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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설문조사 | 러시아의 양다리 정책과 북한

북·러관계가 우호적임에도 불구하고 이들 사이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북한으로서는 자신들이 중국에 의존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클지라도 러시아가 북한의 제 1 무역 파트너인 중국을 대체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잘 알기 때문이다. 또한 러시아가 국제사회에서 독립적인 위치를 고수한다 할지라도 한 가지 중요한 사안, 즉 북한의 핵보유에 대해 러시아는 강경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 NK News
  • 입력 2015.11.24 11:59
  • 수정 2016.11.24 14:12
ⓒ연합뉴스 / AP

남북 모두에 영향력 유지 위해 '양다리' 정책 고수

러시아 전문가들은 중국을 포함한 6자회담 참가국 중 어느 나라보다, 러시아는 남북한 모두에 균형 잡힌 접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들은 이러한 접근의 기원에 대해 1990년대 소련과 한국의 관계 정상화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이후 소련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잃었음을 지적했다. 그들은 이로 인해 90년대 격변기에, 남북 모두 러시아의 입장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경제적 이익을 위해 한국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자국과 마찬가지로 내부의 민족주의적 결정에 따라 국제사회에 저항하는 북한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북·러관계가 우호적임에도 불구하고 이들 사이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북한으로서는 자신들이 중국에 의존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클지라도 러시아가 북한의 제 1 무역 파트너인 중국을 대체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잘 알기 때문이다. 또한 러시아가 국제사회에서 독립적인 위치를 고수한다 할지라도 한 가지 중요한 사안, 즉 북한의 핵보유에 대해 러시아는 강경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설문에 참여한 러시아 전문가는 다음과 같다.

  • 크리스티나 보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산하 세계경제 및 국제관계 연구소 (IMEMO) 아시아태평양 연구실 연구보조, 전 러시아 총리 예브게니 프리마코프가 설립한 정세분석연구소 연구원
  • 레오니드 페트로프: 오스트레일리아국립대학 문화·역사·언어 연구소 연구원
  • 안드레이 란코프: NK News 필자, 국민대학교 교수
  • 게오르기 톨로라야: 러스키 미르 재단 소장, 러시아 국립 BRICS 연구위원회 상임이사, 모스크바 국립국제관계연구소 방문교수
  • 알렉산더 제빈: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극동연구소 한국학 연구실장

평양의 러시아 대사관 | 사진: NK News

현재 북·러관계에 대한 진단과 그 이유는?

크리스티나 보다 (Kristina Voda)

러시아의 대북 정책은 두 가지 차원이 있다. 러시아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행동할 때와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독립적인 주체로 활동할 때이다. 국제 사회의 책임감 있는 일원이자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 러시아는 주변 지역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북한의 도발을 비난한다. 예컨대, 러시아는 2012년과 13년 사이 북한이 시행한 핵·미사일 시험을 비판했다. 러시아는 북한의 도발을 핵무기 비확산 체제를 훼손하는 행위로 규정한다.

한편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독자적인 주체로서, 러시아는 존재감을 높이고 이 지역과 좀 더 강하게 밀착한 관계를 맺고 싶어한다. 러시아의 주된 관심사는 경제 분야에 집중되어 있다. 러시아는 주변의 아시아 국가들과 무역 관계를 확장하길 바라며 인구 밀도가 낮은 극동 시베리아 지역을 개발하기 위해 아시아에서 자본을 유치하고 싶어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반도의 불안정한 상황은 이 지역경제에 편입하고자 하는 러시아의 노력에 장애물이다.

러시아의 공식적인 입장은 무엇보다 우선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상황을 조성하여 정치, 외교적인 방법을 통해 한국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의 약점은 회담을 재개하기 위해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러시아가 명확한 전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북한의 비핵화라는 주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협력이 효과적인 방안임을 확신하는 것이다.

