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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소년, 그리고 우리의 정직 결핍증

그는 틀림없이 총명했을 것이고 가능성이 풍부했을 것이다. 근처의 어른(들)이 너무 서둘러서 정직한 길을 못 가게 한 것이 문제의 원인인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박석재 연구위원의 이전 연구가 논문에 포함되지도 않았을 터이고 공동 저자로 올라갔을 이유도 없다. 근래에도 가끔씩 박사 지원하는 학생들의 SOP나 자기소개서를 봐 줄 때가 있는데 우리나라 학생들이 보통 뛰어난 것이 아니다. 얼마나 영어 실력도 많이 향상되었는지 간단한 감수만으로도 내용이 충분히 전달될 정도의 수준에 와있다. 그러니 우리 어른들이 할 일은 길을 비켜주는 거다. 위선이란 걸림돌만 치워주면 된다.

  • 김태성
  • 입력 2015.11.26 11:46
  • 수정 2016.11.26 14:12

같은 주에 저명한 과학 저널에 실린 천재 소년 송유근의 논문과 한국 대학교수 일부의 "표지갈이" 교과서 문제가 간단하게 말해서 "거짓"이었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그리고 TV뉴스를 시청하고 있자면 - 약간 과장해서 - 반 이상이 부정/부패/사기로 도배를 한 느낌이 든다.

어제 하루만 해도 이 정도다...

- 과대 포장으로 소비자를 속이고 있는 과자 회사들

- 야구 특기생 입학 비리

- 미국보다 국내에서 25-30% 더 비싸게 유통되고 있는 같은/비슷한 삼성/LG 가전

- 크라우드펀딩 불법 자금 모집

- 도시철도 사업비 부풀리기 의혹

- 수억 대 금품 챙긴 혐의를 받고 있는 향군회장

왜 이토록 정직성이 결핍할까?

역사-환경적인 이유가 당연히 가장 크겠지만 그런 요소만 탓하자면 해결책이 안 나온다. 따라서 정부나 국회의 조취를 기다리지 않고도 사회의 일원으로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1. 가정 교육

영어로 Seeing is believing이라는 말이 있다. 즉 봐야 믿을 수 있다는 건데 당연히 아이들은 말보다 부모가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특히 위선을 조심해야 하는데 아예 나쁜 인간은 나쁜 인간으로 간주하면 되지만 올바른 척하는 인간은 헤아리기가 어렵고 따라서 아이들 가치 형성을 더 비뚤어지게 한다.

이전의 내 치과의사는 매우 친절하고 독실한 가톨릭 신자에 적절한 치료비를 받는 명의였다. 문제는 한사코 치료비를 현찰로 내줬으면 하는 거다. 그 집 아이들이 걱정됐다. 치과가 호황이어서 4층 건물을 이미 소유한 엄마가 말로는 올바른 행동, 정직한 마음, 주님의 길, 등을 외쳐봤자 더 많은 돈을 비축하기 위해서 탈세를 하는 모습이 어떻게 비칠지 궁금했다.

2. 학교 생활

필자는 한때 어느 영재 과학고에서 영어 컨설턴트를 한 적이 있다. 유학을 꿈꾸는 학생들의 SAT 준비를 돕고 대학교 원서에 포함되는 SOP나 자기소개서 등을 조언/감수하였는데 몇몇은 아이비리그 입학에도 성공했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수천만원대의 유학 원서 서비스가 존재했다. 즉, 영어 잘 하는 인간이(주로 미국 아이비 또는 준 아이비 출신 교포 및 유학생) 원서와 거기에 포함되는 작문을 대신 그럴싸하게 만들어 준다는 거였다. 맙소사... 그러나 이런 비행이 나중에 들통나 입학이 취소되는 사례도 있었다. 그뿐 아니라 학교 측의 "내신 부풀리기"가 적발되어 입학이 취소된 사례도 있다.

상상해 보시라. 어느 부모가 자식에게 그른 것을 일부러 가르치겠나? 하지만 몇 백, 몇 천만원을 들여서 다른 사람이 대신 자기의 이야기를 쓰게 했다는 사실을 자녀가 깨닫는 순간 한편으론 감사할 수도 있겠지만 부모의 가치관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렇게 틀어진 자신의 가치관은 어떻게 되나? 마찬가지로 자기의 성적이 학교로 인해 부풀려졌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매우 특별한 척해야 하는 자신의 위선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3. 회사 생활

20, 30대에 외국계 기업에 종사했었는데 회사에 처음 입사해서 가장 놀랐던 일이 미국 본사 출장 때 어느 바에서 있었다. 본사 국제부 직원과 저녁 식사를 마치고 한 잔 더 하자는 제안에 근처 바에 갔다. 그런데 그 친구가 계산을 하고서 영수증 챙기는 것을 잊은 거다. 그러더니 바 냅킨에 술값을 적고 자기 이름과 내 이름 그리고 날짜를 적는 거였다. 뭘 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비용처리 서류에 첨부할 자료라는 거다. 물론 미국 회사에도 비용 뻥튀기로 문제를 일삼는 인간들이 많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회사는 직원을 신뢰하고 직원은 회사가 자기의 정당한 활동비를 지원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양자 사이에 깔려있다.

아마 승진 후였던 것 같다. 친구들과 만나서 술을 한잔하다가 출장비 이야기가 나왔다. 미국이나 일본에 출장 다닐 때 정해진 한도 없이 사용한 대로 환급을 받는다고 하자 일일 경비만 아는 친구들이 하는 소리가 "야, 정말 좋겠다. 얼마든지 적어내면 되잖아"였다. 나는 너무 놀랐다. 소위 말하는 per diem을 몰라서 놀란 것이 아니라 내가 아끼는 범생이라고 생각하는 친구들, 즉 당시 한국의 기둥 같은 30대 초반의 사회인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횡령(작지만)을 언급하는 현실 때문이었다. 악독 경영주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회사원도 자기의 양심과 책임을 다 할 때 떳떳이 요구도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송유근 학생에 대해 한마디 하고자 한다. 과학고 컨설턴트를 하면서 정말로 뛰어난 학생들을 많이 만났다. 밝고 명랑하고 호기심 많고 꿈도 많은 이런 학생들이 바로 한국 최고의 자산이다. 송 군의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이전 시절에 대한 추측은 하기 어렵다. 하지만 경험 대로라면 그는 틀림없이 총명했을 것이고 가능성이 풍부했을 것이다. 근처의 어른(들)이 너무 서둘러서 정직한 길을 못 가게 한 것이 문제의 원인인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박석재 연구위원의 이전 연구가 논문에 포함되지도 않았을 터이고 공동 저자로 올라갔을 이유도 없다.

근래에도 가끔씩 박사 지원하는 학생들의 SOP나 자기소개서를 봐 줄 때가 있는데 우리나라 학생들이 보통 뛰어난 것이 아니다. 얼마나 영어 실력도 많이 향상되었는지 간단한 감수만으로도 내용이 충분히 전달될 정도의 수준에 와있다. 그러니 우리 어른들이 할 일은 길을 비켜주는 거다. 위선이란 걸림돌만 치워주면 된다.

* 이 글은 koryopost.wordpress.com에 포스트 된 글입니다. Terence Kim(김태성)의 글은 여기서 더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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