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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갑한' 강의실을 꿈꾸는 한 노동자의 기록

당장 내년부터 강행하겠다는 '시간강사법'은 시행을 위한 구체적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을 뿐 아니라 현실에도 맞지 않아, 이 법이 시간강사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개설 강의의 숫자를 줄이고 몇명에게 강의를 몰아주게 되니 오히려 시간강사들의 처지는 더 종속적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그나마 대학과 1년 단위로 계약하게 될 일부 강사들의 경우에도 최저임금을 충족시킬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라고 하니, 교수니 인문학 연구자니 그런 대접 다 필요없고 노동자로서 정당한 대우를 하라는 요구가 더 적실하게 된 형편이다.

  • 백영경
  • 입력 2015.11.27 07:24
  • 수정 2016.11.27 14:12

309동 1201호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패배는 죄가 아니야! 우리는 벌을 받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고! 우리는 달리기를 하는 게 아니라 삶을 사는 거고. 우리는 패배한 게 아니라 단지 평범한 거라고." 최근 드라마로도 방영되고 있는 웹툰 <송곳>에서 노동상담소 소장 구고신은 이렇게 말한다. 경쟁이 사회의 원리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삶이 달리기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들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인문학적 가치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대학원에서 인문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일만으로 생업을 삼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떠나서도, 대학에서 인문학 동네는 그저 평범해서는 살아내기 가장 어려운 곳 중 하나이다.

아니 사실 생업의 어려움과 평범한 인문학자가 처한 곤경이 아주 무관한 것도 아니다. 인문학 열풍이 불어도 결국 몇명의 스타 강사와 필자에게 관심과 보수가 집중될 뿐, 나머지 평범한 다수 연구자의 존재가치를 알아주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나마 정규직으로 취직이라도 하면 그거 해서 뭐 하냐는 소리는 안 들을 것이지만, 취직한 대학의 등급에 따라 끝없이 줄 세우기 당하는 운명을 피하기는 어렵다. 결국 인문학 한다고 하면 주변에 별 상관없는 사람들까지 혀를 차는 게 요즘의 현실이다. 하물며 현실을 비판하고, 살아지는 대로 살기보다는 생각이나 성찰이라는 것을 좀 해가면서 다르게 살아보자는 이야기라도 할라 치면, 네 앞가림이나 하라는 냉소를 각오해야 한다.

맥도날드에서 일하는 '지방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은행나무 2015)의 저자인 '309동 1201호'가 책의 제목을 '나는 시간강사다'라고 하지 않고, 굳이 지방대학 시간강사의 준말인 '지방시'라는 말을 만들어가면서까지 지방을 강조하는 데는 인문학이 어렵다고 해도 어디서 하느냐에 따라 형편이나 대접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사정 때문일 것이다. 필명 '309동 1201호'는 그가 대학원 시절 동안 살아온 집의 주소로, 저자는 어느 한 지방대에서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석사를 거쳐 현재는 박사과정 수료 4년차로서 박사논문을 쓰는 중인 걸로 되어 있다. 그는 학생들에게 학기 당 4~6학점 강의를 하고 1년에 1편 학진(한국연구재단) 등재지에 논문을 투고하고 있으며, 대학에서의 강의로는 얻을 수 없는 의료보험 등 최소한의 사회보장을 위해 24시간 패스트푸드점에서 월 60시간 이상 반드시 노동을 한다. 이 책은 그가 지난해 9월 16일부터 12월 31일까지 인터넷 사이트 '오늘의 유머'에 연재했던 글과 이후 온라인 언론 <슬로우뉴스> 연재분을 묶어서 출간한 것으로서, 1부는 대학원생으로서의 삶에, 그리고 2부는 시간강사로서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자가 굳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물론 신분을 공개할 경우 닥칠 곤란한 상황이 꺼려져서이기도 하지만, 밝히는 순간 예측되는 독자들의 반응 때문이기도 하다. 그 반응은, 그 대학 정도면 지방에서 명문인데도 그렇게 사는구나, 정말 인문학은 할 게 못된다,는 것일 수도 있고, 그 정도밖에 안되는 지방대학을 나왔으니 그렇다,가 될 수도 있을 것이지만, 어느 쪽이든 지역의 대학에서 인문학이 처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무슨 분야든 학문을 직업으로 하다보면 자신감이 과도하지 않는 한 내가 과연 공부를 직업으로 할 만한 사람인지, 또 내가 쓰는 논문이 사회에 어떠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하는 자괴감과 종종 씨름하지 않을 수 없는데, 지방과 인문학을 둘러싼 사회적 시각이 이렇다보니 지방대학에서 인문학을 배우고 가르치는 어려움은 더 크기 마련이다.

