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오랑우탄 거울실험 프로젝트] 침팬지는 수화로 말했다

관련 기사: 오랑우탄 거울실험 프로젝트 : 한국 최초의 '비인간 인격체' 실험이 시작된다(영상 보기)

19일 경기 과천 서울대공원 유인원사에서 열린 거울실험에서 김영환 동물자유연대 선임간사가 오랑우탄 ‘보람’을 지켜보고 있다.

[토요판] 생명

“돌고래가 사람(person)이라고?” 이 질문에 놀랄 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우리는 일상에서 ‘인간’(human)과 ‘사람’(person)을 혼용해 쓰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학자들은 인간을 과학적 개념으로, 사람을 철학적 개념으로 사유하며 구별해왔다. 생물학적 분류 항목인 호모 사피엔스의 구성원이라면 모두 인간에 해당한다. 반면 사람은 우리를 정의하는 좀더 고등한 특질들-자의식, 지능, 자유의지 등-의 조합을 얘기한다.(토머스 화이트, <돌고래에 대한 변호> 중에서)

지난 18일 오전 11시 철커덩 문 여는 소리가 들리자, 오랑우탄 ‘보라’가 전시실로 뛰어들어왔다. 인생의 대부분을 두어 개의 사육사와 실외방사장에서 산 동물은 새로 등장한 물체를 금방 눈치챈다. 전시실은 약간 달라져 있었다. 거울이었다. 보라는 곧장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26일까지 네 차례의 거울실험이 진행됐다. 경기 과천 서울대공원에 사는 오랑우탄 보라, 보석, 보람이 각각 두차례씩 거울 앞에 섰다. 우리는 왜 거울실험을 하는가? ‘비인간인격체 프로젝트-오랑우탄 거울실험’에 대해 독자들의 궁금증이 쇄도했다. 몇 가지 질문을 정리해봤다.

외국에서 한 실험을 왜 또 하나?

거울실험은 ‘거울실험 합격증’을 주고 끝나는 게 아니다. 실험 과정에서 관찰된 행동과 사건, 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어준다. 거울을 앞에 두고 오랑우탄에게는 많은 사건이 쇄도한다. 실험에 참가하는 인간도 변한다. 과거 실험의 예를 들어보자. 침팬지 ‘워쇼’는 최초로 수화를 배운 동물로 유명하다. 그는 ‘나’(me)와 자신의 이름 ‘워쇼’(Washoe)를 포함한 250개 단어를 배워 조합할 줄 아는 상태에서 거울 앞에 섰다. 실험자가 수화로 물었다. “그게 뭐니?” 워쇼는 뭐라고 답했을까. “나, 워쇼”(Me, Washoe) 이 장면을 두고 영장류학자인 제인 구달은 그의 글 ‘야생서식지에서 침팬지 행동’(2010)에서 “자의식의 초기 단계를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평했다.

거울은 자의식을 비쳐주는 도구일 뿐이다. 수화를 배운 영장류는 자의식을 ‘언어’로 드러내기도 한다. 지금까지 수화를 배워 인간과 의사소통한 동물은 침팬지 워쇼 외에도 오랑우탄 찬텍, 고릴라 코코 등이 있다. 다음은 워쇼와 그의 수화 교사 수전의 대화 기록이다.

워쇼: 너…나…너…나…너…너

수전: 누구? 뭐?

워쇼: (질문에 대한 답으로) 너…너…수전. 나…나…워쇼.

수잔: 너 나…뭐?

워쇼: 너 나 너 수전 나. (워쇼가 고개와 몸을 돌려 문쪽을 바라보며) 나가자. 나가자.

- 바버라 킹, ‘나…나…워쇼: 감사의 말’, <수화 연구>에서 재인용

진공 상태처럼 실험자는 실험실을 통제하려 하지만, 동물은 수동적인 객체가 되지 않는다. 저항하고 상호작용한다. 동물과 얽히면서 인간도 혜안을 얻고 성찰에 이른다. 이 때문에 이번 거울실험 참여자들은 오랑우탄 보라, 보석, 보람의 행동은 물론 이들을 거울 앞에 ‘몰아넣은’ 기자, 감독, 촬영 스태프, 연구자, 사육사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조밀하게 담고 있다. 카메라를 든 박성호 감독은 “오랑우탄은 가만히 있는데 사람이 변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렇게 제작한 단편 다큐멘터리로 동물에 대한 비전을 얻는 것이다.

