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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째 이혼을 준비 중인 남자

그렇게 해서 몇 년이 흘렀다. 그와 통화가 되었다. 이런 대화가 몇 년 주기로 반복되다 보니 그를 통해 보통의 부부들이 어떤 문제를 겪으면서 사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이번에는 어떤 문제로 그가 이혼 얘기를 꺼내는지 궁금하기조차 했다. 그는 여전히 결혼생활에서 아무 재미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아내와는 공통의 취미도 없고, 잠자리도 식상하니 남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었다.

  • Woongjin Lee
  • 입력 2015.12.22 09:31
  • 수정 2016.12.22 14:12
ⓒgettyimagesbank

현재 나는 한 남성을 20년째 상담 중이다.

"대표님. 이제 정말 이혼할 겁니다. 애들 엄마와는 쿨하게 헤어지기로 얘기 다 되었어요. 애들도 우리 사이가 워낙 안 좋다 보니 차라리 이혼하는 게 낫다 싶은 눈치예요. 대표님 얘기대로 이혼했을 때 경제적으로 먹고 살 만큼은 준비가 된 것 같아요. 나랑 안 맞는 사람과 살기에 인생이 너무 길어요."

그가 안 맞는다고 한 것은 4가지인데, 생활습관, 가치관, 속궁합, 그리고 자녀 교육문제이다. 부부들이 흔히 겪는 갈등의 요인이기도 하다. 40대 후반의 그는 약간 따지는 스타일이다. 그 동안 나랑 나누었던 얘기들을 조목조목 언급하면서 길고 길었던 자신의 결혼생활에 드디어 종지부를 찍을 모양이다.

아내에 대한 넋두리를 한참 늘어놓더니, 결국 결심을 굳힌듯 재혼하면 어떤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 넌지시 물어왔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한숨부터 나왔다. 이런 사람들이 간혹 있다. 오래 전부터 이혼을 하려고 했고, 이혼 후 바로 재혼을 타진하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는 사실 한국의 이혼 문제를 총체적으로 갖고 있다. 그래서 내내 마음이 쓰이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내가 결혼을 시켰다. 90년대 중반이니 벌써 20년이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이혼상담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결혼 후 2-3년쯤 지났을 때였다.

"대표님. 내가 문제일까요? 결혼해서 살다 보니 생활습관이 안 맞아요."

"어떤 게요?"

"저는 깔끔하고 정리정돈을 잘하는데, 집사람은 너무 털털해요. 퇴근해서 집에 들어가면 청소가 안되어 있어 지저분해요. 좀 짜증을 내면 남자가 너무 예민하다고 오히려 화를 내요. 자꾸 부딪히니까 이제는 성격도 안 맞는 것 같아요. 저도 고집이 센데, 집사람도 만만치 않네요."

몇 달 전 일이라고 한다. 집에만 들어오면 하수구 냄새가 나는데, 그의 생각에는 싱크대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아내는 아무 냄새도 안 난다는 것이다. 몇 번 티격태격 하다가 아내가 미국 친지 방문차 며칠 집을 비우게 되어서 아예 싱크대를 바꿔버렸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라도 해결하지 않으면 작은 문제라도 곪아 터지게 되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나는 결혼보수주의자였다. 우선은 그를 설득했다.

"결혼한 지 이제 2-3년인데, 벌써부터 사소한 문제로 사네 안 사네 하는 건 너무 성급한 것 같습니다. 더구나 아이도 있는데, 모르는 사람들이 만나서 서로 맞춰가며 살다 보면 크고 작은 문제들이 생길 수밖에 없거든요. 그건 어떤 누구를 만나도 마찬가지죠. 조금 더 지켜보시면 어떨까요?"

일단은 상황이 그렇게 마무리된 듯했다.

그리고 또 2-3년이 지나갔다. 그가 다시 연락을 해왔다. 이혼을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너무 힘드네요. 대화가 안 돼요. 10분 이상 넘어가면 언성이 높아져요. 서로 생각이 틀려도 너무 틀려요. 나는 남자로서 포부를 갖고 사업에 전념하고 싶은데, 집사람은 가정에 충실하래요. 그래 놓고 남자 보고 돈 많이 벌어오라고 하니 어쩌라는 건지. 처가 문제, 부모님 문제도 그렇고, 말이 안 통해요. 서로 생각이 하늘과 땅 차이인데, 어떻게 함께 사나요? 대표님도 공감하죠?"

그 사이 아이가 하나 더 태어나 둘이었다.

"아이가 둘이나 되는데, 애들 봐서라도 시간을 좀 더 가져보세요. 그래도 아이들이 엄마, 아빠 사랑은 받고 자라야죠. 그리고 처가에서 잘해준다면서요. 처가가 힘이 돼주는 게 얼마나 다행인데요. 처가까지 먹여 살리느라 등골이 휘는 사람도 많은데..."

