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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게이를 위한 당당한 양지 "햇빛서점"

이름을 햇빛서점으로 정한 이유가 뭘까요? 게이들이 편하게 즐길 만한 공간이 술집이나 클럽이잖아요. 또 그런 데는 밤에만 주로 놀 수 있는 곳이고. 저는 낮에도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서, 그리고 단순한 이름을 좋아하는 취향 때문에 그렇게 정하게 된 것 같아요.

  • 친구사이
  • 입력 2015.12.09 06:00
  • 수정 2016.12.09 14:12

현대 게이가 이 남자 저 남자 만나가며 살아가기 위해 챙겨야 할 덕목은 참 많다. 피부, 몸매는 더 이상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다. 작고 힙한 분위기와 걷기 좋은 조용한 골목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이태원의 이슬람사원 앞 우사단로에, 새로운 덕목을 제시하는 가게가 생겼다고 해서 귀를 쫑긋 세우며 달려가 보았다.

(사진제공: 물병)

물병: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철이: 안녕하세요 저도 만나서 반갑습니다.

물병: 서점을 개업하신 것은 혼자 개업하신 건가요?

철이: 네 서점은 혼자 열었고, 여기를 작업실 겸 친한 대학 선배인 박지성 형하고, 햇빛스튜디오로도 운영하고 있어요.

물병: 그러시군요. 이걸 꼭 해야겠다는 계기가 있으셨나요.

철이: 서점을 차리는 일이 쉽지 않은 걸 지금 느끼고 있어요. 예전에는 그리 어렵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그냥 하면 되겠지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했어요.(웃음)

제가 2년전 26살때 게이로서 정체성을 확립했는데, 직장에 나가거나 낮 동안 내가 게이로서 즐길 게 좀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밤에 나가서 술 먹고 클럽가는 것도 재밌지만. 외국에 보면 서점도 있고 커뮤니티 센터도 활발히 되어 있고, 그런 것들이 부러워서 제가 차리고 싶다고 마음 먹었어요.

물병: 그러면 오픈하시면서 어려우신 점은 없으셨나요.

철이: 가게를 차리고 운영을 하는 데는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근데 서점을 오픈한 다음날 엄마한테 전화가 와서 얘기를 하다가, 제가 "이제 스튜디오도 하고 서점도 하게 되었어요." 하니까, 엄마가 뭘 파는 서점이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때 제가 오픈한 직후라 너무 기분이 좋아서, 그 기운에 말해버렸죠. 그 전엔 전혀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어서. 바로 고향으로 소환당했어요.

물병: 그 이후에 어머니께서 서점에 오신 적이 있나요?

철이: 아니요. 서점에 책을 들여놓기 전에 오셨는데, 개업하고 나서 오신 적은 아직 없어요.

▲ 이슬람사원 옆 펄럭이는 만국기를 지나 쭉 가다보면 햇빛서점이 보인다. (사진제공: 물병)

물병: 처음 햇빛서점이 생긴다고 들었을 때 저는 '사장님은 책 읽는 것을 좋아하시나 보다.'라고 단순히 생각했었어요.

철이: 그렇지 않아요.(웃음)

물병: (웃음)근데 시간이 조금 지나고 가게를 와 보니까 조금 의문이 들었어요. '과연 사장님은 책 읽는 것을 좋아하실까?'라고요.

철이: 왜 그렇게 생각하셨어요?

물병: 왜냐하면, 서점이라고 하면 글자들이 마구 적혀진 책들이 나열되어 있고. 그런 것들을 파는 가게를 차리는 사장님이라고 하면 왠지 책을 많이 읽을 것 같고. 텍스트에 대한 열정이 있는 그런 느낌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근데 햇빛서점은 텍스트보다 이미지 중심의 책들이 많아서 기존 서점의 느낌이랑 많이 달랐어요.

