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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 주는 먹방, 푸는 먹방

과도함과 담백함의 차이? 그런 면도 있지만 <...미식가>는 픽션의 형식을 띠고 있어 조금 과장해도 용서가 되는 면이 있을 거다. 그보다 확실한 차이는, 고로가 혼자 먹고, 혼자 평가하고, 혼자 만족한다는 거다. 다른 먹쿡방에선 사람들이 몰려다니고, 같이 먹고, 손님을 부른다. 이 차이가 중요해 보이는 건, 먹쿡방 유행을 '혼밥'(혼자 먹는 밥)과 연관짓는 분석이 많았기 때문이다. 1인 가구가 늘면서 '혼밥' 먹을 때 먹방에서 남 먹는 것 보고 위로를 얻고, 쿡방에서 손쉬운 요리 팁을 배우기 때문에 먹쿡방이 유행한다는 것이다.

  • 임범
  • 입력 2015.12.08 06:43
  • 수정 2016.12.08 14:12
ⓒtv-tokyo

먹방, 쿡방(합해서 먹쿡방)이 많다. 나도 먹쿡방을 잘 보는데 언제부턴가 잠시 보다가 채널을 돌린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만 나오면 끝날 때까지 채널 고정이다. 본 걸 또 보기도 한다.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로, 최근에 시즌5가 새로 방영중이다.

인테리어 업자 '고로'가 의뢰인을 찾아가 일을 보고, 배가 고파지고, 근처의 맛있어 보이는 식당을 찾아가, 맛있게 먹고, 가게를 나와 길을 걸으며 끝난다. 식당은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겉모습과 분위기만 보고 찾아간다. (원작 만화를 그린 이도 그렇게 식당을 찾았단다.) 특별한 드라마는 없고, 찾아간 동네와 식당에서 마주치는 사람에 대한 사소한(더러는 썰렁한) 에피소드가 곁들여진다. 술 못 마시는 주인공이, 술꾼이 많이 오는 음식점에 들어가 그 모습을 훔쳐보는 장면도 자주 나온다. 홀로 관찰하고, 홀로 먹는 개인. 이 프로를 보면, 식욕이 솟구치는데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묘한 상태에 이른다.

요즘 방영중인 다른 먹쿡방을 볼 땐 어땠지? '저런 재료로 저런 걸 만든다. 말 되네, (또는) 말은 되지만 굳이 저렇게? (맛볼 때쯤이면) 맛은 대충 알겠고, 모른다 해도 출연자들이 솔직히 말하겠어?' (채널 돌리고) '저거 아직도 하네. 다시 하는 거구나. 근데 왜 자꾸 개, 고양이가 나와.' (돌리고) '저렇게 고급 재료를 때려 넣으면 맛없는 게 이상한 거지. 출연자들 맛있다는 리액션을 보인답시고 진짜 고생한다. 얼굴 확대하고 느린 화면에... 목젖 떨리고 코털도... 푸드 포르노?' (돌리고) '먹는 표정 아닌, 먹고 싶어하는 표정까지 저렇게 크게 잡나. 거기에 자막까지 넣고.' (돌리고) '맛을 예찬한다고... 국어가 고생한다.' (돌리고)

과도함과 담백함의 차이? 그런 면도 있지만 <...미식가>는 픽션의 형식을 띠고 있어 조금 과장해도 용서가 되는 면이 있을 거다. 그보다 확실한 차이는, 고로가 혼자 먹고, 혼자 평가하고, 혼자 만족한다는 거다. 다른 먹쿡방에선 사람들이 몰려다니고, 같이 먹고, 손님을 부른다. 이 차이가 중요해 보이는 건, 먹쿡방 유행을 '혼밥'(혼자 먹는 밥)과 연관짓는 분석이 많았기 때문이다. 1인 가구가 늘면서 '혼밥' 먹을 때 먹방에서 남 먹는 것 보고 위로를 얻고, 쿡방에서 손쉬운 요리 팁을 배우기 때문에 먹쿡방이 유행한다는 것이다.

맞건 틀리건 이런 분석엔 '혼밥'을 '위로받아야 할 행위'로 보는 부정적인 시각이 있다. 거기에 '삼포세대'까지 붙으면? 가족을 꾸리고 싶은 욕망을 성취하지 못해 1인 가구가 됐으니 혼자이거나 혼자 밥 먹는 것 모두 극복해야 할 대상이 된다. 이런 사고 아래선 혼자 유유자적 음식을 즐기는 고로 같은 개인은 설 땅이 없다. 그러니 <...미식가> 같은 정서는 한국의 프로그램이 담기 힘들지 모른다. 하지만 먹고살기 힘들어도, 사회로부터 개인이 갖는 거리와 여유는 필요하다. 어떤 세대에 속하든, 부자이든 가난하든, 혼자 있는 시간과 '혼밥'은 필요한 것일 거다.

<...미식가>는 일 하느라, 사람 만나느라 부대끼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세상을 좀 더 차분하게, 있는 그대로 보게 해주는 것 같다. 거리를 두고 사회를 관찰하고 사유하는 개인에 대한 예찬의 일환으로, '혼밥'을 다룬다고 할까. 반면, 한국의 몇몇 먹쿡방은 식욕을 계기 삼아 다시 전투력을 회복하고 사회에 나가 싸우라고 종용하는 것 같다. 전쟁 치르듯 요리하고 먹고, 혀가 닳도록 칭찬하고, 맛있다는 표정과 몸짓의 리액션 경쟁을 치르는 예능인들을 보면 일과 사람 때문에 부대끼던 마음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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