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사시충, 로퀴벌레" 왜 싸우는지 알아보자(해설)

ⓒ한겨레

법무부가 3일 사법시험의 폐지를 2017년에서 2021년으로 4년 더 유예하는 안을 내놨습니다. 법무부는 유예안을 발표하면서 “국민의 80% 이상이 로스쿨 제도에 대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인식 아래 사법시험의 존치를 주장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시민 1000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 것인데요. 하지만 설문조사 문항을 보면 “사법시험은 누구에게나 응시 기회가 부여되고, 수십 년간 사법연수원과 연계하여 공정한 운영을 통해 객관적 기준으로 법조인을 선발하여 왔다”는 문장처럼 ‘사시가 로스쿨보다 더 공정하다’는 설명이 전제로 붙어 있습니다. 설문 문항의 공정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많은 시민들이 “로스쿨이 높은 학비를 받으면서 사실상 신분을 세습하는 ‘음서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판에 공감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사시 존치’라는 선택으로 퇴행하는 것은 대안은 아니라는 지적에 일리가 있지만, 로스쿨의 문제점도 함께 짚어보면서 개선책을 따져봐야 합니다.

1. 개천 용은 없다.

2009년 로스쿨이 도입된 지 7년이 흘렀습니다. 애초 계획대로라면 사법시험 폐지가 2017년까지 유예됐기 때문에, 로스쿨 출신 법조인과 사시 출신 법조인이 매년 함께 탄생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사회경제적 배경에 대한 실증 연구가 나온 건 올해 6월이 처음입니다. 서울대 이재협(로스쿨 교수)·이준웅(언론정보학과 교수)·황현정(언론정보학과 박사과정) 연구팀은 지난 6월 법조인 1020명의 △출신 학부 △전공 △부모 학력과 직업 △가구소득 △교육 평가 △직업적 평판 등을 조사 분석해 ‘로스쿨 출신 법률가, 그들은 누구인가?’라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연구진은 로스쿨 1~3기(2009년~2011년 입학) 308명, 사법시험을 거친 사법연수원 40~43기(2009~2012년 입소) 300명, 사법연수원 39기 이전 경력변호사(2008년 이전 입소) 412명을 면접 또는 전자우편을 통해 설문조사했습니다.

논문을 보면, 2009년 이후 법조인이 된 이들은 로스쿨 출신이 됐든 사법시험을 거친 사법연수원 출신이 됐든 공히 2009년 이전 사법시험을 거쳐 법조인이 된 이들보다 소득이나 사회적 지위 등에서 계층이 높은 자녀의 비중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우선 부모의 직업을 보면, 부모 가운데 한쪽의 직업이 관리직(경영진 또는 임원)인 비율은 로스쿨 출신이 24.7%로 사법연수원 출신(14.7%)에 견줘 10%포인트 높았습니다. 부모가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인 경우는 로스쿨 출신 18.5%, 사법연수원 출신 16.7%로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전 세대와 견주면 확연한 차이가 납니다. 사법연수원 33기(2002년 입소) 이전 법조인들 가운데 부모가 경영진·임원인 경우는 9.9%, 전문직 비율은 7.7%에 불과합니다. 10년 정도 차이를 두고 로스쿨 출신이든 사법연수원 출신이든 큰 상관없이 이전 세대 법조인들보다 소득이나 사회적 지위 등에서 높은 계층의 자녀들이 법조인으로 더 많이 유입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물론 앞서 말씀드렸듯 부모의 직업이 관리직인 비율에서 로스쿨 출신이 사법연수원 출신보다 10%포인트 더 높게 나온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가족·친척 가운데 법조인이 있는 비율을 보면, 사법연수원 33기(2002년 입소) 이전은 17.8%인데, 34기(2003년 입소)부터 43기(2012년 입소)까지는 33%로 크게 늘어납니다. 로스쿨 출신은 이 비율이 26.3%입니다.

