기도 했는데. 재미있게도 2014년 마블 최초로 무슬림 여자 히어로가 등장하고, 삽시간에 최고의 인기 캐릭터로 부상하면서 무슬림의 먹거리에 대한 내용들이 만화 지면을 조금씩 채우기 시작한다. 바로 2014년 최고의 만화 시리즈로 인기를 모은 <미즈 마블> 시리즈다.

조용히 샤와르마를 먹고 있는 어벤저스 멤버들. 캡틴 아메리카만 오른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데, 이는 배우 크리스 에반스가 영화 「설국열차」 촬영 때문에 수염을 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상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EYiZeszLosE)

무슬림 소녀 카말라가 주인공인 이 시리즈에는 그들의 독특한 관습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등장하는데, 주인공이 소녀인 만큼 복장이나 외출 시간의 제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한편 무슬림으로서 무엇을 먹어야 되는가에 대한 이야기 또한 큰 비중을 차지한다. 1호 첫 페이지는 카말라가 편의점에서 파는 베이컨 샌드위치를 '이교도들이 먹는 고기, 냄새만이라도 맡겠다.'라며 노려보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하고, 히어로가 되는 계기 역시 금지된 먹거리인 술과 관련이 되어 있으며, 히어로가 된 이후에는 여태껏 느껴 보지 못한 엄청난 허기 때문에 냉장고의 음식들을 죄다 꺼내서 뱃속으로 쓸어 담는 일까지 벌어진다. 7호에서는 울버린과 같이 활동을 하다가 배가 고프다면서 당장 큰 기로스(피타 빵에 야채와 고기를 넣어 돌돌 말아 먹는 그리스 음식)가 먹고 싶다며 울버린을 졸라서는 결국 나중에 울버린에게 기로스를 얻어먹고 SNS에 인증샷을 올리는 천진함도 보여 준다.

부르카를 쓰기 싫어하고, 돼지고기 맛을 궁금해 하는 무슬림 소녀 카말라 칸이 활약하는 《미즈 마블》 4호 표지.

(이미지 출처: http://marvel.wikia.com/wiki/Ms._Marvel_Vol_3_4?file=Ms._Marvel_Vol_3_4.jpg )

먹방 떼샷 레전드 《킹덤 컴》과 고독한 셰프 배트맨

《버즈 오브 프레이》나 「어벤저스」만큼 멋진 히어로 먹방 떼샷을 볼 수 있는 만화는 1996년의 《킹덤 컴》이다. 알렉스 로스의 걸작 중의 하나인 이 작품의 마지막 부분은 장장 8페이지에 걸쳐 DC 코믹스 히어로를 테마로 한 가게에서 슈퍼맨과 배트맨, 원더 우먼이 같이 식사를 나누는 장면을 그리고 있는데, 이 장면들이 그야말로 걸작이다.

식당 안에는 슈퍼맨, 아쿠아맨, 원더걸, 로빈, 슈퍼걸 코스튬을 입은 직원들이 좌석들을 돌며 손님을 받고 음식을 서빙한다. 메뉴판에는 크립톤 행성의 폭발과 함께 어린 슈퍼맨을 태운 우주선이 탈출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고, 주방에서는 온 몸을 초록색으로 칠하고 마샨 맨헌터의 코스튬을 입은 주방장 아저씨가 열심히 요리 중이며, 입구 왼쪽에는 플래시, 그린 랜턴 등의 티셔츠 등의 기념품을 파는 부스가 있고, 그 안에서는 배트걸 코스튬을 입은 직원이 로맨스 만화를 펼쳐 읽고 있다.

이제 히어로들이 음식을 주문하는 차례인데, 메뉴의 이름들이 재미있다. 원더 우먼은 거대거북 스프라는 것을 주문하는데, 여기서 거대 거북은 슈퍼맨의 친구인 지미 올슨의 여러 버전 중의 하나다. 만화 속에서는 리전 오브 슈퍼 히어로즈의 대표작 중 하나인 《세 세계의 리전》의 미래 세계에 있는 슈퍼맨 박물관에 수많은 지미 올슨의 모습을 모아 놓은 곳이 있다.

슈퍼맨은 비프 부르기뇽이라는 쇠고기 요리를 주문하는데, 이는 슈퍼맨의 역사에서 꽤나 중요한 요리다. 1976년 《슈퍼맨》 297호에서 로이스가 장바구니에 식재료를 가득 들고 클라크의 집 앞에 나타나서는 바쁘지만 않다면 요리해 주겠다고 말을 한다. 이때 로이스가 클라크에게 해줬던 음식이 바로 비프 부르기뇽이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로맨틱한 밤을 보내게 되는데, 그때부터 슈퍼맨은 비프 부르기뇽을 제일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직원은 슈퍼맨에게 비프 부르기뇽 비슷한 요리로 '스타로 캐서롤'이 있다고 추천하는데, 스타로는 1960년 《더 브레이브 앤 더 볼드》 28호에서 저스티스 리그가 창설되면서 멤버들이 처음으로 함께 싸웠던 불가사리 모양의 우주 괴물의 이름이다.

우주 괴물 스타로는 36년 후 자신이 요리 재료로 쓰이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았을까? 1960년 《더 브레이브 앤 더 볼드》 28호 표지.

(이미지 출처: http://dc.wikia.com/wiki/Brave_and_the_Bold_Vol_1_28?file=Brave_and_the_Bold_28.jpg / TM &Copyright © DC Comics, Inc. ALL RIGHTS RESERVED.)

배트맨은 스테이크 웰던을 주문하는데, 2004년 브라이언 아자렐로의 《배트맨》 621호를 보면 배트맨이 부엌에서 스테이크를 굽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에서 앨런 크리스퍼스 형사가 전화를 걸어서 그에게 무엇을 하느냐고 묻는데, 배트맨은 스테이크를 구우면서 쉬고 있다고 답한다. 그러자 앨런은 스테이크 굽기가 얼마나 집중력이 필요한 스트레스 받는 일인데, 어떻게 그걸 하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겠느냐고 되묻는데도 배트맨은 태연한 것으로 봐서는 스테이크 하나만큼은 일가견이 있는 듯하다.

* 이 연재는 세미콜론과 공동으로 기획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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