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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정부,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 지급!'의 실체

  • 허완
  • 입력 2015.12.07 13:06
  • 수정 2015.12.07 13:31

핀란드 중도우파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월 800유로(약 101만원)에 달하는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직업이나 기존 소득 금액에 관계 없이, '증빙서류'를 준비하거나 따로 청구하지 않아도, 말 그대로 모든 성인 국민에게 100만원씩을 알아서 그냥 나눠준다는 얘기다.

그러나 '역시 북유럽 복지선진국답다!'며 감탄(?)할 문제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1. 다른 사회복지는 모두 없앤다

유하 시필레 핀란드 총리. CEO 출신이자 집권 여당인 중도당 대표인 그는 지난 5월 '중도 우파 연정'을 구성했다. ⓒAP

핀란드 사회보장국(KELA)이 내년 11월 발표를 목표로 작성중인 이 구상에 따르면,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다른 사회복지 수단은 모두 폐지될 전망이다. 텔레그라프에 따르면, 유하 시필레(Juha Sipilä) 핀란드 총리는 "기본소득은 사회보장체계의 간소화를 뜻한다"고 말했다.

쉽게 말하면, '모든 복지혜택을 없애고 월 100만원으로 퉁치겠다'는 얘기다. 이럴 경우 복지 수준이 높은 핀란드에서 적지 않은 시민들은 기본소득 도입 이후 오히려 복지 혜택이 줄어들게 될 전망이다.

미국 온라인매체 쿼츠는 "누가 손해를 보게 될 지 아직 분명하지는 않지만, 주거비 지원이나 장애수당을 받는 이들은 기본소득 체계에서 복지혜택을 덜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핀란드 정부의 이번 계획은 나머지 기존 복지에 대한 폐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2. 애초부터 이건 복지축소 정책이었다

애초부터 이 정책의 도입 목적은 복지 확대가 아니라 복지 축소에 가까웠다. 핀란드 정부의 눈에는 '복지혜택으로 놀고 먹는 실업자들'이 못마땅하다는 것.

아래는 BBC를 인용해 핀란드 기본소득 도입 논의 소식을 전한 지난 8월 연합뉴스 기사 중 일부다.

핀란드 정부가 '놀고먹는' 실업자를 양산하는 복지제도를 고쳐보려는 실험을 검토하고 있다.

복지국가 핀란드는 실업자를 위한 사회안전망이 잘 갖춰져 있다. 그러나 이 때문에 핀란드에서 실업자가 일을 하게 되면 오히려 손해를 볼 수도 있다.

실업자가 임시직을 얻게 되면 여기서 받는 급여가 실업급여보다 적을 가능성이 크다. 만일 저임금의 임시직이라면 일을 그만둔 뒤 예전 수준의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손해를 입게 된다. (연합뉴스 8월20일)

3. '복지를 축소해 실업률을 낮추자!...?'

이를 통해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핀란드 정부가 기본소득 정책을 도입하려 하는 건 역설적이게도 15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은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서다.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핀란드 정부가 기본소득 정책을 추진하는 건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서다. 핀란드의 실업률은 15년 사이 최고수준인 9.53%를 기록 중이며, 기본소득이 지급되면 사람들은 저임금 일자리를 택하게 될 것이다. 현재는 임시직으로 일할 경우 복지혜택이 축소되며, 이는 전체 소득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쿼츠 12월5일)

핀란드 정부는 현재 실업률이 높은 이유로 실업자에게 주어지는 복지급여를 포기하지 않으려고, 저임금 임시직 취업을 꺼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이 보장되면, 이런 일자리를 맡아도 소득이 더 늘어나기 때문에 실업률이 감소할 것이라는 계산이다. (한국일보 12월7일)

요약하면, 이런 얘기다.

1. 현재 핀란드 국민들은 굳이 저임금 일자리에서 일하는 것보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실업수당을 받는 게 훨씬 이득이다.

2.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대신 실업수당 같은 기존 복지혜택을 폐지하면, 사람들이 저임금 일자리라도 택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실업률 감소)

4. '기본소득=작은 국가'...?

기본소득 제도가 도입되면 복지 관련 공무원들도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전망도 있다. 모든 복지정책이 기본소득 하나로 단순화될 경우, 방대한 복지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투입됐던 공무원들의 업무도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

아래는 쿼츠가 인용한 지난해 7월 헬싱키타임스 기사 중 일부이다.

현재 수천명의 공무원들이 복잡하고 다양한 복지정책들을 담당하고 있지만, 기본소득 체계 하에서는 여기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심사 같은 게 필요 없기 때문에 기본소득 제도를 운영하는 데는 훨씬 적은 사람들만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기본소득 제도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부나 소득에 상관 없이 똑같은 돈을 받게 된다. (헬싱키타임스 2014년 7월17일)

이 때문에 핀란드의 공무원들과 노조는 물론,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핀란드 사회민주당은 이런 기본소득 구상에 반대해왔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통상적으로 복지국가는 '더 큰 국가'를 뜻하지만, 기본소득 제도는 '더 작은 국가'로 귀결될 수 있다는 것.

흔히 기본소득은 좌파 진영 일각에서 주장하는 경우가 많지만, 논란은 여전한 게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기본소득을 '신좌파의 복지 아나키즘'으로 규정하며 "앞 뒤가 안 맞는 자기모순적 이야기"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5. 그밖의 문제들

다른 근본적인 문제들도 있다. 첫 번째는 막대한 재원이다.

핀란드의 모든 성인들에게 매월 800유로를 지급하려면 매년 약 467억유로(약 59조원)에 달하는 돈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2016년 핀란드 정부의 예상 재정수입액은 491억유로다. 재정수입 대부분을 기본소득으로 지출해야 한다는 얘기다.

또다른 문제는 역시 형평성이다. 자녀 세 명을 둔 미혼모와 자녀가 없는 1인 가구에게 똑같은 복지를 제공하는 게 과연 타당하냐는 것.

기본소득 제안은 사정이 나은 이들에게 형편이 정말 어려운 사람들과 똑같은 복지를 제공하는 게 공평한 것이냐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핀란드 헌법은 모든 시민이 평등하게 취급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물론 평등은 다양한 방법으로 해석될 수 있다. 국가적인 차원의 기본소득이 평등한 사회를 만든다는 명확한 증거는 현재까지 없다. (쿼츠 12월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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