처가가 동력이 되어준다는 말에 그도 어느 정도 공감하는 눈치였다. 더구나 그도, 그의 아내도 심성이 착한 사람들이라 함께 살아야 할 이유를 상기시켜 주면 웬만한 문제는 잘 넘어갈 수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해서 몇 년이 흘렀다. 그와 통화가 되었다. 이런 대화가 몇 년 주기로 반복되다 보니 그를 통해 보통의 부부들이 어떤 문제를 겪으면서 사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이번에는 어떤 문제로 그가 이혼 얘기를 꺼내는지 궁금하기조차 했다.

그는 여전히 결혼생활에서 아무 재미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아내와는 공통의 취미도 없고, 잠자리도 식상하니 남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만약 이혼한다면 구체적인 경제 계획이 있는지 들어보기로 했다.

"둘 다 전세 정도는 살 수 있겠죠."

"생활비는요?"

"뭐 좀 빠듯하죠. 집사람은 생활력이 없으니 애들 양육까지 하려면 제가 부담을 해야 하니까요."

"이혼하면 경제력은 반토막이 나게 됩니다. 여행이라도 가려면 예산이 반으로 줄어듭니다. 이혼 전에는 그런 것쯤 얼마든지 참을 수 있을 것 같죠? 막상 그렇게 되면 비참합니다. 어떤 여자가 그런 거 봐줄까요? 완전 개털 되는 거죠. 지금 몸무게는요?"

내가 갑자기 몸무게를 묻자 그는 의아해했다. "85㎏ 정도요."

"그렇게 해가지고는 여자 만족 못시킵니다. 재혼 생각하면 살도 빼야죠."

그에게 재혼을 부추기려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라도 해서 그들 부부가 함께 할 시간을 벌게 해주고 싶었다. 당시는 두 아이가 사춘기였다. 그리고 또 숙제를 던졌다.

"이혼 하면 저축도 해야 하고요. 아이들 동의도 필요합니다. 헤어지더라도 서로 상처를 줄이게끔 준비가 필요한 거죠."

그리고 얼마 전이었다. 그의 전화를 다시 받았다.

"대표님 말대로 운동해서 살도 빼고, 돈도 좀 모았습니다. 이제는 정말 이혼할랍니다."

그는 단호한 목소리로 얘기를 시작했다.

"애들 대학 가는데, 둘이 뜻이 서로 안 맞네요. 애들 엄마도 틀린 건 아니지만, 내 생각도 있는 건데..아이들도 엄마 편을 들더군요. 그렇게 키우지 않았는데도 본 게 있어선지 애들도 정리정돈을 잘 안 합니다. 엄마의 가치관이 전수된 거죠. 게다가 큰 녀석이 지 엄마 편만 드네요. 명색이 가족인데, 내 마음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으니, 인생 헛 살았다는 생각도 들고, 아무튼 살 맛 안 납니다."

생활습관, 가치관, 속궁합, 자녀문제가 쌓여서 쓰나미급 태풍으로 그들 부부를 덮친 것이다.

"가족들에게서 소외되니 이제 정말 희망이 없더군요. 더 살아야 할 이유요? 이젠 정말 없습니다. 나이 들어서 여자한테 괄시 당하고 쫓겨나느니 한 살이라도 젊고 힘이 있을 때 나 자신을 위한 혁명을 해볼까 합니다."

그는 이혼을 '혁명'이라고까지 말했다. 20년 만에 결전의 시간이 온 것일까?

그는 정말 내 충고대로 착실하게 준비를 해왔다. 그는 작은 아파트를 얻어 살고, 상대방에겐 전세를 마련해 줄 생각이었다. 자녀들하고도 얘기를 끝냈고, 담배와 술도 끊고, 체력관리를 하면서 몸도 만들었다. 어떤 사람을 만나도 잘해줄 자신도 있다고 했다. 그 어느 때보다 결의에 차 보였다.

"00님은 노력했고, 재혼할 자격도 있습니다. 서류에 제대로 도장 찍으면 시작하지요. 어떤 사람을 원하는데요?"

"가치관, 생활습관, 속궁합 중 욕심을 부리자면 다 맞으면 좋겠지만, 최소한 2개만 맞아도 좋겠어요."

"그거야 00님 하기 나름이겠지만, 얼굴만 달라진 당신 아내와 비슷한 또 다른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한 달의 신선함이 될지, 1년의 신선함이 될지.."

"저는 어떤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멋진 사람이라면 옛날 같으면 남자들이 그냥 두진 않았겠죠. 요즘엔 워낙 이혼이 많으니까 그런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죠. 생활습관, 가치관, 속궁합,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데, 그렇게 좋은 사람 만나려면 선택권이 있어야 하는데, 00님은 그런 능력이 있나요?"

새롭게 출발하고 싶어하는 그를 더 이상은 만류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 아무리 선택권이 있고, 그래서 잘 맞는 사람을 만난다고 한들, 같이 살아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다. 그가 이혼만 하면 누구든 만날 수 있다는 환상을 갖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이 글은 프리미엄조선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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