철이: 네 맞아요. 일단 저는 그렇게 텍스트적인 사람이 아니고요. 그림책이 많은 이유는 국내에서 나온 책들도 있지만. 아무래도 외국에서 가져오는 것들이 많아서 언어적인 장벽이 있기 때문에 제가 보고 싶은 그림책 위주로 많이 가져오는 편이에요.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제가 그런 서점 주인같이 안경쓰고, 똑똑하고, 텍스트를 잘 보고 그런 사람이면 좋겠죠.(웃음)

물병: 정말 그렇게 되길 원하세요?(웃음)

철이: 네 정말 그렇게 됐음 좋겠어요. 텍스트를 많이 보고 열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명민하게 시대 흐름에 맞는 책들도 선별해오고 소개도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그런 것에 타고나진 않을 것 같아요.

물병: 그래도 나름의 분별력이 분명히 있으신 것 같아요. 재밌고 다양한 책들이 있고. 개인적으로 감동 있게 본 사진집도 있거든요.

철이: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물병: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서. 이름을 햇빛서점으로 정한 이유가 뭘까요? 저는 조금 더 전위적이고 특이한 이름일 줄 알았거든요.(웃음)

철이: 게이들이 편하게 즐길 만한 공간이 술집이나 클럽이잖아요. 또 그런 데는 밤에만 주로 놀 수 있는 곳이고. 저는 낮에도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서, 그리고 단순한 이름을 좋아하는 취향 때문에 그렇게 정하게 된 것 같아요.

▲ 우아한 자태의 이름하야 똥꼬부채(뒷면 구멍으로 나오는 손가락은 남자의 성기가 된다.) (부채사진 출처 : 햇빛서점 페이스북)

물병: 혹시 햇빛서점 인터넷에 검색해보셨나요?

철이: 맨날 검색해보죠.(웃음)

물병: 그럼 연관검색어도 뭔지 아시죠?(웃음)

철이: 똥꼬부채요!(웃음)

물병: 예! 아 역시 아시는구나. 2015 퀴어문화축제의 아이콘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요. 이번에 반응이 엄청났어요. 의도하신 건가요?

철이: 어떤 반응을 의도하고 만든 것은 아니에요. 이 아이디어를 같이 스튜디오 하는 지성이 형이 처음 내줬는데, 저는 그냥 아이디어 자체가 너무 좋았어요. 한 번에 두 가지를 해결할 수 있는 디자인이 정말 좋았고. 재밌다고 생각해서 만들었어요.

물병: 엄청난 반응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포비아들의 반응들도 많았지만, 중요한 것은 당사자인 게이들의 반응이니까. 제 주변 게이들의 반응은 좋았던 것 같아요.

철이: 저는 좋은 반응보다 논란이 더 눈에 띄더라고요. 예를 들어 일반인들이 보기 불편할텐데 이런 걸 또 들고 나오냐, 너희들은 내부의 적이다, 이런 얘기들에 처음엔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그리고 인터넷 커뮤니티에 사진이 퍼지면서. 댓글을 봤는데 너무 살벌한 거예요. 그래서 좀 힘들어 하다가... 생각해보니까 잘못한 것 같지 않더라고요. 아무리 더 생각해봐도(웃음) 잘못한 것 같지 않아서. 좋게 생각하기로 했어요.(웃음)

물병: 긍정적이시네요(웃음). 저도 인터넷에서 댓글들을 보면서, 이해하고 싶어하지 않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하고, 회의감이 들더라고요.

철이: 왜 그런 말이 있잖아요. 남자에게 보기 좋은 페미니즘. 포비아에게 보기 좋은 퀴어퍼레이드. 중요한 것은 내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서 자긍심을 갖는 것 같아요.

물병: 네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그럼 혹시 내년 퀴어문화축제 때 뭔가 하실 계획이 있으신가요?

철이: 이제 생각해 보려고요. 부채처럼 햇빛서점에서 만든 물건이나. 국내에서 나온 책들이 좀 있는데 이걸 묶어서 코너로 만들면 좋을 것 같아요.

▲햇빛서점 개업파티, 저것보다 더 많은 사람이 있었다고. (사진제공: 물병)

물병: 가게를 개업한 지 얼마나 되셨죠?

철이: 개업한 날이 9월 4일이었으니까. 벌써 두 달 정도 되었네요.

물병: 시간 진짜 빠르네요. 그날 오프닝 파티를 하셨는데. 어떠셨어요?

철이: 사람이 진짜 많아서 일단 정신이 없었어요.

