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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교류사업의 실제 | 겨레말큰사전

정치체제의 차이보다, 가장 기본적인 말인데 서로 다른 의미로 쓰는 말들이 있다. 청결이라는 말은 남한에서 맑고 깨끗하다는 말이지만 북한에서는 청소의 의미로 쓴다. "청결 했어?" 이렇게 물어보면 청소했냐고 묻는 것이다. 조선말 대사전을 보면 청결의 같은 말로 청소를 쓰고 있다. 오징어 낙지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오징어가 북에서는 낙지다. 50년의 차이로 인해 서로 지칭하는 것이 다르다.

  • NK News
  • 입력 2015.12.03 10:18
  • 수정 2016.12.03 14:12

7박8일 마라톤 회의, 언어관 차이 두고 논쟁하다 '딱친구' 되기도

근 7년 간 만난 남북의 국어학자는 이제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 서로를 부르고, 가끔씩은 장난 삼아 발길질을 주고 받는 '딱친구'가 되었다. 회의를 마치고는 기차놀이를 한다. 일흔이 넘은 노학자들도 빠지지 않았다. 배경음악은 '다시 만나요' 였다. 헤어질 때는 얼굴을 보지 못하고 손만 흔들기도 한다. 다음에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05년 결성된 겨레말큰사전공동편찬위원회는 북한을 방문한 문익환 목사의 제안에서 시작되었다. 2007년 '겨레말큰사전편찬사업회법'이 제정되어 안정적인 기반이 마련되었다. 최근에는 민족동질성 회복, 남북 문화, 스포츠 교류의 필요성이 강조되며 양측 간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서울 공덕동 겨레말큰사전사업회에서 김학묵 사무처장과 김완서 책임연구원을 만났다.

NK News: 올해 5월 1일 통일부가 민족동질성 회복을 위해 민간교류를 활성화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8.25 합의에서도 민간교류가 언급되었다. 최근 들어 교류사업 진행에 변화가 생겼나?

김학묵(이하 학):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우리 사업뿐 아니라 다른 분야의 민간교류도 양적으로 확대되었다. 우리 사업도 8년 만에 공동회의를 금강산에서 열었다. 보통 중국이나 평양에서 많이 개최한다. 박왕자씨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이후, 금강산 지역에서 공동 사업이 열린 것은 거의 처음 있는 일이다. 다만 이런 분위기가 안정적으로 확대되려면 당국 간 양국 현안 문제를 풀기 위한 후속조치가 필요할 것이다.

지난 9월 금강산에서 열린 24차 공동편찬회의 | 사진: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NK News: 지난 10월 19일 24차 회의가 열렸다. 이번 회의에서는 어떤 진전이 있었나?

김완서 (이하 완): 매번 회의 때 2만5천 개 내외로 어떤 단어를 올릴지, 올리지 않을지를 결정하고, 올리는 단어에 어떤 뜻풀이를 달지 결정한다. 이번 회의에서는 약 2만4천100 단어를 검토했고, 1만8천466 단어를 올리기로 결정했다.

(5.24 조치와 함께) 회의가 중단된 이후 가져간 단어 중 올리는 말의 비율이 많이 떨어졌다. 회의가 중단되기 전에는 90퍼센트 이상이 올리기로 결정되었다. 2009년 회의가 중단되기 전 마지막 만남에서 기존 어휘 21만개와 새 어휘 10만개를 올리기로 결정했는데, (서로 어떤 말을 올릴지) 합의하지 못한 상태로 집필을 하다 보니 삭제 비율이 높아진 것이다.

NK News: 보통 만나면 회의 일정은 어떻게 되나?

학: 밥 먹고 자는 시간 빼고 다 회의다. 오전 9시 반에서 12시, 오후 2시 반부터 6시까지 회의를 하고, 중간에 반나절 정도를 쉬기도 한다. 이번에 금강산 회의는 총 7박 8일 스케줄이었다. 오전, 오후에 한 번씩 쉰 것을 빼고는 계속 회의를 진행했다.

완: 4일에서 5일째 되는 날이 가장 힘들다. 진이 빠지고 집에 가고 싶어진다. 5일이 지나가면 2일이면 집에 가는구나 싶어 조금 안도감이 든다. 5박 6일 일정 중에서 6조로 구성된 집필분과는 각각 3천 개의 단어 중 추린 것을 검토한다. 새 어휘 분과 2조 역시 각각 3천 개의 표현을 다룬다.

정해진 시간 안에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고, 지치기도 한다. 이번에 조금 덜 쉬더라도 준비해 간 건 끝내고 와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 다른 조보다 뒤처지면 안되기 때문에 다른 조 눈치가 보이기도 한다. 다른 조랑 진도가 맞아야 쉬는 시간을 맞출 수 있으니까.

학: 옆에서 지켜보면 압박감이 느껴진다. 2019년 4월에 사전 편찬을 완성하기로 기한을 정해놨기 때문에 이번에 미뤄지면 다음 번 회의가 더 힘들어진다.