거울과 자의식이 무슨 관련 있다고?

자의식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말도 없다. 인간을 포함해 동물이 자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 1970년 침팬지 거울실험으로 동물 자의식 논쟁의 장을 연 고든 갤럽 뉴욕주립대 교수는 ‘경험에는 두가지 단면이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당신이 대낮의 거리에서 누군가와 키스를 한다고 상상해보라. 첫번째 단면은 사랑에 빠져 키스를 하는 것이다. 두번째 단면은 키스하는 나를 바라보는 타인들의 시선이 개입되는 것이다. 우리는 두가지 단면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즉, ‘경험하는 것’과 ‘경험하는 자신을 (자동적으로) 의식하는 것’이다. 갤럽 교수는 자의식이란 “자신을 세계 속에서 하나의 객체(대상)로 응시할 수 있는 것”이라며, 여기에는 ‘시간적 연속성’과 ‘행위주체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덧붙인다.(1998년, ‘자의식과 사회적 지능의 진화’) 즉, 당신의 관심이나 태도, 가치 등은 과거나 미래의 어느 때이든, 어떤 상황에서든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면서 자신의 행동과 그 결과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발달심리학에서는 거울 인지를 이런 자의식 형성의 표징으로 본다. 인간은 대개 18~24개월 때 거울 속 이미지를 자기로 인식한다. 그러나 대다수 동물은 다른 개체를 만난 것처럼 행동하거나 무관심하게 반응한다. 다른 개체처럼 대하는 것을 ‘사회적 행동’이라고 한다. 생전 거울을 본 적이 없는 침팬지는 다른 침팬지인 줄 알고 위아래로 뛰거나 소리를 지른다. 그러나 거울 노출 기간이 길어질수록 사회적 행동은 줄어들고 자아인식 행동이 늘어난다. 코를 후비고 성기를 보고 몸치장을 한다.

 

‘거울실험 합격증’ 발급하려고?

그것만은 아니다. 동물에게 자의식이 있다면, 켜켜이 쌓인 성격과 태도도 거울 앞에서 드러날 것이다. 1953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에서 태어난 오랑우탄 ‘수마’는 독일의 오스나브뤼크 동물원에서 거울 앞에 섰다. 영장류학자 프란스 더발은 <내 안의 유인원>에서 “수마는 샐러드와 상추 잎을 가져와 차곡차곡 쌓은 다음, 전체 더미를 머리 위에 얹었다. 그렇게 거울을 쳐다보면서 수마는 야채모자의 위치를 조심스럽게 바로잡았다. 그 모습을 사람들이 보았다면 수마가 결혼식에라도 참석하는 줄 알았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물론 과학계에서 거울실험 방법론은 어느 정도 확립되어 있다. 주변 환경의 교란 요소를 최대한 억제시킨 뒤 개체 단독으로 거울 앞에 노출시킨다. 방송 다큐멘터리 등에서는 자아인식 행동을 포착하고 끝나지만, 과학적 방법론을 따른다면 일정 기간 반복적으로 노출시켜 사회적 행동과 자아인식 행동의 빈도의 변화를 측정하는 게 정석이다. 이번 거울실험은 오랑우탄 보라, 보석, 보람이 ‘협조하는’ 한 과학적 방법론을 따르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 집 강아지도 궁금해

기존 연구에서 합격증을 받은 동물은 인간과 진화적으로 가까운 사람상과 유인원(Hominidae·침팬지, 보노보, 고릴라, 오랑우탄)이었다. 또한 바다에서 가장 진화한 동물로 평가받는 돌고래(다이애나 리스, 로리 마리노의 연구)와 지능과 공감 능력이 뛰어난 코끼리(조슈아 플로트닉 등의 연구)가 뒤를 이었다.

