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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으로 보는 노동개편 ①파견법

  • 김병철
  • 입력 2015.11.27 12:35
  • 수정 2015.11.30 08:37

최규석 작가의 웹툰 <송곳>에서 부진노동상담소 구고신 소장은 노동조합을 조직하겠다는 대형마트 ‘푸르미’의 이수인 과장을 한 집회 현장으로 데려간다. 제조업체 ‘삼진’의 정문 앞, 삼진의 파견노동자들이 부당해고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이다 회사 쪽 용역 깡패들에게 막힌 현장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함께 일했던 삼진 쪽 관리자는 정문 안에 서서 정문 밖 사람들에게 “아니 왜 남의 회사에 와서 난리를 쳐요? 난리를!”이라고 소리친다. 노동자들은 “반장님이 우리 일 시켰잖아요! 여기 월급명세서에도 삼진 이름이 적혀 있어요”라고 항의한다.

우리 노동시장에 만연한 파견노동자의 현실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파견근로는 노동자를 고용한 사장(고용주=파견업체)과 일을 시키는 사장(사용자)이 다르다. 사용자는 파견업체 소속 노동자를 받아 일을 시킬 수 있다. 이른바 ‘간접고용’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외환위기를 겪은 직후인 1998년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이 만들어졌다. 이 법은 행정·운전·청소 등 32개 업종에만 파견을 허용하고 있다. 파견근로는 정규직에 비해 고용이 불안정하고 처우가 열악한 경우가 많다.

제조업 현장에서 파견노동자를 쓰는 일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위에서 등장한 삼진은 제조업체다. 여기서 파견노동자를 쓰면 모두 불법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제조업체 현장에는 ‘사내하청’을 위장한 불법파견이 만연해 있다.

현재 여당과 기업 쪽에서는 ‘노동개혁’의 일환으로 파견근로의 허용 범위를 넓히려 하고 있다. 새누리당이 지난 16일 국회에 발의한 파견법 개정안을 보면 ‘55살 이상 고령자’와 ‘전문직 종사 고소득자’의 파견을 확대하고 ‘뿌리산업’(주조, 금형, 용접, 소성가공, 표면처리, 열처리 등 제조업의 근간을 이루는 기초공정산업)의 파견을 허용했다.

여당은 “과도한 규제가 오히려 더 열악한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있다. 노동시장에 영향이 적은 고령자와 전문직의 파견근로를 확대해 일자리를 늘리고, 중소·영세 사업장 위주인 뿌리산업은 인력난을 해소시켜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계와 야당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미 만연한 불법파견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고, 오히려 합법화하려는 것은 파견의 폐해를 방조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2015년 고용노동부 고용형태 공시 자료를 보면, 그나마 사정이 나은 상시 300인 이상 사업장 3233곳에서도 전체 노동자 459만명 가운데 대부분 불법파견으로 추정되는 ‘소속외근로자’가 91만여명(20.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이 이런데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사용자 쪽은 파견노동을 사실상 전면 허용하자는 의견을 지속적으로 내왔다. 파견법을 ‘원칙적 금지, 예외적 허용’에서 ‘원칙적 허용, 예외적 금지’(네거티브 방식)로 개정하자는 것이다. 앞서 한국주물공업협동조합 등 6대 뿌리산업 협동조합 이사장들도 지난달 뿌리산업 파견근로 허용을 촉구하는 공동 성명을 내어 국회에 파견법 개정안 통과를 요청한 바 있다.

노사 양쪽을 중재하기 위해 구성된 노사정위원회 공익전문가그룹은 “제조업 파견 금지 조항 때문에, 파견근로자들은 최대 6개월 단위로 직장을 옮기는 등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며 “뿌리산업 종사자들이 파견업체의 정규직으로 고용돼 파견이 없는 기간에도 직업훈련과 월급이 보장되는 ‘상용형 파견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는 검토의견을 내놨다.

파견의 범위는 넓히되, 사실상 원청의 일용직으로 근무하는 파견노동자를 파견업체가 정규직으로 고용해 최소한의 안정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일종의 ‘타협안’인 셈이다. 이 검토의견은 지난 1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보고됐다. 정부와 여당은 “노사정위에서 노사 간 합의 도출이 사실상 실패한 상황에 공익전문가그룹 검토의견을 중심으로 입법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선임연구위원은 “현실적으로 노동자를 불법파견하고 그 임금을 빼먹는 구조로 생존하는 파견업체가 파견노동자들에게 제대로 된 처우를 해줄 가능성은 없다”며 “상용형 파견 모델은 파견 범위 전면 확대를 위한 ‘장식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비판했다.

고려대 노동대학원 김성희 교수는 “중견기업 수준 이하 제조업 현장에서는 이미 불법파견 없이는 산업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지경”이라며 “지금은 파견제의 범위를 넓힐 때가 아니라, 통계에도 잡히지 않을 만큼 만연한 불법파견을 단속하고, 직접고용으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1만8000여개 사업장이 자리잡고 있는 경기 안산시 반월·시화산업단지를 관할하는 고용노동부 안산지청에는 불과 20여명의 근로감독관이 근무하고 있다. 근로감독관 1인당 800~900여개 사업장을 맡아 불법파견 등을 적발해야 하는 실정이다. 불법파견이 적발되더라도 시정명령과 법원 판결 등 구제수단을 거치면 5년여 시간이 허비된다. 사실상 법의 구속력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인 셈이다.

<송곳>에서 구고신 소장은 불법파견 노동자들을 해고한 원청 직원한테 이렇게 항의한다. “불법파견 판정 났잖아! 당신들이 실사용자 맞다고! 당신들이 부려먹었으면 해고도 당신들 손으로 직접 해! 파견업체 가랑이 사이에 대가리 처박고 있지 말고!” 이에 대한 사용자(원청) 관리자의 답은 이렇다. “법대로 해요. 법대로. 우린 벌금 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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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송곳 on Thursday, November 2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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