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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언어

1995년작인 <환상의 빛>에서 2015년작인 <바닷마을 다이어리>에 다다르기까지,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총 10편의 영화를 연출해왔다. 그 너비만큼이나 영화적 세계관도 크고 작은 변화를 겪어왔지만 확실한 건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일관되게 남겨진 자들의 삶을 살펴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점차 그 삶에 애정을 드리우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그의 영화는 기본적으로 냉소적이다. 하지만 그 냉소는 결코 사람을 향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을 외롭게 내모는 사회를 향한 냉소다.

  • 민용준
  • 입력 2015.12.17 05:33
  • 수정 2016.12.17 14:12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신작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가 국내에서 개봉한다. 지난 20년간,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10편의 영화로 세상에 말을 걸었다. 그리고 답을 얻었다. 자신의 영화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음을. 영화가 언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만난 건 2009년이었다. 배두나가 주연을 맡은 <공기인형>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그를 인터뷰하게 됐다. 질문을 던지면 골똘히 생각한 뒤 차분히 답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자신이 주목하는 건 '일상의 빛나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의 시간이나 공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인지 보여주고 싶다"는 그의 답변은 그가 응시하는 세계관이 궁극적으로 나아가 닿길 바라는, 그의 이상을 짐작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의 이상적인 세계의 주인공은 그의 영화 속에 놓여있는 이가 아니다. 그의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평범한 일상에서의 시간이나 공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인지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 그의 궁극적인 바람일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누군가의 통증을 맞닥뜨려야만 한다. 그는 결코 손쉽게 행복을 전시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인위적인 고통을 주입함으로써 행복의 착시 효과를 조장하지도 않는다. 진짜 이 세계에 존재하는 혹은 존재할지도 모를 불행의 단면을 발췌해 주목하게 만듦으로써 자신이 영위하는 일상의 평온함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 것일 수 있는지 새삼 깨닫게 만든다. 이를 테면 <아무도 모른다>에서 냉정할 정도로 일관되게 유지하는 정서적 거리감이 그렇다.

비극적인 실화를 모티프로 둔 <아무도 모른다>는 부모로부터 버림 받은 것이나 다를 바 없는 네 남매를 응시하는 영화다. 그 시선엔 동정이나 연민 같은 것이 완벽하게 결여돼 있다. 카메라는 그저 그 삶을 철저하게 중계하는 수단에 가깝다. 비극을 통해 눈물샘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살풀이하는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관객은 그 참담한 상황을 마른 눈으로 끝까지 응시할 수밖에 없다. 눈물을 통해 그 고통에 공감했다는 면죄부를 얻을 길도 없다. 유기견처럼 방치돼 자신들의 삶이 얼마나 버거운 것인지조차 깨닫지 못하고 당연하다는 듯 살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본다는 건 실로 참담한 일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그런 식으로 실체가 훼손되지 않은 진짜 비극을 생생하게 목격하도록 만든다. 그럼으로써 '일상의 빛나는 순간'을 역설적으로 체감하도록 이끈다. 냉소적인 두 눈으로 고통을 관조하지만 결국 그 고통 안에서 가능한 희망을 건져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초기 극영화에서 TV 다큐멘터리 연출가로서의 흔적이 드러나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인물의 감정에 개입하거나 이입하지 않도록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거리감을 두는 카메라의 중립성. 그리고 그는 연출 경력 초기엔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서 단서를 얻어낸 작품들을 더러 만들어왔다. 옴진리교의 테러 사건을 직접적으로 인용하는 <디스턴스>는 마을 사람들의 식수로 사용되는 호수에 독극물을 뿌리고 자살한 테러분자들의 죄책감을 떠안고 살아가야 하는 가해자 유족들의 삶을 그린다. <아무도 모른다>는 도쿄에서 벌어진 아이 방치 사건이 모티프가 된 작품이다. 아버지의 죽음을 복수하고자 길을 떠난 사무라이의 화해를 그린 시대극 <하나> 또한 미국 9.11 테러 이후 복수와 증오로 점철돼가는 시대상에 대한 근심에서 잉태된 작품이다. 실제적인 세계의 흐름을 포착하는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의 시각이 극영화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자연스레 이동한 셈이다. 사후세계의 중립지대에서 죽은 자의 추억을 재현해주는 이들을 다룬 <원더풀 라이프>는 당연히 실화를 바탕에 둔 작품이 아니지만 실제에 가깝게 보이는 인터뷰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다큐멘터리적인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한 사회적 관심을 바탕에 두고 탁월한 작가적 역량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보다 큰 의의가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걸어도 걸어도>에 대해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겪었던 후회가 반영된 작품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극히 사적인 경험을 영화적 세계관으로 확장시킨 첫 작품이었다. 그 이후로 그는 사적인 경험을 보편적인 세계관으로 확장하는 작가적 역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 가운데서 가장 천진난만한 작품인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은 보다 오래된 기억을 길어 올린 작품이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는 해에 첫눈에 반한 여자를 만나고자 가고시마로 향했다. 그 과정에서 잠시 들렀던 사쿠라지마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연기를 뿜는 화산 주변에서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다들 왜 이렇게 태평이지? 화산이 분출하고 있는데"라는 대사로서 영화에 반영됐다. 한편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사회파 다큐멘터리 감독의 시선과 사적인 세계에서 보편적인 철학을 발굴해내는 작가로서의 역량이 결합된 작품이다. 다섯 살배기의 딸을 통해서 모성과 부성이 받아들여지는 현격한 격차를 느끼게 된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1970년대 도쿄에서 유아가 뒤바뀐 사건을 프리즘 삼아 이를 보편적인 이야기로 투영해보고자 마음 먹었다. 사회를 조망하는 전지적 시점의 관찰자에서 1인칭 시점의 작가로서 개인의 내밀한 심성 안에 잠재된 보편적 세계관을 탐구하게 된 것이다.