실제로 서평을 쓰기 위해서 검색해본, 이 책에 대한 신문기사들도 대체로는 그 어려움을 자극적으로 강조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연재 당시에도 "대학보다 나은 패스트푸드점" "88만원세대보다 힘든 '젊은 교수님'" "잡일 돕는 아이" 등의 제목을 달고 나오긴 했지만, 기사들 역시 "맥도날드 알바로 버티는 시간강사" "우리 시대 아픈 청춘의 분투기" 등 시간강사가 알바만도 못하다는 것을 부각했다. 하지만 이 책은 그저 '지방시'가 얼마나 어렵게 사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은 아니다. 만약 그런 내용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면 연재 당시에 좋은 반응을 얻기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사람이야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어서 문제지만, 일주일에 고작 몇시간 일하는 쉬운 일로 보는 속내 모르는 시선도 있으니 말이다.

그의 꿈이 이루어지려면...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가 여러 사람에게 권할 만한 책이 된 것은 대학의 시간강사가 맥도날드에서 일할 정도로 어려운 사정임을 고발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육체노동을 하면서 어떻게 학생들에 대해서, 대학에서 인문학 강의를 한다는 것에 대해서, 또한 시간강사도 노동자라는 사실에 대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는지를 담담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맥도날드에서 일하기 전에도 연속해서 우수강사로 선정될 만큼 좋은 선생님이었던 것 같은 저자는 노동의 경험을 통해서 학생들을 이해하는 폭이 달라졌음을 고백한다. 연재 이후 본인 개인에게 쏟아지는 관심을 '사회 어디에든 지방시는 있다'는 대답으로 차단하는 것 역시 이러한 경험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저자는 아무리 강의평가가 두려워도 학생들에게 쓴소리 할 것은 하고, 학점이라는 칼자루가 교수들의 손에 있다 하더라도 할 말은 하는 강의실, 즉 누구는 갑이고 누구는 을인 강의실이 아니라 모두가 갑이 되는 '갑갑한' 강의실을 꿈꾼다.

그런데 지금의 대학이 그런 '갑갑한' 강의실에 조금씩이나마 다가가는 과정에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그 전망은 밝지 않다. 그간에도 평가와 관료주의적 압박으로 대학을 옭죄어왔던 교육부는 내년부터 인문대 정원을 줄이는 학교에 지원을 하겠다고 공표했다. 이제까지 인문학을 지원했던 재원 중 상당부분이 그쪽으로 흘러들어가리라는 전망이다. 당장 내년부터 강행하겠다는 '시간강사법'은 시행을 위한 구체적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을 뿐 아니라 현실에도 맞지 않아, 이 법이 시간강사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개설 강의의 숫자를 줄이고 몇명에게 강의를 몰아주게 되니 오히려 시간강사들의 처지는 더 종속적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그나마 대학과 1년 단위로 계약하게 될 일부 강사들의 경우에도 최저임금을 충족시킬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라고 하니, 교수니 인문학 연구자니 그런 대접 다 필요없고 노동자로서 정당한 대우를 하라는 요구가 더 적실하게 된 형편이다. 저자가 이야기하듯이 사람을 가르치는 일이 패스트푸드를 준비하는 일보다 더 대접을 받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일로는 대접받아야 할 테니 말이다.

* 이 글은 창비주간논평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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