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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를 위한 학교는 어디인가 | 직장맘의 초등교육 적응기

얼마 전 회사 후배를 만났더니 묻는다. "곧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회사에 계속 다니고 싶으면 사립초등학교를 보내는 게 낫다. 현재의 공립초는 너의 노동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회사 일과 병행하기 어려워. 학교를 믿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사립초등학교가 바쁜 직장인 엄마에게는 아직까지 최선이란다." 이렇게 말하는 나 자신도 부끄럽고 미안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내가 했던 고민을 몇 년이 지난 후에 똑같이 하고 있는 후배가 안쓰럽다. 나라가 아이를 키워준다더니, 그런 날은 도대체 언제 오는 것일까?

ⓒ연합뉴스

글 | 이정주

일하는 엄마의 위기, 초등 1학년

여성들이 직장을 그만두는 것을 가장 고민하는 때가 두 번 있다. 출산 휴가 후 회사에 복귀해야 할 때와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즈음이다. 나와 함께 입사했던 수많은 여성 동료들도 이 시기를 넘기지 못하고 회사를 떠났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다는 것은 태어나는 것만큼 중요한 의미가 있다. 사회인이 되는 것이며 무한 경쟁 체제에 들어가는 것을 뜻한다. 우리나라에서 아이의 교육은 엄마의 정보와 열정의 혼합물이기에 학년이 올라갈수록 할머니의 보육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중요한 시기를 아이 혼자 둘 수 없다고 판단한 많은 여성 동료들은 직장을 그만두고 자녀 교육 체제로 인생을 전환했다.

현실적으로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오후 한 시쯤 하교 하는 아이를 누가 돌볼 것이며, 남은 오후 시간을 어떻게 보내게 할지 막막한 것이 직장을 그만두게 하는 요인이다. 요즘은 학교마다 돌봄 교실이 있지만 그것도 1~2학년 때 이야기다. 학년이 올라가면 결국은 학원으로 돌리면서 시간을 때울 수밖에 없다.

ⓒ위키미디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사립초등학교

나 역시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가장 큰 문제는 등•하교 시간이었다. 초등학교 등교 시간은 9시인데 나는 출근하려면 집에서 7시 40분에는 나가야 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를 혼자 등교하라고 집에 두고 나올 수는 없었다. 그 때는 아침 돌봄교실도 활성화되지 않았고 양가에서 도와주실 분도 없었다. 등•하교 도우미 쓰는 것을 알아보았다. 월 백만 원에서 백이십만 원 정도는 주어야 구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사립초등학교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학교 설명회에 가보니 교과 공부는 물론 독서 활동, 한자, 영어(사립초의 영어교육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크므로 여기에서는 논외), 논술까지 전부 해준다고 했다. 아침에 집 앞으로 버스가 와서 아이를 데리고 간다니 더 고민할 것도 없었다. 공립초에 입학시키고 오후에 보내는 학원비와 도우미 비용을 합치면 사립초를 보내는 비용이 오히려 조금 싼 것 같았다. 사립초에 입학한 아이는 아침 7시 30분에 학교에 가서 오후 5시 10분에 집에 왔다. 아이에게 미안할 정도로 긴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게 했지만 바쁜 엄마에게는 그게 최선이었다.

예외 없이 정확한 학교가 엄마를 편하게 한다

우리 아이가 다닌 학교는 일하는 엄마가 많은 곳이었다. 사립초등학교를 보내보니 여러 가지 장점이 있었다. 일단 '예외'가 없었다. 늘 정해진 시간에 시작하고, 끝났다. 전년도에 준 학교 달력에 쓰여있는 날짜에 체육대회와 예술제를 했다. 공개수업 날짜도 약속한 일정을 어긴 적이 없다. 모든 것이 정해져 있으니 회사 일을 조정해 미리 휴가를 내고 참석할 수 있었다. 준비물도 급작스러운 것이 없어 허둥댈 일이 없었다. 단기방학은 아예 없고 학교장 재량 휴일도 개교기념일과 명절과 연이은 하루 정도였다. 나중에 공립초등학교로 전학을 해보니 단기방학이 있어 '국내여행을 권장한다'고 했다. 직장에 다니는 부모가 쉬지 않는 단기방학은 아이를 누군가에게 부탁을 해야 하는 걱정거리를 만들 뿐이었다.

학교에 방과후 수업이 활성화 되어 있는 점도 장점이었다. 아이는 바둑, 음악, 미술, 축구 등을 모두 방과후 수업으로 해결했다. 과목당 한 달에 4~5만 원 꼴이어서 가격도 저렴했다. 학교 안에서 수업이 이루어지니 안심이 되었다. 학교에서는 방과후 수업을 한 과목 이상 의무적으로 수강하도록 했다. 학부모는 사설 학원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수업을 받을 수 있어 좋고, 방과후 선생님은 일정한 수익을 보장하니 좋았다. 학부모 중에는 학교 방과후 수업이 만족스럽지 않아 사설 학원에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아이를 직접 학원에 데리고 갈 수 없는 처지의 직장인 엄마는 학교 방과후 수업에서 아이의 예체능을 해결하는 것이 고마워 언제나 들을 수 있을 만큼 꽉 채워 신청을 했다. 아이는 따로 보습학원을 다니지 않았다. 영어가 다른 애들에 비해 많이 뒤쳐져서 동네 상가에 있는 영어 학습센터에 다닌 것이 사교육의 전부였다.

