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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기후총회와 녹색성장 그리고 창조경제

이미 제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2014~2035)과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15~2029)을 통해 한국의 에너지 경로가 재확인되었다. 핵발전과 석탄발전 중심의 에너지시스템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재생가능에너지 비중이 OECD 꼴찌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국가목표는 대단히 낮다. 2035년까지 총 에너지소비 중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11%까지 확대하겠다고 했으니, 나머지 89%는 핵과 화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시나리오를 짠 셈이다.

글 | 이정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부소장

파리에서 제21차 유엔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21)가 열리고 있다. 끔찍한 테러가 발생해 어수선한 분위기다. 총회장 안팎에서 기후정의를 요구하는 운동도 비상사태의 여파로 위축된 상황이다. 그러나 기후변화 역시 갈등과 분쟁을 낳고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테러라는 인식이 중요하다. 파리총회가 인류와 지구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평가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총회는 2020년 이후 신기후체제의 주요 원칙과 방향을 타결하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교토의정서를 탄생시킨 1997년 교토총회와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교토체제(2008~2012)에서 한국은 개발도상국의 지위를 인정받아 의무감축국가에서 제외되었다. 교토체제가 끝난 2013년부터는 의무감축국가로의 편입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포스트 교토체제 논의가 실패하면서 교토체제는 2차 공약기간(20013~2020)으로 연장되면서 한국은 자동적으로 의무감축을 피할 수 있었다.

2008년에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국정과제로 내세웠다. 국제사회에서도 한국이 기후변화 대응의 얼리 무버(early mover)가 될 것이라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고탄소 회색성장'이니 녹색분칠(greenwash)이니 비판을 받다 임기를 마쳤다. 그동안 온실가스 배출은 늘어만 갔다.

2013년에 집권한 박근혜 정부는 '녹색'을 가급적 멀리했다. 전 정부와의 거리두기인 셈인데, 대신 '창조'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물론 '창조경제'에서도 기후변화와 에너지 의제가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다. 에너지저장장치와 ICT 융합 등 이명박 정부에서도 강조되었던 것들이 '에너지 신산업'으로 재탄생했다. 파리총회 일주일 전, 박근혜 대통령은 국내에서 '2030 에너지 신산업 확산전략'을 발표하고 총회 개막식 기조연설에서 이를 소개했다.

에너지 산업을 통한 성장전략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지속가능한발전목표(SDGs)에서도 녹색경제로의 전환은 중요한 의제이기도 하다. 정작 문제는 "신기후체제에 대한 선제적인 대응"이라는 확산전략의 수식어에 있다. 이 전략은 2030년에 국내외에서 100조원 시장과 5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제목만 바뀌었을 뿐이지 수사법과 목표 설정방식은 물론 경제성장 중심 이데올로기 모두가 녹색성장을 빼다 닮았다. 탈성장까지는 바랄 수 없겠지만 지속가능한 저성장조차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낡은 경제관을 보여줬을 뿐이다.

이미 제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2014~2035)과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15~2029)을 통해 한국의 에너지 경로가 재확인되었다. 핵발전과 석탄발전 중심의 에너지시스템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재생가능에너지 비중이 OECD 꼴찌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국가목표는 대단히 낮다. 2035년까지 총 에너지소비 중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11%까지 확대하겠다고 했으니, 나머지 89%는 핵과 화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시나리오를 짠 셈이다.

에너지원의 문제만이 아니다. 에너지와 전력 수요를 지나치게 높게 예측하다보니 그만큼 설비용량이 늘어나 대형 발전소를 계속 건설해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과잉수요 예측과잉설비의 모순이 지적되고 있음에도, 에너지 권력을 장악한 관료와 전문가들은 에너지와 전력 소비를 조장해 눈앞의 위기를 모면하려 한다.

심지어 온실가스의 주범인 석탄발전을 단계적으로 축소할 의지도 전혀 없다. 신기후체제를 앞두고 각국의 미래 에너지 믹스의 변화가 예상된다. 대체로 두 가지 유형이 있다. 독일과 유럽 국가들은 재생가능에너지를 주 에너지원으로 설정하고 있고, 영국과 동유럽과 개발도상국들은 석탄을 축소하는 대신 재생가능에너지를 증가시키고 동시에 핵발전을 유지하거나 도입하려 한다. 한국은 독특하게도 계속해서 핵과 석탄, 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계획을 갖고 있다.

이런 탓에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 제출한 자발적 감축기여(INDC)에 대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부적합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정부는 2030년까지 BAU 대비 37% 감축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BAU는 현추세가 유지되는 경우 미래 배출 전망치이기 때문에, 선진국과 주요 개도국이 취하는 절대량 방식에 비해 목표가 불확실하며 낮은 수준에서 결정된다는 문제가 있다. 한국은 2005년 이후 2012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이 22%나 증가하였고, 에너지 분야 배출량 기준으로 세계 7위이며 누적 배출 순위는 16위이다. 경제 대국임은 말할 것도 없다.

배출 전망치 자체가 높게 설정되었기 때문에 37% 감축해도 2005년보다 6.3%가 증가하게 된다. 이마저도 11.3%는 아직 실체가 없는 국제탄소시장(IMM)을 통해 감축하겠다는 무책임함을 보였다. 산업부문의 감축량을 전망치의 12%를 넘지 않도록 제한하는 가이드라인도 마련했다. 그렇다면 가정 등 나머지 부문의 감축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온도 2도 상승 제한이라는 기후 안정화 목표와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기후행동추적자(Carbon Action Tracker)에 의하면, 다른 국가들이 한국의 감축목표를 따른다면 3~4도 이상의 온난화를 초래할 것으로 추정된다. 유엔에 제출된 INDC를 취합한 결과인 2.7도 상승에 비해 비관적인 시나리오임에 분명하다.

물론 한국만 비판을 받아서는 곤란하다. 많은 나라들의 INDC가 부적합하거나 만족스럽지 못한 수준이다. 미국을 시작으로 캐나다, 러시아, 일본 뉴질랜드가 교토체제를 약화시켰다. 유엔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온실레짐도 취약해졌다. 2013년부터 시작했어야 할 신기후체제가 늦춰진 퇴행에 대해서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2013년부터 차례로 등장한 한국의 두 정부 역시 무책임하긴 마찬가지다.

5년 뒤에 무엇을 할지도 중요하지만, 남은 5년 동안 어떻게 할지가 더 중요하다. 그렇다면 파리총회는 이미 '절반의 실패'가 아닐까.

박근혜 대통령이 11월 30일 프랑스 파리 르부르제 공항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1)에서 기조연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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