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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서 잡히는 새우는 현대판 노예제 덕분에 당신의 식탁으로 간다(르포, 화보)

  • 박수진
  • 입력 2015.12.15 15:23
  • 수정 2016.01.29 05:37

매일 새벽 2시, 문을 발로 차는 소리와 '일어나'라는 소리에 31번(No 31)이라 불리는 남성은 아내와 함께 잠에서 깼다.

31번과 아내의 긴 하루는 이렇게 새벽 2시에 시작해 16시간 노동이 끝나면 마무리된다.

태국 중남부 사뭇사콘의 작업장에서 이들 부부가 하는 일은 전 세계 음식점과 시장에 공급되는 새우의 껍질을 벗기는 작업이다. 이들은 수 시간 동안 차가운 얼음물에 손을 넣고 새우 껍질 벗기기에 임한다.

AP통신 탐사보도팀은 미국, 아시아, 유럽 등에서 판매되는 껍질 없는 새우들이 이처럼 '현대판 노예'로부터 만들어지고 있다며 그들의 열악한 노동 실태에 대해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2015년 11월 9일 찍힌 이 사진에는 태국 사무트 사콘의 새우 작업장에서 일하는 미얀마 출신 노동자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이곳에서 노예처럼 일하는 노동자들 대부분이 미얀마에서 왔다. (AP Photo/Dita Alangkara)

미얀마 출신의 31번과 아내가 새우 껍질 벗기기 작업장에 팔린 이후 이들의 삶은 약 100명의 다른 미얀마 이민자들을 거느리는 태국인 업주로부터 좌지우지되고 있다.

이들 부부가 일하는 작업장에는 작업대가 높아 손도 올릴 수 없는 소녀들까지 받침대를 놓고 작업했다. 이들 중에는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 동안 저임금이나 무임금으로 일하고 있다.

태국인 업주는 이들 노동자를 이름 대신 번호로 불렀다. 31번의 이름은 틴 니오 윈이다.

틴 니오 윈은 "잠깐 작업장에서 일한 후 충격을 받았다"며 "아내에게 '이렇게 가다간 죽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틴 니오 윈과 아내는 새우 껍질을 빠르게 제거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작업장에서 '소'나 '물소'로 불렸다며 음식을 먹을 때만 외출이 허락되고 언제나 감시가 붙는다고 덧붙였다.

새우 껍질 벗기기 노동자 대다수는 틴 니오 윈처럼 작업장 업주에게 팔려온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불법 노동자이기 때문에 작업장 업주는 툭하면 경찰을 부르겠다고 위협하며 이들에게 가혹한 노동을 강요하고 있다. 심지어 합법적인 이민자들도 업주가 신분증명서를 강탈해 떠나지 못하도록 했다.

업주는 또 도저히 갚을 수 없을 정도의 빚을 책정해 상환 전까지 작업하도록 했다.

새우 껍질 벗기기 작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임금은 얼마나 빨리 껍질을 까느냐에 달렸지만 일한 만큼의 보상은 받지 못했다. 업주들은 욕설과 폭력을 행사하며 심지어는 어떤 설명도 없이 임금을 삭감하곤 했다.

2015년 11월 13일 찍힌 이 사진에는 어린 미얀마 출신 소녀들이 각자의 '번호'를 들고 서 있다. 이들이 깐 새우는 아시아, 유럽, 미국 전역으로 수출된다. (AP Photo/Ester Htusan)

노동자들의 임금부터 노예 수준이었지만 그들의 노동 강도 역시 노예나 마찬가지였다.

노동자들의 점심 시간은 단 15분이었으며 아픈 날에도 일해야 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갈 수 없었고 성인보다 한 시간 뒤 작업을 시작하는 것만 허락됐다.

태국 정부와 기업이 70억 달러(약 8조 2천억원)에 이르는 태국 수산물 수출 산업을 합법화하고 투명화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광범위한 인신매매는 태국을 세계에서 가장 큰 새우 수출국 중 하나로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어 약속이 지켜지기 쉽지 않다.

또 태국 정부, 경찰의 공모와 부패로 인신매매를 통한 현대판 노예제는 더욱 번성하고 있다.

태국에서 관련자에 대한 체포나 기소는 거의 이뤄지고 있지 않으며 경찰 단속은 노동자인 이민자들을 교도소에 보내면서 작업장 소유주는 처벌하지 않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새우 껍질 벗기기 작업장을 급습해 틴 티오 윈의 아내를 찾아낸 태국 경찰의 검거 작전에서 인신매매로 체포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새우 껍질 벗기기 작업장은 길이나 벽 안쪽에 교묘히 숨겨져 있어 찾아내기도 어렵다.

노예 같은 삶을 사는 노동자들로부터 생산된 새우들은 미국 유명 식품업체는 물론 월마트, 크로거 등 대형 유통업체에 공급됐다. 이들 새우는 아시아와 유럽의 유통업체에도 납품된 것으로 나타났다.

새우 벗기기 작업장이 밀집한 사뭇사콘에서 노동자나 아동 학대가 일상적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은 통계를 통해서도 입증됐다.

국제노동기구(ILO)는 13∼15세의 이민자 아동 1만 명이 사뭇사콘에서 일하고 있다고 추정했다. 유엔보고서에 따르면 사뭇사콘의 미얀마 노동자 60%는 강제노동의 피해자다.

태국 정부는 법의 허점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과거 노동자 처벌이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업주를 처벌하는 것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법이나 정책의 변화들이 주로 겉치레에 불과하다며 경찰이 체포한 노동자를 구금한 뒤 다시 인신매매 조직에 팔았던 과거 사례를 지적했다.

*아래는 2014년 6월 찍은 사무트 사콘의 새우 시장과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이다. 미국 정부는 당시 태국과 말레이시아를 인신매매 방지에 대한 최저 기준을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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