NK News: 회의 준비 과정은?

완: 만나서 합의하기 전에 서류를 주고받으며 다음 회의에서 논의할 내용을 뽑아간다. 이렇게 검토를 거친 표현 약 2만5천 개를 합의하는 거다. 우리가 작업한 원고를 북한에 보내면 북쪽 전문가들이 빨간펜으로 삭제, 추가 표시를 해서 보낸다. 그럼 우리가 수용할 부분은 수용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분만 가지고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 거다.

북쪽도 마찬가지다. 북쪽이 우리에게 원고를 보내면 우리도 빨간칠을 해서 다시 보낸다. 그럼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못 받아들이는 걸 가지고 온다. 그래도 논의 범위 중 반 이상을 만나서 검토해야 한다. 다음 차에 회의할 표현들을 이전 회의 때 미리 주고받는 식으로 진행이 된다.

NK News: 그렇다면, 보통 어떤 단어들을 가지고 논쟁을 하나? 이념의 차이에서 나타나는 차이가 있다면?

완: 북한에서 동무는 혁명 동지를 이르는 말이지만 남한에서는 어릴 적 친하게 지내는 친구를 일컫는다. 정치이념, 체제 차이가 반영된 차이다. 겨레말큰사전에서는 이를 순화해서, 어떠한 목적을 같이 행하는 동무, 이런 식으로 풀이를 한다. 혁명이라는 의미를 아우를 수 있는 의미를 채택하는 것이다.

정치체제의 차이보다, 가장 기본적인 말인데 서로 다른 의미로 쓰는 말들이 있다. 청결이라는 말은 남한에서 맑고 깨끗하다는 말이지만 북한에서는 청소의 의미로 쓴다. "청결 했어?" 이렇게 물어보면 청소했냐고 묻는 것이다. 조선말 대사전을 보면 청결의 같은 말로 청소를 쓰고 있다. 오징어 낙지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오징어가 북에서는 낙지다. 50년의 차이로 인해 서로 지칭하는 것이 다르다. 예컨대, 북한에서는 나비와 나방을 통칭해 나비라는 단어 하나만 사용한다.

김완서 책임연구위원 | 사진: 최하영

NK News: 합의 과정에서 갈등이 있다면?

완: 갈등이 있다. 언어관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북에서 언어는 사상교육의 수단, 혁명 건설의 힘있는 무기로 본다. 우리나라에서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이다. 예컨대, 우리가 쓰는 '도발적'이라는 말은 사전적으로 '색정을 자극하는'이라는 의미이다. 북쪽에서는 이 풀이가 도덕적이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사상교양의 수단으로 쓰일 수 없는 풀이이다. 이 풀이를 싣지 말자고 주장한다. "인민들의 교육에 좋지 못한 풀이"이고 "미풍양속을 저해하고 인민들의 교양에 좋지 않다"는 이유이다. 우리 쪽에서는 흔히 쓰는 말이라고 옥신각신하게 된다. 10분 정도 옥신각신하다가, 잠깐 쉬었다가 다시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반영이 되었다.

용례에서 소설의 제목으로 시비를 거는 경우가 있다. 김용성의 '도둑일기'라는 소설이 있다. 그럼 북쪽에서는 "도둑놈이 무슨 일기를 쓰냐"며 다른 소설에서 용례를 찾자고 제안했다. 이 역시 미풍양속을 해치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사전의 기능이 언어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사상 교양의 수단인 것이다. 꼭 이 소설에서 용례를 찾아야 하는 게 아니면 우리도 다른 곳에서 찾으려고 노력한다.

NK News: 서로 간에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야기는 하지 않나? 실수한 적이 있다면?

완: 우리 측에서 실수로 문서에 북한이라는 말을 쓴 적이 있다. 남측, 북측이 원칙적으로 쓰는 말이다. 한 번 북한이라는 말이 실수로 문서에 들어갔다.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고 쉬는 시간에 불러서 주의를 주었다. 정중히 사과를 했다.

이후 모든 문서에서 금기어들은 'ctrl F'로 걸러낸다. 문제가 될 만한 단어가 한 20개 된다. 검색을 다 하고 뺀다. 한 번은 용례에 "북선의 군대가 와서"라는 문장이 들어갔다. 우리는 북선이 그냥 외국 군대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이게 북조선의 약자였다. 우리가 몰랐던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이것도 금기어로 지정하고 회의 전에 다 찾아낸다. 서로에게 민감한 말들은 빼는 거다.

NK News: 남북 간 합의되지 않은 표기법이 있을 거다. 사전은 어느 어법에 따라서 만들어지나?

완: 현재까지는 겨레말형태표기위원회에서 합의한 표기법에 따라 쓰고 있다. 합의되지 못한 부분은 집필을 남북이 자모를 나눠서 편찬 중이다. 기역, 미음, 이응, 지읒, 치읓은 남쪽이 집필을 하고 나머지는 북쪽의 규칙에 따라 집필을 한다. 예를 들어, 의존명사의 경우 북쪽 집필에서는 붙여서 쓰고 우리는 띄어 쓴다. 최종적으로는 이런 규칙들이 다 합의될 것이다.

