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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애란 "농부의 딸로 태어나 출세했다 전해라~"

ⓒ이애란

25년 무명 가수가 '짤방'('짤림 방지'의 줄임말로 글과 함께 올린 사진 또는 동영상) 하나로 인생 역전을 했다.

'백세인생'이란 노래로 온라인에서 일약 스타가 된 이애란이다.

'육십 세에 저세상에서 날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젊어서 못 간다고 전해라 (중략) 구십 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알아서 갈 테니 재촉 말라 전해라~.'('백세인생' 중)

'~전해라'란 가사가 젊은층에 패러디 되며 메신저 대화창과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넘쳐났고,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도 노래가 반복해 울려퍼졌다.

급기야 '짤방'이 이모티콘으로도 출시돼 판매 1위를 기록 중이다. 사람들은 메신저에서 대화를 나누다 '리포트 빨리 제출하라'고 하면 '재촉 말라 전해라', 엄마가 '빨리 들어오라'고 하면 '못 간다고 전해라'란 이모티콘을 사용하는 식이다.

이애란이 방송에서 노래한 영상은 유튜브 조회수 220만 건을 넘기며 호응을 얻었고, 급기야 지난 5일 방송된 MBC TV '무한도전'에도 출연했다. 유재석은 그가 등장하자 "이애란 선생님"이라며 반겼다.

지난주 이애란에게 전화를 걸자 목소리가 뚝뚝 끊기며 통화가 매끄럽지 못했다.

"제가 지금 배 위예요. 오사카로 가는 크루즈에서 행사가 있어서요. 내일 오전 10시30분에 도착해요."

이틀 뒤 다시 전화 연결이 된 이애란은 "크루즈에서 공연이 있었다"며 "하루 1~2개 이상은 스케줄이 잡혀 있어 정신이 없다. 이 노래가 뒤늦게 주목받을지 상상도 못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히트에 힘입어 행사 개런티도 4~5배가량 뛰었다. 소속사 넘버원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무명 가수였기에 개런티가 워낙 적었던 터라 몇 배가 뛰었다고 해도 그리 높진 않다"고 귀띔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전해라'란 가사가 유행어가 됐다. 처음 반응을 어디서 느꼈나.

▲ 이 대목을 젊은층까지 좋아해 줄 줄 몰랐다. 온라인에서 '짤방'으로 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로 큰 호응을 얻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지인이 내 이모티콘을 선물해줘 나도 쓰고 있다.

-- 이 노래는 100세 시대를 사는 요즘 사람들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어떻게 나온 가사인가.

▲ 1995년 작곡가 김종완 씨가 작사·작곡한 곡으로 내가 2013년 발표했다. 김종완 씨가 20년 전 친구 아버지가 50대에 돌아가시자 자식들이 애타게 울고불고하는 모습을 보고 좀 더 오래 살았으면 하는 바람에 가사를 썼다고 한다.

-- 허스키한 창법이 창을 배운 것 같던데.

▲ 창을 배운 적은 없다. 노래가 퓨전 국악 가요여서 노래 맛을 살리도록 김종완 씨가 '어떻게 부르라'고 지도해주셨다.(이 노래에는 아리랑 가락도 구수하게 흘러나온다.)

-- 무명 생활이 길었다고.

▲ 1990년 드라마 '서울뚝배기' OST(오리지널사운드트랙)로 가요계에 입문했지만 줄곧 내 노래 없이 무명 가수로 살았다. 이미자, 조미미 등 선배님들의 트로트를 즐겨 불렀다. 2006년 첫 음반인 '천년의 사랑'을 냈지만 잘 안됐다.

-- 어떻게 가수가 됐나.

▲ 강원도 홍천이 고향으로 서너 살 때 말이 떨어지자마자 유행가를 불렀다. 어르신들이 노래하라고 하면 꼭 높은데 올라가서 노래했다. 어렵사리 가수의 길로 들어섰지만 힘들었다. 가수를 접고 노래를 안 하려다 몇 년 만에 다시 하게 되고를 반복하며 여기까지 왔다. 트로트계에서 쌓은 잔잔한 인맥 덕에 시장 등 불러주는 곳에서 노래하며 잘 참고 버틴 것 같다.

-- 앞으로 활동 계획은.

▲ 떴다기보다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백세인생'을 더 많이 알리고 이후에 후속곡도 만들 생각이다.

--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 콘서트도 하고 싶고 국민의 주목을 받는 가수가 되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 농부의 딸로 태어나 출세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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