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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버킷 리스트

아차차, 한 가지 더 있다. 죽기 전의 작은 이별파티다. 몇 년 전 세상 떠난 어떤 왕오빠의 이별 파티에서 영감을 받았다. 큰 병을 얻어서든지 크게 다쳤든지 머지않아 세상을 떠날 것을 알게 되면 친구들과 친척들을 초대해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는다는 구상이다. 그동안의 우정에 감사하면서 하직 인사할 기회를 갖는 건 근사하지 않은가. 한바탕 춤과 노래판이 벌어지면 더 좋겠다. 파티 참석자들에겐 내가 죽은 후 조문 면제의 특전을 부여할 생각이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다. 즐거운 소풍을 마치고 웃는 얼굴로 떠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 정경아
  • 입력 2015.11.26 10:23
  • 수정 2016.11.26 14:12
ⓒgettyimagesbank

영화 '버킷 리스트' 덕분에 여고 동창들 사이에 버킷 리스트가 유행한 적이 있다. 시한부 삶을 선고 받은 환자 잭 니콜슨과 모건 프리먼은 스카이다이빙 해보기, 피라미드나 타지마할 가보기 같이 돈 많이 드는 꿈을 그야말로 꿈같이 이뤘다. 죽기 전에 꼭 해봐야 할 일들이 우리라고 없을까. 어느 날인가 머리를 맞대고 목록을 작성했다.

우리들의 버킷 리스트에 가장 많이 등장한 건 여행. 성산포에서 한 달 살기, 더블린 펍에서 기네스 맥주와 피쉬 앤 칩스 먹기, 마추픽추에서 엽서 쓰기, 사해에 동동 떠서 책 읽기, 비행기 마일리지 모아 스톡홀름까지 일등석 타기 등등, 밥하기 싫은 중년여성들의 가출 욕구가 넘쳐났다. 조금 과격한 아이템 중엔 보름달 아래 따뜻한 플로리다 바닷물에서 발가벗고 수영하기, 젊은 날 바람피운 남편을 묶어 놓고 욕 실컷 하기가 있어 모두의 배꼽을 뺐다. 영성 깊은 한 친구는 별 쏟아지는 사막에서 밤샘 기도를 하며 '그 분'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 했다.

대한민국 여성의 기대 수명은 거의 85세. 대충 잡아 20년도 더 남아있는 데 버킷 리스트로 법석을 떠는 건 뭘까. 지구에서의 60년 동안 쌓인 크고 작은 마음의 응어리가 한풀이 욕망으로 분출하는 거겠지.

그러고 보니 내 주변에 5개년 계획이나 10개년 계획을 추진 중인 이들이 있다. 옛 직장 선배 한 분은 7순 기념 CD 발매를 기획 중이다. 3년 째 경기민요 명창에게 사사 중이며 이미 '전수자' 타이틀을 따냈다. '정선 아리랑'이나 '한 오백년'을 포함한 CD 레퍼토리를 구성 중이다. 손주 둘을 베이비시팅하면서도 일주일에 한 번 레슨을 받으러 다닌다. "남부끄러워" 한정판으로 50매를 발행해 2년 후 7순 가족 모임에서 배포하는 게 목표. 뒤늦은 소리 열공으로 일상에 긴장이 생겨 은근 즐거워 하니 보는 우리가 더 즐겁다.

내년에 70이 되는 한 싱글 선배는 돌연 파트너가 필요하다는 고백으로 우리를 놀래켰다. 퇴직 이후 집에서 혼자 밥 먹은 지 5년 째. 결혼이란 "밥을 함께 먹을 상대를 확보하는 것"임을 깨달았다나. 직장 시절엔 동료들과 밥을 먹었기에 '혼밥'의 아픔을 몰랐었단다. 막상 퇴직을 하고 보니, 하루 세 끼를 혼자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몸서리가 쳐졌다는 것. 가끔 만나 점심 먹고 차 마시거나 영화 보러 다니고 교외 드라이브에 동행해 줄 남성을 구할 생각. 내년도 최우선 순위 추진 사항이라나. 결혼처럼 복잡하고 전면적인 인간관계는 엄두를 못 내니 조금 낮은 강도의 관계를 구상한 거다. 근데 선배 뜻처럼 쉽게 구해질까. 잘못 하다간 선배의 연금이나 축낼 상대를 만나지 않을지 살짝 걱정들을 했다.

내 버킷 리스트를 생각해 본다. 별 게 없다. 예전의 들끓던 여행 욕구는 어느새 사그라졌다. 왜일까? 돈도 별로 없는 데다 번거로운 출·입국 절차에 바퀴 달린 여행 가방 끌고 이 도시 저 도시를 전전하는 게 지겨워서? 그렇기도 하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건 내가 더 이상 그 어느 것에도 묶여있지 않아서다. 젊었을 때, 또는 직장생활, 결혼생활 중 나는 늘 떠나고 싶었다. 갇혀 있다 할지, 묶여있다는 무의식 때문이었을까. 퇴직 후 나이 60이 가까워지자 신기하게도 여행의 열망이 사라졌다. 떠나든 머무르든, 나는 그대로라고 느꼈다. 요즘도 여행을 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예전의 절박한 욕구가 없어진 건 분명하다. 굳이 버킷 리스트를 꼽는다면 나중에 거동이 힘들어질 때 몇몇 친구들과 요양병원에 단체로 입소하기 정도. 덜 심심하고 싶어서다.

한 가지, 내 딸과 아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 내가 죽은 후 마리아치 같은 작은 밴드를 불러 조문하러 온 이들에게 연주를 들려줬으면 한다. 마리아치는 뱃살 많은 멕시코 아저씨들이 챙이 넓고 꼭대기가 뾰족한 멕시코 전통모자에 판초를 두른 채 바이올린과 트럼펫, 기타를 연주하는 소규모 악단이다. 멕시코 영화에서 가끔 봤는데 흥겹고 정다웠다. 마리아치씩이나 부르려면 돈이 많이 들겠지. 우클렐레 같이 단순한 악기들로 편성된 동네 아마추어 밴드도 좋을 것이다. 그들이 몰려와 지구 여행을 대과 없이 마치고 먼 길 떠나는 한 영혼을 축복해 준다면 그보다 더한 호사는 없을 것이다. 딸과 아들에게 부탁해 두겠지만, 안 되면 말고. 어차피 내 소관 밖의 일이니까.

아차차, 한 가지 더 있다. 죽기 전의 작은 이별파티다. 몇 년 전 세상 떠난 어떤 왕오빠의 이별 파티에서 영감을 받았다. 큰 병을 얻어서든지 크게 다쳤든지 머지않아 세상을 떠날 것을 알게 되면 친구들과 친척들을 초대해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는다는 구상이다. 그동안의 우정에 감사하면서 하직 인사할 기회를 갖는 건 근사하지 않은가. 한바탕 춤과 노래판이 벌어지면 더 좋겠다. 파티 참석자들에겐 내가 죽은 후 조문 면제의 특전을 부여할 생각이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다. 즐거운 소풍을 마치고 웃는 얼굴로 떠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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