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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재다능한 재주꾼의 얼굴

교통사고로 손에 붕대를 감은 아이가 있었습니다. 아이는 자신의 모습 중 붕대를 둥글게 만 손을 유독 강조해서 그렸지요. 성폭력을 당한 이의 경우 성기 주변을 무의식적으로 강조해서 그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특정 신체 부위를 강조해서 그리는 것으로 자신의 심리 상태를 무의식적으로 드러냅니다. 르브룅이 자신의 손을 가장 강조한 것은 손에 대한 자신감 때문입니다. 그녀는 손에 대한 칭찬, 즉 재능에 대한 칭찬을 어릴 때부터 들었을 것이고 자랑스럽게 여겼을 것입니다.

  • 김선현
  • 입력 2015.12.03 09:21
  • 수정 2016.12.03 14:12

심리학 교수가 내게 가정생활이 어떠냐고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질문의 이유가 궁금해 물어보았지요. 그러자 가정생활이 원만하지 못한 여자들이 공부를 하는 경우가 아직도 많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공부를 하느라 가정생활이 원만하지 못한 것인지, 가정생활이 원만하지 못해 공부를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자가 어느 정도 사회적인 위치에 올라가기 위해 넘어야 할 난관 중에 가정이라는 것이 가장 높고 험난하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여성이 원만한 가정을 꾸려가는 동시에 일에서 성취감, 만족감, 기쁨을 얻기 위해서는 투쟁에 가까운 자기와의 싸움을 거쳐야 하지요. 저는 일과 가정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르브룅은 여성 화가가 없던 당시에 어떤 남성 화가보다도 성공했습니다. 타고난 재능과 적응력 그리고 특유의 친화력은 르브룅이 성공할 여건이 되어주었지요. 남모르는 아픔을 견뎌낸 그녀에게는 프랑스 혁명조차도 남편의 그늘에서 벗어나 화가로서 더욱 성공할 기회가 되어주었습니다. 위기조차 기회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인생의 기회는 환경도 변화시킵니다. 물론 준비된 자에 국한된 이야기지만요.

궁정 화가인 르브룅의 작품은 우아함과 기품을 발산합니다. 또한 여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아름다움이 느껴집니다. 그녀는 초상화를 그려주면서 내적으로 힘들었던 모델들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했기 때문에 더욱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찾았고, 남성 위주의 사회 분위기에서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아래 자화상(1번 그림)에는 한 손 가득 붓과 팔레트를 들고 작업 중인 그녀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당시 35세였던 그녀는 자신을 순수한 소녀로 이상화해서 그려냈지요. 검은색 원피스에 하얀 소매와 가녀린 목선, 가지런하고 우아한 머리 장식, 빨간 허리 매듭은 검정, 하양, 빨강의 심플하고 선명한 색의 조합으로 단정하고 깔끔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이런 색의 사용은 얼굴을 더욱 강조하는 효과가 있는데, 원피스의 검정 바탕 위에 하얀 칼라와 머리장식이 색의 대비를 이루어 조명 효과와 함께 얼굴로 시선을 잡아끕니다. 이런 효과로 얼굴은 특별히 웃는 표정을 짓지 않음에도 환하게 미소를 짓는 것처럼 보이지요. 이렇게 작품에서 가장 주목받도록 연출된 얼굴도 '소녀'처럼 표현함으로써 르브룅은 자신의 젊은 시절 모습을 '아름답고 순수하게' 그려냈습니다.

그림 1. 자화상 Self-portrait 1790

이 작품에서 두 번째로 강조되고 있는 것은 르브룅의 손입니다. 어두운 바탕에 새하얗게 표현된 그녀의 손 역시 명암 대비로 강조되고 있네요. 그림을 그리는 손이 강조된 것은 자신이 지닌 천부적인 재능에 대한 애정의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교통사고로 손에 붕대를 감은 아이가 있었습니다. 아이는 자신의 모습 중 붕대를 둥글게 만 손을 유독 강조해서 그렸지요. 성폭력을 당한 이의 경우 성기 주변을 무의식적으로 강조해서 그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특정 신체 부위를 강조해서 그리는 것으로 자신의 심리 상태를 무의식적으로 드러냅니다.

르브룅이 자신의 손을 가장 강조한 것은 손에 대한 자신감 때문입니다. 그녀는 손에 대한 칭찬, 즉 재능에 대한 칭찬을 어릴 때부터 들었을 것이고 자랑스럽게 여겼을 것입니다.