"당시 도쿄에서 일어난 사건을 세밀하게 그린 <아무도 모른다>를 본 미국 관객은 우리 동네에서도 그런 사건이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스페인에서도, 토론토에서도, 프랑스에서도, <걸어도 걸어도>가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라 이야기하는 관객들을 만났다. 신기한 일이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철저하게 국내적인 걸 파고드는 것이 결국 그 끝에 놓인 보편성과 통하는 게 아닐까." 단호했다. 일상 속에서 반짝하고 다가오는 특별한 무언가를 발견한다는 것. 그것이 결국 다른 언어를 가지고 있음에도 모든 세계에 말을 걸 수 있는 비결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오는 12월 개봉을 앞두고 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최근작인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아마 그의 필모그래피 내에서 가장 보편적인 대중성을 갖춘 작품일 것이다. 게다가 이 작품은 동명 만화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그가 처음으로 연출한 극영화인 <환상의 빛>도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었다.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이란 점에서 공통분모가 있지만 시작과 끝이라는 대비만큼이나 완전히 상반되는 정서를 품고 있는 작품이다. <환상의 빛>은 어느 날 갑자기 증발하듯 자살해버린 남편으로 인해 깊은 상실감을 체감하게 된 여자의 삶을 주목한다. 갑작스럽게 세상에 홀로 남겨진 자만이 체감할 수 있는 심연의 고통을 찬찬히 살피면서도 그녀가 끝내 생의 궤도를 찾을 것이라는 희망을 넌지시 짐작하게 만든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부모의 도움 없이 한데 뭉쳐 살아가던 세 자매가 배다른 여동생을 맞이하며 네 자매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다. <환상의 빛>이 내면으로 침잠하며 스스로의 외로움을 이겨나가는 내면적 성장의 이야기라면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크고 작은 갈등을 겪는 네 자매가 서로의 존재를 통해서 위로를 얻으며 삶을 찾아나간다는 점에서 외향적 성장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배다른 어린 네 자매의 척박한 삶을 중계하는 <아무도 모른다>의 맞은편에 놓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어떤 식으로든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 세계 안에서 새로운 변곡점으로 언급될 것이다.

1995년작인 <환상의 빛>에서 2015년작인 <바닷마을 다이어리>에 다다르기까지,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총 10편의 영화를 연출해왔다. 그 너비만큼이나 영화적 세계관도 크고 작은 변화를 겪어왔지만 확실한 건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일관되게 남겨진 자들의 삶을 살펴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점차 그 삶에 애정을 드리우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그의 영화는 기본적으로 냉소적이다. 하지만 그 냉소는 결코 사람을 향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을 외롭게 내모는 사회를 향한 냉소다. 최근 발간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에세이집 <걷는 듯 천천히>에선 그가 품은 인간에 대한 애정과 사회에 대한 시각을 보다 명확히 읽을 수 있다.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는, 실패까지도 기억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결국 문화로 성숙된다. 그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망각을 강요하는 것은 인간에게 동물이 되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것은 정치와 언론이 행할 수 있는 가장 강하고, 가장 치졸한 폭력이다." 이건 지금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결국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보편적인 언어를 찾아낸 것이다. 사회에 대한 엄격한 시선과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을 통해서.

(HARPER'S BAZZAR에 게재된 기사를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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