NK News: 일주일 동안 숙식을 같이 하는데, 기억나는 에피소드나 추억이 있나?

완: 북한에 '딱친구'라는 말이 있다. 절친, 단짝친구 이런 뜻이다. 제가 4조를 맡고 있는데 같은 조의 북쪽 선생님과 너무 죽이 잘 맞는 거다. 처음에는 존댓말을 쓰다가 반말, 존댓말을 섞어서 쓰고. 북쪽 사람들이 그 친구와 나를 딱친구라고 부르더라. 그 사람과 오래 일하다 보니 친밀감이 형성 되었다. 장난으로 발길질을 하기도 하고. 2009년도에 처음 만나고, 4년 7개월 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작년에 다시 만났을 때는 와락 껴안았다.

회의를 마치고 헤어질 때, 그 친구가 고개를 못 든다. 다음에 만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으니까. 고개를 푹 숙이고 손만 흔들고.

NK News: 회의가 중단되었을 때 편찬실 분위기는 어땠나?

완: 2010년부터 2014년 7월까지. 약 4년 7개월이었다. 외부의 부정적인 시선이 있었다. 회의도 안 열리는데 너희 뭐 하냐, 놀고 있는 거 아니냐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는 회의가 언제 열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원고 교열을 보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편찬실에서는 나름대로 우리가 이 기회에 원고 교열 보느라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자는 분위기가 있었다.

예를 들면 계열 어휘 풀이요강인데, 도개걸윳모,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의 풀이 형식이 같아야 한다. 그 결과 약 1천200쪽 되는 계열어휘 풀이요강을 만들었다. 유형별 어휘 구축도 해보자 해서 '가다'와 '오다' 같은 표현들을 일관성 있게 풀이하는 작업을 했다. 그 5년 동안 그동안 못한 일들을 해냈다. 그 때 만든 자료들을 지금 요긴히 쓰고 있다. 아주 침울하지는 않았고, 그 기간 동안 미뤄왔던 일들, 다른 사전에서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해냈다. 어떤 풀이자가 풀이를 해도 이 형식대로 풀이가 될 수 있도록.

2009년, 5년 동안 만남이 끊기기 전 20차 회의는 중국 선양에서 열렸다. 회의가 마무리 되니 연말이었다. 회의를 마치고 기분이 좋아서 서먹서먹함이 사라지자, 흘러나온 노래가 '다시 만나요'였다.

남쪽의 조재수 선생님과 북쪽의 문영호 위원장님을 포함해서 사람들이 전부 다 일어나 어깨에 손을 얹고 기차놀이를 했다. 남북이 섞이고, 일흔이 된 편찬위원 선생님들도 함께 기차놀이를 했다.

기차놀이를 하다가 "반대로" 외치면 반대로 돌고. 아쉬운 마음을 접고 만찬을 끝냈다. 선양에서 헤어지며 "내년에 보자, 새해 복 많이 받아라"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5년 동안 만나지 못했다. 이 사람들이 건강히 잘 있을까? 연세 드신 분들은 살아 계실까? 걱정이 많이 되었다. 2014년도 다시 만났을 때 너무 반가웠다. 건강이 염려되었던 분들을 다시 봬서 너무 반가웠고.

선양에서 두 번째 회의를 했을 때 다시 한 번 기차놀이를 했다. 남에서는 제가 노래를 부르고 북한의 여자 선생님이 손잡고 노래를 불렀다. 내년에 만나자고 약속했는데 4년 7개월이 걸렸다. 그런 기억이, 기쁘면서도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김학묵 사무처장 | 사진: 최하영

NK News: 편찬위원회가 가지고 있는 남북교류에 관한 철학이 있다면?

학: 문화 동질성, 언어 동질성이 상당히 중요하다. 흩어진 겨레의 문화, 말도 하나의 문화유산이다. 겨레 문화를 집대성하는 일이 중요하다. 남북이 공동으로 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남북관계가 어렵지만 정치와 문화는 분리해서 일을 추진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남북교류를 하다 보면 우리만 추진하는 것도 아니고, 생각도 다를 수 있다. 우리는 유리한 면이 있다. 국민적인 공감대를 가지고 사업을 추진할 수 있으니까. 작은 차이를 이해하려는 마음, 작은 통일에서 큰 통일로 나아가야 한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언어의 차이를 알면 생각의 차이를 좁힐 수 있다. 단계적으로 통일을 한다면 언어 통일이 있어야 할 것이다. 통일의 주춧돌을 놓는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업이 발전하면 다른 사업이 이루어지고, 그러다 보면 통일이 오지 않을까? 말은 항상 쓰지 않나?

이 글을 쓴 최하영은 NK News 서울특파원입니다. 메인 사진의 출처는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입니다. 영문본은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NK News 한국어판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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