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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편견이 이루어지는 나라

'노인들은 보수꼴통이다', '정치인들은 다 사기꾼이다', '이슬람 사람들은 잠재적 테러리스트일 수 있다' 같은 편견들도 자기실현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편견이 없는 세상에서는 일탈 행동에 따른 비용이 크지만, 편견으로 가득한 세상에서는 통념에 따른 행동이 쉬워지기 때문입니다. 둘째, 사람들은 자신들을 향한 편견에 순응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 김재수
  • 입력 2015.11.26 06:07
  • 수정 2016.11.26 14:12

대표적 시장주의자 밀턴 프리드먼에 따르면, 편견과 차별은 효율성을 추구하는 경제에서 발 붙일 여지가 없습니다.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가는 노동자의 능력에 따라 다른 임금을 주지만, 인종과 성별에 따라 차별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자 버르트란과 뮬라이나탄은 두 종류의 가짜 자기소개서를 만들고, 채용 공고가 난 회사들에 보냈습니다. 출신학교를 비롯해 모든 스펙을 동등하게 하고, 오직 이름만 다르게 하였습니다. 한 종류에는 에밀리, 그레그 같은 전형적인 백인의 이름을, 다른 종류에는 라키샤, 자말 같은 흑인의 이름을 적었습니다. 실험 결과 백인 이름이 약 50% 정도 많은 인터뷰 제안을 받았습니다.

편견에 의한 차별이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아니에요! 흑인들이 평균적으로 교육 수준이 떨어지고 일도 잘 못해요. 이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일 뿐이라구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들 흑인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경쟁적으로 쏟아냅니다. 편견은 사실상 통계적 추론이라는 것입니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통계적 차별(statistical discrimination)이라 부릅니다. 이처럼 편견이 거짓이 아니라 사실에 기반한다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입니까.

편견의 자기실현 1. 합리적 선택‬

흑인과 백인의 능력이 조금도 다르지 않지만, 어떤 이유로든 사회 구성원들이 흑인에 대해 부정적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고 합시다. 흑인들은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교육의 편익이 적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소개한 가짜 자기소개서 이야기처럼, 같은 비용을 들여서 교육을 받아도 취업 가능성이 적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흑인들은 합리적인 비용편익분석을 바탕으로 교육 및 인적자본에 더 적은 투자를 하게 됩니다. 결국 사회구성원들은 자신들의 편견을 사실로 재확인합니다. 통계적 차별 속에 숨어 있는 메커니즘은 편견의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입니다.

‪편견의 자기실현 2. 순응‬

편견의 자기실현성은 또 다른 경로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최근 행동경제학자들은 사람들이 사회적 통념 또는 편견에 스스로를 순응하는 경향을 가진다는 다양한 연구 결과들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인 여학생들에게 수학 문제를 풀게 합니다. 시험 전 간단한 질문을 통해 한 그룹에게는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다른 그룹에게는 아시아인이라는 정체성을 떠올리게 합니다. 마지막 그룹에게는 아무런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실험 결과, 세번째 그룹 대조군에 비하여, 여성의 정체성을 떠올린 그룹은 낮은 성적을 보였고, 아시아인이라는 정체성을 떠올린 그룹은 더 높은 성적을 보였습니다. '여자는 수학을 못한다', '아시아인은 수학을 잘한다'는 사회적 통념에 스스로를 순응시킨 것입니다. 비슷한 연구가 많습니다. 인도에서 카스트 제도를 묻고 시험을 치게 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와 다른 결과가 나타납니다. 노화에 따른 인지 능력 및 신체 건강도 노인에 대한 사회 인식에 따라 달라진다고 합니다.

편견에 갇힌 우리들‬

'노인들은 보수꼴통이다', '정치인들은 다 사기꾼이다', '이슬람 사람들은 잠재적 테러리스트일 수 있다' 같은 편견들도 자기실현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서 설명한 것과 같습니다. 첫째, 편견이 없는 세상에서는 일탈 행동에 따른 비용이 크지만, 편견으로 가득한 세상에서는 통념에 따른 행동이 쉬워지기 때문입니다. 둘째, 사람들은 자신들을 향한 편견에 순응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득불평등 문제가 심각합니다. 금수저, 흙수저라는 표현이 뚜렷해진 계층 구분을 상징하기 시작했습니다. 소득불평등이라는 통계적 사실은 이제 계급의 차이라는 사회적 통념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자신을 흙수저라고 부르는 젊은이들의 조소와 절망이 스스로를 향한 예언이 되었습니다. 국가 통치자들은 노오력을 더 하라고 주문하며 자기실현적 절망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출처: 연합뉴스TV 캡처

성서에서 하늘의 아들이라 불리우는 이는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사회구조악은 우리에게 "네 편견대로 될지어다"라고 선언합니다. 애국과 종북, 영남과 호남, 스카이대와 지잡대, 금수저와 흙수저, 장애인과 비장애인, 이성애자와 동성애자와 같은 경계선을 긋고, 상대방을 어떤 이미지에 가두기만 하면, 우리가 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편견이 실현되는 세상이 지옥입니다.

우리를 편견에 가두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노인들의 우경화, 젊은이들의 정치 혐오를 통해 선거를 이기는 사람들입니다. 부의 대물림이 이루어지고, 금수저의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만드려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역사의식을 지닌 이들을 "혼이 비정상"이라 부르고, 시위대를 테러집단으로 묘사하는 대통령의 편견이 우리 국민을 꽁꽁 묶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늘의 아들이라 불리우는 이가 이렇게 말했을까요. "형제나 자매에게 바보라고 말하는 사람은 지옥불에 던져질 것이다."

출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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