이 통계를 보면, 사법연수원 출신에서 법조인 집안 자녀들이 사회문화적 영향을 대물림받아 법조인이 되는 경우가 크게 늘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정리하면, 고소득 기업인 집안 출신은 로스쿨, 법조인 집안 출신은 사법연수원으로 이전보다 더 많이 몰리고 있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로스쿨이 됐든 사법시험이 됐든 예전처럼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3일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 사법시험 폐지 유예 입장 발표를 환영하는 새누리당 관악을당원협의회 현수막이 걸려있다.

2. SKY 독점은 줄고 있다.

그렇다고 로스쿨이 기여하고 있는 점이 없는 건 아닙니다. ‘SKY 출신’들의 법조인 독점은 조금씩 완화하고 있습니다.

지방대 졸업자 비중은 로스쿨 출신이 17.4%로 연수원 출신(10.5%)에 견줘 높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로스쿨이 생기기 전 법조인 집단에서 지방대 비중은 7.3%에 불과했습니다. 그만큼 로스쿨이 생기기 전에는 법조인들 사이에서 ‘학벌’의 벽이 높았다고 볼 수 있겠지요. 법조인들은 지금도 어느 대학 출신인지를 따져 물어서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행해지고 있습니다.

이른바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대학 출신의 경우 로스쿨은 55.5%로 여전히 높지만, 사법연수원 출신(61.6%)보다 6%포인트가량 낮고, 로스쿨이 생기기 전 법조인 집단(77.2%)보다도 훨씬 낮은 수치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겨레>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정진후 정의당 의원을 통해 교육부의 ‘2009~2015 전국 로스쿨 입학생 현황’을 받아 1만4000여명을 분석하고,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7년 동안 사법시험 합격자 4539명 현황도 함께 분석해봐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로스쿨의 ‘SKY’ 출신 비율은 47.9%로 사법시험 합격자의 ‘SKY’ 비율(54.1%)보다 낮게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주요 대학 로스쿨을 따로 떼어놓고 보면, ‘SKY’ 출신들의 ‘그들만의 리그’는 여전한 상태입니다. 서울대 로스쿨은 서울대 학부 출신이 65.4%이고, 다른 대학 학부 출신이 36.4%인데, 고려대와 연세대, 카이스트, 포항공대, 경찰대 등을 빼면 다른 대학 학부 출신이 6.8%에 불과합니다. 특히 비수도권 대학 출신은 0.5%에 그쳤습니다.

고려대는 50.2%가 다른 대학 출신인데, 서울대와 연세대, 외국 대학을 빼면 9.9%에 불과하고, 연세대는 47.6%가 다른 대학 출신인데, 서울대와 고려대, 외국 대학을 빼면 14.2%에 그치고 있습니다. ‘SKY’ 로스쿨은 여전히 ‘그들만의 리그’를 구축하고 있는 겁니다.

출신 고교도 쏠림 현상이 심했습니다. 출신 고교 자료를 제출한 11개 로스쿨(강원대·동아대·부산대·서울대·서울시립대·성균관대·인하대·전남대·전북대·충남대·한국외대)의 2013~2014년 2년간 현황을 보면, 특목고 출신은 13.9%,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 고교 출신은 10.6%에 이르렀습니다.

3. 1년 학비가 수천만원

로스쿨의 높은 학비도 여전히 문제입니다. 2013년 기준 사립대 로스쿨의 평균 1년 등록금은 1821만원(국·공립대 993만원)입니다. 여기에 주거비, 식·생활비, 교재값 등을 합치면 로스쿨 졸업까지 대략 1억원 안팎의 비용이 든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앞서 공개한 ‘로스쿨 출신 법률가, 그들은 누구인가?’라는 논문을 봐도, 학자금 마련 경로를 묻는 질문에 로스쿨 출신들은 ‘가족이나 친척의 지원’이라는 답변이 38.1%, 장학금이라는 답변이 33.8%를 차지했습니다.