레오니드 페트로프 (Dr. Leonid Petrov)

러시아와 북한은 모두 20세기적인 시대착오에 빠져 있다. 두 국가 모두 현재 국제사회의 질서에 융화되지 못했고 주변국을 끊임없이 위협하며, 국민들을 호도하고 있다. 두 국가 모두 호전적인 정책과 핵 보유를 향한 열망으로 인해 국제 제재의 대상이다. 따라서 북·러관계가 발전하고 양국 국민들이 서로에게 점점 더 친밀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전혀 놀랍지 않은 일이다.

이러한 양국의 우호관계 발전에서 무엇보다 유감스러운 점은 이러한 관계가 국제사회에서 두 국가가 처한 곤경과 고립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이념적인 고육지책의 성격을 띤다는 점이다. 양국은 국제사회에서 자신들과 대화조차 거부하는 국가들과는 관계 개선의 여지가 없으므로 편의상 결합하여 서로의 처지를 위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의 관계는 표면적으로 굳건해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별 내용이 없다.

안드레이 란코프 (Dr. Andrei Lankov )

북·러관계는 지난 30년 중 어느 때보다 좋다. 2014년 봄 이후 고위급 관료들의 잇단 방문으로 외교적 교류는 탄탄하며 경제 사안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양국은 정치적 이유로 관계회복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중국에 대한 의존이 과도한데다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으며 대안을 찾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한반도에서 활발히 움직이기 위해 한 발 물러난 모양새다. 북한과의 더 나은 관계가 러시아의 발언권을 높일 것으로 보인다. 북한 정부에 대한 동정적인 조치로 볼 때, 러시아는 북한을 미국이라는 골리앗에 대항한 용감한 다윗으로 간주하는 것 같다. 러시아 내의 반미 감정이 이례적으로 높은 것을 감안하면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다.

하지만 북·러관계에는 근본적인 약점이 존재한다. 양국 사이 경제 교류와 무역이 미미하다는 것이다. 북·러무역의 규모는 북·중무역의 7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 모든 것을 설명한다. 북·러무역은 지지부진했으며 지난 20년 동안 감소하는 추세이다. 북한과 러시아의 경제 구조를 고려한다면, 양국은 교역을 통해 주고 받을만한 부문이 많지 않으므로 이는 우연이 아니다. 요란한 대화에도 불구하고 2014년 무역 통계는 하락 추세가 아직 반전되지 않았음을 확인해준다.

북한의 정책 결정자들이 품고 있는 착각은 이러한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그들은 지정학적 우려와 야망을 가진 러시아가 북한과의 무역과 교류를 활발히 지원하길 바란다. 이러한 지원은 근시일 내에 추진되기 어려우며 어느 정도 이루어지더라도 북한 측이 바라는 수준까지는 성사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최근 착수한 몇몇 프로젝트들이 지속적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희망에는 근거가 있다. 예컨대 나선항 공동 개발 사업은 정치적으로 유용하며 경제적으로도 전망이 밝은 사업이다.

게오르기 톨로라야 (Dr. Georgy Toloraya)

북·러관계는 2013년 하반기부터, 북한의 의지에 따라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는 한계상태에 이르러 이를 양적으로 돌파할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현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살펴봐야 한다. 1996년 예브게니 프리마코프가 외교부장관에 취임한 90년대 중반부터 러시아는 '양다리' 정책 기조 아래 남북한 각각과 양자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이 기조는 2000년부터 이듬해까지 푸틴과 김정일의 교류에 따라 여러 합의가 맺어지고, 정치적 약속이 활발해지며 최고조에 이르렀다. 하지만 2002년 북한의 우라늄 농축으로 인한 위기 상황과 '악의 축' 발언을 기초로 한 부시 행정부의 정책이 시작되며 양국 관계는 핵 문제로 인한 한계상황에 봉착했다. 2008년 메드베데프 전 대통령 정권이 서방측과 가까워지고 이명박 대통령이 정권을 잡으며 한국은 아시아에서 러시아의 중요한 협력국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북·러관계는 다소 침체되었다.

하지만 2011년 8월 메드베데프와 김정일의 회담이 이루어지며, 양국 모두의 노력으로 북·러관계가 회복의 계기를 맞았다. 그러나 이 상승 추세는 2011년 말 김정일의 사망과 2012년 권력을 승계한 김정은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꺾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측은 러시아와의 경제 협력에 관심을 표했고 러시아는 이에 화답하며 2012년 양국 친선관계 향상을 위한 원칙적인 입장을 확인했다.