물론 사립초가 모든 것이 좋다고 할 수는 없다. 영어교육 문제, 지나친 경쟁 체제 등 비난할 것도 많다. 아이들의 특권의식, 사립재단의 비합리성 등 파고 들면 무수히 많은 문제들이 드러날 것이다. 하지만 아이를 사립초에 보내니 학교가 엄마를 편하게 해주었다. 교통지도, 급식, 청소 같은 것으로 엄마를 부르는 일이 없었다. 어떤 엄마는 청소하러 가고, 어떤 엄마는 가지 못해 미안해 하는 갈등이 생기지 않았다.

공교육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데....

급작스럽게 이사를 하게 되는 바람에 아이는 5학년 때 전학을 했다. 공립초등학교에 보내니 아쉬운 부분들이 있었다. 우선 고학년 아이들에게 숙제를 내주지 않았다. 대다수가 학원에 다니느라 학교 숙제가 부담되기 때문이다.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학교 수업을 해서 진도를 나가는 것에 집중했다. 학교보다 학원이 중심에 있는 것이 씁쓸했다.

예전 학교에서도 학원에 다니는 애들이 많았다. 학원과 상관없이 담임선생님은 아이들의 이해가 부족하면 별도로 문제를 내서 풀어오도록 했다. 사회, 과학에서 꼭 알아야 할 내용을 요약해 주기도 했다. 학교에서 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싶어 아이를 따로 학원을 보내지 않았다. 새로운 학교에서는 학교 수업만으로는 자꾸 뭔가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학교를 믿지 말고 학원에 보내야만 할 것만 같은 불안함 속에 있다.

방과후 수업도 사정은 비슷했다. 여러 가지 수업이 개설되어 있어 그 중 몇 개를 신청했다. 선생님의 수준도 높고 과목도 다양한데 신청자가 별로 없었다. 고학년이 되면 학원 가느라 방과후 수업을 할 시간이 없다고 한다. 학교 방과후 수업을 좀 더 활성화시키면 여러모로 좋을 텐데, 안타까웠다.

공교육이 지금보다 좋아지려면

똑 같은 시간 수업을 받는데, 왜 이렇게 다른 것일까? 사립초와 공립초의 가장 큰 차이는 교사의 열정이 아닐까 싶다. 아이가 사립초에서 다섯 명의 선생님을 만나는 동안,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하나같이 에너지가 넘치고 아이들에 대한 정성이 가득했다. 고학년이 되어도 여전히 글씨체, 맞춤법을 잡아주고, 일기장, 숙제검사, 독서공책, 논술공책에 정성스러운 답변을 써주셨다. 단순한 비교는 어렵지만 학생들에 대한 열정은 사립초 교사들이 훨씬 뜨거웠던 것이 분명하다.

공립초에도 훌륭하고 열정 있는 교사들이 무척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그 편차가 심해서 좋은 선생님을 만나면 일 년을 뜨겁게 보내고, 그렇지 않은 선생님을 만나면 일 년을 나른하게 보낸다. 오로지 선생님 개인에 의해 학습의 품질이 결정된다. 사립초는 교사가 누구든 학교 시스템에 의해 소화해야 할 학습의 양과 질이 있다. 그러니 학교 공부만으로 충분하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사립초를 두고 '교육 환경이 공립초와 다르다' '돈을 내니까 교사가 서비스를 해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외면만 할 것이 아니다. 왜 학업 성취도가 높은지, 학부모들이 돈을 내면서까지 아이를 보내고 싶어하는지를 배울 필요가 있다. 초등학교까지는 '학원에 다니지 않아도 충분히 공부하고 있다'는 안심을 주면 좋을 텐데, 아직까지 공립초등학교는 그런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 공교육이 활성화 되려면 선생님들은 지금보다 조금은 더 뜨거워져야 할 것 같다. 학교는 교사 개인의 역량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시스템에 의해 학생과 학부모를 만족시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이 '학원 없이도 완전한 학교'가 되는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싶다.

얼마 전 회사 후배를 만났더니 묻는다.

"곧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회사에 계속 다니고 싶으면 사립초등학교를 보내는 게 낫다. 현재의 공립초는 너의 노동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회사 일과 병행하기 어려워. 학교를 믿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사립초등학교가 바쁜 직장인 엄마에게는 아직까지 최선이란다."

이렇게 말하는 나 자신도 부끄럽고 미안해 지는 것은 사실이다. 내가 했던 고민을 몇 년이 지난 후에 똑같이 하고 있는 후배가 안쓰럽다. 나라가 아이를 키워준다더니, 그런 날은 도대체 언제 오는 것일까?

* 이 글은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홈페이지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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