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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모두 무슬림이다

그는 말 한 마디 없이 내게 다가왔다. 주머니에서 작은 종이 봉지를 꺼냈다. 안에는 삶은 달걀 하나와 여러 번 접은 신문지가 있었다. 신문 안에는 소금이 조금 들어 있었다. 그는 내게 그 봉지를 건넸다. 나는 고맙다고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도 고개를 끄덕이더니 멀어져갔다. 그리고 그는 배낭에서 작은 카펫을 꺼내 잔디밭에 깔더니 그 위에서 무릎을 꿇고 메카 쪽을 향해 기도했다. 나는 파리의 테러범들을 생각할 수도 있고, 그를 생각할 수도 있다. 지금 나는 그를 생각한다.

ⓒASSOCIATED PRESS

파리 테러가 일어난 지 몇 시간 뒤, 나는 허핑텅 포스트에 '또다시 우리는 모두 파리시민이다'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댓글이 많이 달렸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 나는 또 파리 관련 글을 쓰고 있다. 이번 글의 제목은 당신이 보는 바와 같다. '이제 우리는 모두 무슬림이다'

파리 테러에 대한 세계의 첫 번째 반응은 공포, 슬픔, 저항이었다. 며칠 지나자, 군대와 경찰의 반응으로 관심이 옮겨갔다.

나는 다른 것을 제안하고 싶다. 이해와 연결이다. 지구에 평화가 오려면 우리는 이슬람이 의미하는 것과 의미하지 않는 것, 이슬람인 것과 이슬람이 아닌 것, 이슬람이 성스럽게 여기는 것과 사악하게 여기는 것을 우리 모두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믿는 종교 중 하나인 이슬람에 대해서 종교를 막론하고 세상 사람 전부가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리고 나는 어떤 종교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무지에서 공포가 자라난다. 평화, 수용, 커뮤니티, 자선에 대한 코란의 메시지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정치 등에서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공포다. 만약 이슬람을 자처하는 IS 무장대원들이 이슬람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인다면, 그들이 고대 전통 속의 '칼리프 국가'를 선언한다면, 역사와 균형을 알아야 그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러한 교육의 책임을 정치인들에게 넘길 수는 없다.

안타깝게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 프로젝트의 적임자가 아니다. 미국 유권자 중 그가 '숨어있는 무슬림'이라고 생각하는 짐승들이 너무 많다.

워싱턴 등의 지지 단체들도 적임자가 아니다. 그들은 불어나고 있는 미국 무슬림들에 대한 차별과 공격 사례들을 모으는데 시간을 너무 많이 쓰고 있고, 그건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렇지만 더 광범위하고 긍정적인 임무가 뒤로 밀릴 때도 있다. 뒤로 밀리는 건 폭력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강력하게 반복하여 비난하는데 드는 참을성도 마찬가지다.

영리하고 사교적인 키스 엘리슨(주: 미네소타 주 하원의원. 미국 최초의 무슬림 의원이며 미네소타 최초의 흑인 의원이다) 같은 정치인이 자기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에너지가 넘치는 엘리슨이라도 워싱턴 정계에서 혼자서 이런 대화를 주도하기엔 무리가 있다.

반대편의 주장이 없는 상황에서, 젭 부시와 도널드 트럼프 같은 대선 후보들은 종교적 두려움을 깊숙이 파헤칠 수 있다. 부시의 경우 미국은 시리아 난민 중 크리스천들만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허핑턴포스트 등의 매체에 있는 언론인들은 물론 우리의 역할을 다 해야 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생각할 줄 아는 모든 사람들이 공포를 넘어서서 국내외의 무슬림 커뮤니티에 대해 배워야 한다. 다에시, IS로 불리는 극단주의 집단의 잔인한 행동에 반대하는 무슬림들 대다수를 인식하고 그들과 손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는 공통의 인간성을 포용할 것을 요구하며, 그에 대한 보상도 얻을 수 있게 해준다는 걸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야 한다.

오래 전의 이야기를 들려주겠다. 내가 대학을 갓 졸업하고 장학금으로 세계를 여행하던 젊은 시절의 이야기다.

예루살렘에서 나는 건장한 50대 남자를 만났다. 각진 턱에, 머리에는 니트 모자를 쓰고 등에는 나무로 된 지게를 매고 있었다.

1970년대까지도 예루살렘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고 들었다. 한때 팔레스타인을 지배했던 오토만 제국의 후예인 터키인 '가구 짐꾼'들로, 구 시가지의 좁은 골목에서 물건을 나르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1971년의 화창한 봄날에 그를 만났다. 나는 예루살렘의 옛 오토만 벽에 기대 있었다. 나는 혼자였고 배가 고파 보였던 모양이다.

그는 말 한 마디 없이 내게 다가왔다. 주머니에서 작은 종이 봉지를 꺼냈다. 안에는 삶은 달걀 하나와 여러 번 접은 신문지가 있었다. 신문 안에는 소금이 조금 들어 있었다.

그는 내게 그 봉지를 건넸다. 나는 고맙다고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도 고개를 끄덕이더니 멀어져갔다.

그리고 그는 배낭에서 작은 카펫을 꺼내 잔디밭에 깔더니 그 위에서 무릎을 꿇고 메카 쪽을 향해 기도했다.

나는 파리의 테러범들을 생각할 수도 있고, 그를 생각할 수도 있다. 지금 나는 그를 생각한다.

*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US에 게재된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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