중국의 우세를 경계하려는 의도였겠지만, 북한은 이례적으로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고 새로운 사업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2013년 김정은의 호전적인 발언으로 인해 잠시 후퇴하기도 했지만 양국관계는 점진적으로 발전했다. 러시아가 서방국에게 거리를 두고 미국의 정책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북·러 교류와 협력의 폭이 넓어졌다.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점령하고 우크라이나의 분쟁에 개입하면서 서방 국가들과의 관계를 결딴내자 북한은 여러 차례, 간혹 러시아가 내심 당황스러울 정도로 러시아를 지지하며 이례적인 우호를 표했다. 정치, 경제적 접촉은 1980년대 이후 전례 없는 수준에 다다랐다.

하지만 북한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경제적 이익은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상태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는 러시아의 지원에 한계로 작용한다. 북한이 핵실험을 진행한다면 러시아는 물론 허울뿐일지언정 강력한 비판 성명을 발표할 것이다. 푸틴-김정일의 관계와 달리 정상회담을 통한 인적 교류 역시 이루어지지 않았다. 러시아는 북한에 중국을 대체하는 보호막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푸틴이 북한을 방문하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양국 관계가 안정을 넘어 더욱 친밀해지는 데는 한계가 존재한다.

알렉산더 제빈 (Dr. Alexander Zhebin)

20세기 말 러시아의 대(對) 한반도 정책은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1980년대 말까지 소비에트 연방은 이념적인 이유로 인해 한반도에 있는 두 국가 중 북한과만 관계를 유지하고 한국은 무시했다. 소련의 대내외 정책이 변화를 맞이하며 러시아는 한국에 발 빠르게 접근했고 한·러 관계가 수립되었다. 이와 함께 북·러 관계는 빠르게 식어갔다. 1990년에서 1992년까지 짧은 기간 동안 러시아는 한반도에 있는 두 개의 국가와 모두 외교관계를 체결한 강대국이라는 독특한 이점을 활용하지 못했다.

러시아 전문가들과 지도자들은 더욱 이성적이고 균형 잡힌 대 한반도 정책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새로운 방법론은 국제 관계에서 러시아의 사회, 경제, 지정학적 현실이 변화했다는 점을 감안하여 수립되었다. 대 한반도 정책을 포함한 러시아의 새로운 대외정책은 국제적, 지역적인 문제에 대해 이념적인 요소를 완전히 배제하고 실용적인 접근 방식을 택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러시아가 남북한 모두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러한 관심을 실현하는 것은 남북한의 사회·경제적 체제와 대외정책, 경제적 잠재력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의심의 여지없이 러시아의 정치적, 경제적 체제는 북한보다 남한에 더 가깝다.

하지만 러시아의 대외 정책은 다극적 국제 질서, 미사일 방어체제, 나토의 확장 등 주요한 국제 사안에 있어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이를 지지하는 북한과 공통점이 더 많다. 러시아는 한국과 정치적 교류와 무역, 경제 협력의 수준을 높여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는 소비에트의 원조로 발전했으며, 여태까지 많은 분야에서 러시아의 기술, 자원, 시장을 기초로 삼고 있는 북한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과 경제적 위상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모든 요소는 러시아가 남북한 모두와 우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양다리' 정책을 고수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한다. 러시아의 대 한반도 정책이 한 국가와의 친선을 위해 균형을 잃었을 때 러시아가 한반도에 가지는 영향력은 감소했으며, 남북한 모두의 중요한 협력자로서, 한반도 안정을 위한 당사국으로서 러시아가 가지는 이익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쓴 롭 요크(Rob York)는 NK News의 편집장입니다. 채드 오캐럴(Chad O’Carroll)이 이 기사를 쓰는데 도움을 주었으며 최하영이 번역하였습니다. 메인 이미지의 출처는 Wikimedia Commons입니다. 원문은 여기에서 읽을 수 있으며 이어지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한국, 탈북 전문가들의 답변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NK News 한국어판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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