그럼 그녀의 어린 시절을 잠시 살펴봅시다. 그녀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자신이 그렇게 아름답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녀가 이렇게 회상하는 이유는 어린 시절의 삶에서 기인합니다. 그녀는 열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르브룅은 자신을 아껴주고 지지해주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주 힘들어했다고 합니다) 재혼한 엄격한 어머니 밑에서 기댈 곳 없이 자랐습니다. 결혼도 자신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어머니를 기쁘게 하기 위해 했고 남편도 좋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르브룅의 수입을 탐내던 남편은 그녀가 벌어들인 돈을 전부 자신의 소유로 등록하는 욕심을 보였고 바람기와 도박벽도 있었다고 하지요. 이렇게 가족에게 따뜻한 대접을 받지 못하면서 르브룅의 자존감은 떨어지고 우울감은 깊어졌을 것입니다.

그런 르브룅에게 기쁨이고 희망이었던 것은 2가지입니다. 바로 자신의 미술적 재능과 딸입니다. 그중 미술적 재능은 마리 앙투아네트를 그리고 있는 오른손을 통해 상징되고 있습니다. 미술적 재능 그리고 그 재능을 세상에 드러내는 수단인 '손' 덕분에 르브룅은 궁정 문화에 편입될 수 있었고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지요. 따라서 이 자화상에서 얼굴뿐 아니라 손도 강조된 것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르브룅의 정체성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주목할 만한 것은 그녀가 입을 벌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입을 살짝 벌리고 있는 모습은 소녀답고 순수한 이미지를 보여주네요. 덕분에 그림을 그리는 르브룅의 모습이 행복해 보입니다. 미술적 재능으로 사랑받고 마음껏 활동할 수 있었고 억압적인 삶에서도 탈출할 수 있었던 기쁨이 알게 모르게 표현되어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르브룅에게 상처로 남은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의 경험들은 그녀의 사회적 성공과 맞물려 내적인 괴리감을 느끼게 했을 것입니다.

이런 감정은 그녀의 초상화 안에서 왜곡 방어기제로 나타납니다. 여러 방어기제 중 왜곡은 내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외부 현실을 재형성하는 것으로, 르브룅은 사회적인 성공을 거두었어도 내적인 욕구를 충족시키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녀는 충족되지 못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현실의 자신을 조금 왜곡해서 좀 더 매력적이고 당당하고 젊은 아가씨로 이상화해서 그렸을 것입니다.

그림 2. 딸 쥘리와 함께 있는 자화상 Self-portrait with Her Daughter, Julie 1787

한편 다음 그림(2번 그림)에는 따스한 친밀성, 에로틱한 매력, 모성애가 진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다소 풍만하고 부드럽게 그려진 르브룅의 모습이 인상적이네요. 이 작품에서 르브룅의 어깨가 드러난 것으로 보아 그녀가 방금 딸에게 젖을 먹인 것은 아닌가 하는 상상을 불러일으킵니다. 딸이 젖을 먹을 나이가 아닌데도 말이죠. 거기에 더해 딸과 따뜻하게 포옹하고 있는 모습은 작품 전체에 흐르는 부드러운 색채감과 함께 진한 모성애를 느끼게 합니다. 이 작품에서 르브룅의 빨간 머리띠와 허리 매듭은 첫 번째 작품의 하얀 칼라와 머리 장식처럼 그사이 공간을 강조함으로써 두 모녀의 얼굴로 시선을 잡아둡니다.

두 모녀의 얼굴에 함께 동그라미를 쳐보면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첫 번째 작품과 달리 두 모녀의 얼굴이 함께 강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르브룅의 눈이 어딘가 슬퍼 보이네요. 슬픔에 잠겨서도 사랑하는 딸을 꼭 안고 있는 모습은 앞서 기술한 르브룅의 삶에 비추어볼 때 내적으로 힘들었던 자신의 삶에서 딸을 통해 위안을 찾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림 3. 비제 르브룅과 그녀의 딸 잔 뤼시 Madame Vigee Lebrun and Her Daughter, Jeanne Lucie 1789

다음 그림(3번 그림)은 <비제 르브룅과 그녀의 딸 잔 뤼시>입니다. 왠지 성스럽고 '우아한' 모성애를 느낄 수 있습니다. 우선 입고 있는 옷이 더욱 부드럽고 매끄러우며 고급스러움을 알 수 있고 소파도 고급스러운 색감과 무늬를보여줍니다.

화려한 헤어스타일, 하얀 머리띠와 옷으로 강조되는 세로 라인, 딸과 맞추어 살짝 옆으로 기울인 고개, 미소 지으며 살짝 닫은 입술, 그로 인해 우아해 보이는 얼굴, 아이를 무릎에 올려놓고 꼭 안음으로써 두 번째 작품

과는 다르게 서로 안기는 것이 아니라 아이만 안겨 있다는 점 등이 마치 성모 마리아와 같은 성스럽고 우아한 분위기를 형성하면서 르브룅이 성장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녀가 내면의 결핍에서 벗어나 어엿한 어머니로 자랐음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여성'에서 '어머니'가 된 것입니다. 두 번째 그림에서 보이던 살짝 슬픈 표정을 세 번째 그림에서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습니다.

* 이 글은 필자의 저서 <그림과 나>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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