일단 영장류를 보자. 왜 침팬지는 거울을 보는데, 일본원숭이는 못 볼까? 일본의 영장류학자 이노우에(나카무라) 노리코는 과거 영장류 열두 종에게 진행된 거울실험을 분석했다. 1997년 논문 ‘비인간 영장류의 거울실험: 계통론적 접근’에서 그는 거울 앞에서의 행동을 네가지로 재분류했다. 첫째, 사회적 행동(소리지르기, 입으로 치기), 둘째, 거울 검사(물체에 대한 조사), 셋째, 즉흥적 반복행동(거울을 보며 손 흔들기, 상체 움직이기 등), 넷째, 자신을 지시하는 행동(거울을 보며 이빨 관찰, 앞머리 치장 등) 등이다. 사회적 행동과 거울 검사, 그리고 즉흥적 반복행동은 한두 종을 제외하곤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을 지시하는 행동에서는 사람상과 유인원과 다른 영장류를 갈라놓는 루비콘강이 흘렀다. 원숭이 여덟 종은 거울을 통해 자신을 보지 못했다. 이노우에는 “거울실험은 영장류의 진화적 분기점을 추측해볼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당신의 집 강아지는 거울을 볼 수 있을까? 아쉽게도 못 볼 것이다. 펄쩍 뛰거나 킁킁거리고 가끔씩 거울 뒤로 가서 ‘거울 검사’만 할 가능성이 크다. 재밌는 가설이 있다. 알츠하이머 환자들이 거울 인식을 못 하는 경우가 있는데, 캐나다 의과학연구소의 크리스티나 시왁은 우측 전두엽의 기능 상실이 개에게 똑같이 작용한다고 주장한다. 어쨌든 거울실험은 시각 중심의 동물에게 여섯집 반을 주고 시작하는 바둑과 같다. 후각에 기대어 세상을 살아온 개에게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2008년 독일 괴테대의 헬무트 프리어 등에 의해 유럽까치가 자아인식 행동을 보인다는 게 밝혀지면서, 동물의 자의식에 관한 논쟁의 지평은 더 넓어지고 있다.  

‘실험’이라고 하니 무서워

거울실험은 주사나 약품을 쓰는 신약 실험과 전혀 다르다. 과거 마킹 테스트(몰래 물감으로 칠하고 거울 반응을 봄)를 위하여 마취제를 쓰기도 했지만, 이번 실험에서는 처음부터 배제했다. 낮에 머무는 전시실 내부에 거울을 설치하고 한마리씩 카메라를 통해 행동을 지켜보는 게 실험의 전부다. 또한 오랑우탄의 일상을 침범하지 않기 위해 일주일에 최대 세차례, 1회당 노출 시간을 두시간 이하로 제한했다. 안전하면서도 훼손되지 않는 거울을 찾느라 여러 차례 부착과 탈착을 반복했다. 최근 들어 논휴먼라이츠프로젝트 등 미국 동물보호단체는 거울실험으로 드러난 동물의 인격성을 들며, 이와 관련해 논의되는 동물부터 전시·공연과 동물실험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번 실험을 모니터링하는 동물자유연대의 조희경 대표는 “인권을 소중하게 여기는 근간은 인간이 자아적 존재이기 때문이듯, 거울실험이 자아를 인식하는 존재를 착취하는 것은 노예를 부리는 것과 다름없다는 인식을 제공해주었다”고 말했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한겨레 토요판, 독립영화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인 ‘펀딩21’이 함께 오랑우탄 거울실험을 진행하고 단편 다큐멘터리를 제작합니다. 여러분도 거울실험에 참여해주세요. 후원하신 분들에게 다큐멘터리에 이름을 실어드리고 상영회 초대권, 동영상 파일 등을 제공합니다.

- 후원: 펀딩21 funding21.com

- 실험 진행 과정: 비인간인격체 프로젝트 facebook.com/nonhumanperson

- 후원자(11월20일 오전 현재)

어쭈&쭈리 Coco 이영란 김보협 강형구 JInsook 조도노니 김정호 최경희 연세대학교 공과대학 최헌진 남혜진 Hyeeun Nam 이인자 김창경 이유나 음성원 민순남 이상윤

default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동물 #환경 #영장류 #비인간인격체 #오랑우탄 #거울실험 #거울실험 프로젝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