물병: 네 그때 가게 앞에 사람들이 진짜 많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아 사람들이 이런 곳이 생기길 진짜 원했구나 싶더라고요.

철이: 네. 많이 와주셔서 너무 기분이 좋았어요.

물병: 가게에 텐가(자위기구)도 있었다고 들었는데.(웃음) 오픈한 날 완판하셨나요?

철이: 아뇨 한 개업하고 2주 정도 지나서 다 팔았어요.

물병: 가게에 엽서도 있고, 티셔츠도 있는데, 책 말고 다른 상품들도 있는 부분이 매력적인 거 같아요.

철이: 네 서점이라고 차렸지만, 아까 말씀드렸던 햇빛서점 이름의 의미처럼 일상생활에서도 자신이 게이임을 느낄 수 있는 물건들을 더 들여놓고 싶어요. 예를 들어 가방에 달려있는 무지개 배지같은 게 저 같은 경우는 기분이 되게 좋더라고요.

물병: 지금 영업시간이 낮 2시부터 저녁 8시까지 주말에만 하고 계신데, 언제쯤 평일에도 햇빛서점을 만날 수 있을까요?

철이: 지금은 4월까지 조교일이 계약되어 있어서, 그때까진 평일에 학교에서 일하고, 그 이후엔 좀 놀다가 준비하고 평일에 열 생각이에요.

물병: 앞으로 가게에서 더 하고 싶으신 일이 있나요?

철이: 이벤트 같은 걸 더 많이 열고 싶어요. 오프닝 때 제가 만든 것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러 와주었구나 하고 기분이 너무 좋았던 기억 때문인 것도 있고, 처음에 가게를 생각할 때 더 넓은, 공간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책상도 있고 마치 외국의 센터처럼 열고 싶었는데. 1층이랑 진열창은 포기 못하겠고 해서, 조금 좁은 공간에 들어왔는데. 만약 더 큰 공간이었으면 출판기념회라든가 겨울에 손뜨개질 교실 같은 걸 할 수 있었을텐데 아쉬워요.

물병: 1층이랑 진열창을 굳이 고집한 이유는 뭘까요?

철이: 지나가면서 사람들이 보길 원했어요. 게이든 일반이든 보면서. 주변에 언제든지 있을 수 있다는 의미로 1층이랑 진열창이 꼭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물병: 그러면 운영하시면서 가게에 들어오는 일반인들도 많았나요?

철이: 네 일단 제가 앞에 lgbt 전문 서점이라고 표시를 해뒀어야 했는데 아직 못 붙여 놓아서. 어떤 곳인지 잘 모르고 계속 들어오세요. 그렇게 들어오셔서 여기 뭐하는 서점이냐고, 물어보시면 제가 'lgbt를 전문으로 하는 서점입니다' 해요. 그럼 못 알아들으셔서 주로 '성소수자를 위한 책을 판매하는 곳입니다' 라고 말하죠.

물병: 그럼 반응들이 어때요?

철이: 여기 주변에 이슬람사원도 있고, 교회도 있고, 어르신 분들이 많은 동네라서 많이 걱정했었는데. 지금까지는 딱히 막 난동을 피운다던가 그런 일은 없었어요. 더 난리를 쳐야하나 싶어요(웃음).

▲노란 네온간판 위 무지개 깃발

의 각 색깔별 의미들. (사진제공: 물병)

물병: 마지막 질문으로, 햇빛서점이 활발하고 긍정적인 힘을 사람들에게 주는 것 같아요. 그 이유가 뭘까요?

철이: 당당함인 것 같아요. 근데 이건 햇빛서점만 갖고 있는게 아니라 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싶어하고 그대로 인정받고 싶어하는데, 저의 경우는 앞에서 말했듯이 주변으로부터 게이로서 인정받고 사는게 좋아서 햇빛서점까지 차리게 된 거죠. 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더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햇빛서점이 그 중간에서 창구가 되어주면 더 좋겠다고 생각해요.

물병: 네 오늘 인터뷰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철이: 저도 감사합니다.

* 글 : 물병

* 위 글은 친구사이 소식지 64호 (2015년 10월)에 실린 글로 인터뷰는 2015년 10월 중순경이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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