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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커버그와 다이아몬드 수저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할 때 미국은 정부의 공적인 사회복지 지출 비중은 낮지만 기부를 포함한 사적 복지 지출은 훨씬 높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경제정책과 시스템의 변화를 위한 수많은 이들의 정치적 참여 없이 부자들의 선의에만 기대는 것은 한계가 자명하다. 저커버그의 기부와 관련해서도 우려 중 하나는 민주주의가 부재하다는 것이다. 부자들이 세금을 덜 내고 기부한 돈을 어디에 쓸지 결정하는 것과 정부가 누구에게 세금을 걷어 어떻게 쓸지 시민들이 결정하는 것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 이강국
  • 입력 2015.12.15 05:24
  • 수정 2016.12.15 14:12
ⓒgettyimagesbank

부자를 금수저라 부른다면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미국에서도 제일 큰 다이아몬드 수저라 부를 만한 갑부다. 얼마 전 그는 아내가 딸을 출산한 뒤 아이들에게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겠다며 재산의 99%인 약 52조원을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수많은 이들이 31살 청년사업가의 결정을 환영했고 그의 페이지의 '좋아요'는 150만개를 넘었다.

그러나 논란도 작지 않다. 특히 유한책임회사를 설립하는 그의 기부방식은 남을 돕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구글이 무인자동차 회사를 유한책임회사로 세웠듯이 그런 조직은 사익 추구를 포함하여 뭐든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저커버그는 자선재단을 세워 기부를 하면 즉시 자본이득세를 피할 수 있지만 유한책임회사는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사실 자선재단은 기금의 5% 이상을 매년 지출해야 하는 등 규제가 엄격한 데 비해 유한책임회사는 다른 회사에 투자하거나 정치적 활동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운영이 자유롭고 지배력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리콘밸리의 갑부들은 기부의 방식으로 유한책임회사를 활용해왔다. 형식이야 어떻든 다음 세대를 위하겠다는 선의는 의심하지 말자. 그의 기부는 정보기술업계 부자들 사이의 최근 유행처럼, 장기적인 모험투자를 통해 세상을 바꾸기 위한 야심찬 시도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저커버그의 기부 결정과 함께 소위 '자선 자본주의'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창조적 자본주의'를 외치는 빌 게이츠나 자신의 세금을 올리라는 워런 버핏 등 미국의 갑부들은 탐욕으로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를 구하기 위한 부자들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해왔다.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할 때 미국은 정부의 공적인 사회복지 지출 비중은 낮지만 기부를 포함한 사적 복지 지출은 훨씬 높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경제정책과 시스템의 변화를 위한 수많은 이들의 정치적 참여 없이 부자들의 선의에만 기대는 것은 한계가 자명하다. 저커버그의 기부와 관련해서도 우려 중 하나는 민주주의가 부재하다는 것이다. 부자들이 세금을 덜 내고 기부한 돈을 어디에 쓸지 결정하는 것과 정부가 누구에게 세금을 걷어 어떻게 쓸지 시민들이 결정하는 것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의 기부가 미국인들에게 울림이 큰 이유는 부의 집중과 기회의 불평등이 심각해지고 있는 현실과 관련이 크다. 미국에서는 1978년에서 2012년 사이 전체 부에서 상위 1% 부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약 23%에서 42%로 높아졌고, 상위 0.01%는 2%에서 무려 11%로 급등했다. 또한 부와 가난이 대물림되는 기회의 불평등은 다른 선진국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저커버그도 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기부의 목표로서 기회의 평등을 증진하는 노력에 관해 역설하는데, 이는 이러한 현실과 시대정신을 그대로 반영한다. 하지만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역시 페이스북의 연결이 아니라 사회적 연대이며 부자들의 자선이 아니라 정의로운 경제를 만들기 위한 시민들 스스로의 노력일 것이다.

저커버그의 기부는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도 만든다. 빈부격차가 커지고 금수저 대 흙수저가 화두가 된 한국 사회. 물려줄 재산이 없는 수많은 보통 아빠들은 아이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겠다는 희망조차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다이아몬드 수저들은 상속 과정에서 편법을 쓰거나 싸우기 일쑤며, 재벌개혁의 압력이 심해질 때에야 사재를 털어 무슨 재단을 세우곤 했다. 한국의 아빠들은 그런 기부보다 그들이 법을 잘 지키고 노동자를 소중하게 다루며 협력업체에 공정하기를 더욱 바랄 것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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