특히 36.4%가 학자금 대출 경험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들의 평균 대출액은 2957만원입니다. 상당수 로스쿨 학생들이 비싼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고통을 겪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들은 대부분 소득이 넉넉하지 않은 집안 출신일 가능성이 크겠지요.

하지만 로스쿨을 가지고 있는 대학들은 초기엔 장학금 퍼주기를 하겠다며 ‘달콤한 약속’을 해놓고, 점점 그 약속을 나 몰라라 하고 있습니다. 정진후 정의당 의원이 교육부에서 받은 전국 25개 로스쿨의 이행계획 점검 자료를 보면, 전체 로스쿨의 장학금 지급률(등록금 총액에서 장학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로스쿨 도입 초기인 2010년 43.5%였다가 2014년 1학기 36.6%로 떨어졌습니다.

로스쿨 설립 첫해 학생 100% 장학금 지급을 선언했던 강원대는 2014년 1학기 장학금 지급률이 24.4%로 떨어졌고, 설립 초기 75.7% 장학금 지급률을 보이던 건국대도 2013년 40.5%로 지급률이 급전직하했습니다.

서울대의 2014년 1학기 장학금 지급률은 전체 평균(36.6%)보다 낮은 31.9%에 불과하고, 연세대는 30.5%에 불과합니다. 고려대는 2010년 25.2%에 불과했다가 2014년 1학기 33.6%로 올렸지만, 그래도 역시 전체 평균보다 낮습니다. 이 때문에 로스쿨 곳곳에서 학생들과 학교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서울대 로스쿨 재학생 464명이 4일 자퇴서 제출했다.

4. 사시가 대안은 아니다

이 때문에 사법시험을 존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부 법조인들은 로스쿨의 ‘고비용 구조’가 한국 사회의 계층 이동 사다리를 없애버렸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주장도 어불성설입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서울 신림동 고시촌을 중심으로 대형 학원과 독서실, 식당과 숙소까지 연계된 맞춤형 사교육 서비스가 등장해 사법시험 역시 고비용 구조로 바뀐 지 오래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통계를 봐도, 사법시험 출신들의 경제적·사회적 계층이 로스쿨 출신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점도 ‘사시 존치론자’들의 주장이 얼마나 과거의 시선에 머물러 있는지 객관적으로 반박해주고 있습니다. 게다가 고작 2.94%만이 합격하는 사시를 위해 65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고시 낭인들을 낳는 사회의 비효율적 비용 구조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지요. 2004년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가 2008년부터 로스쿨을 도입하기로 결정하면서 사시는 2013년 폐지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로스쿨 2009년 도입, 사시 2017년 폐지’로 사법시험 폐지 유예 기간이 한 번 늘어났지요. 그런데 이번에 유예 기간이 또 4년 늘어난 겁니다.

로스쿨은 앞서 말씀드린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많아 사법개혁 대상으로 논의됐던 사법시험을 존치하자는 말도 퇴행적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정작 물어야 할 건 이 질문 아닐까요.

“사법시험을 존치하자고 말하는 법조인들과 무책임하게 ‘4년 연장안’을 발표한 박근혜 정부는 로스쿨 도입 결정이 내려진 지 11년, 로스쿨이 도입된 지 6년 동안 소득이나 사회적 지위 등에서 다양한 계층의 자녀들이 법조인이 될 수 있도록 어떤 대안 혹은 보완적 제도를 고민해왔는지요?”

그런 근원적인 물음 없이 단편적인 ‘로스쿨 vs 사법시험’ 찬반 구도는 소모적인 편 가르기만 낳는 가짜 적대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기사는 <한겨레> 사회부 서영지, 이경미, 정환봉, 노현웅 기자의 기획 기사 ‘로스쿨 도입 7년’의 핵심 내용을 정리한 글입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사시 #사법고시 #로스쿨 #법 #사회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