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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와 베이루트에 대한 우리의 ‘감정이입 격차'를 심리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

지난 금요일에 파리에서 최소 129명이 죽고 352명이 다친 끔찍한 테러가 일어난 뒤, 전세계는 다 함께 비통함과 애도를 나누었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프랑스에서 최대 살상 사건인 이번 테러는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슬픔, 분노, 연대를 불러 일으켰다. 인터넷에서 페이스북은 유저들의 프로필 사진에 프랑스 국기를 덧씌울 수 있게 했으며, 파리에 사는 사람들의 안전 확인 기능도 넣었다. #PrayforParis, #StayStrongParis 등의 해시태그가 소셜 미디어에서 들불처럼 번졌다. 전세계에서 촛불 집회가 열렸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런던 아이, 도쿄 타워 등 전세계 유명 건물에 파랑, 하양, 빨강 불이 켜졌다.

곧 세계인들은 다른 기도도 요구하기 시작했다. 파리 뿐 아니라 전세계를 위한 기도였다. 델리의 블로거 카루나 에자라는 인스타그램에 “파리 테러가 일어나기 겨우 이틀 전에 베이루트가 폭탄 테러로 힘겨워하고 있는데 매체에는 나오지 않는 게 우리의 세상이다. 바그다드의 장례식에서 폭탄이 터져도 그 누구의 상태 업데이트에도 ‘바그다드’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 세상이다.”라고 썼다.

레바논의 의사 엘리 파레스는 블로그에 이렇게 썼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죽었을 때는 그 어떤 나라도 우리 국기 색깔로 유명 건물에 조명을 쏘지 않았다.”

그렇다. 평범한 페이스북 피드나 뉴스 사이트를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시 IS가 저지른 비슷한 비극이 단 하루 전에 베이루트에서 일어나 40명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고 239명 이상이 다쳤다는 사실들을 모르고 있다. 금요일에 바그다드의 장례식에서 폭탄이 터져 18명이 죽었다는 것에는 그보다도 관심이 적었다.

끔찍한 테러가 일어난 뒤인 지금, 레바논 사람들은 “우리 국기는 어디 있지? 우리 페이스북 안전 체크는 어디 있지? 우리의 연대는 어디 있지?”하고 묻고 있다.

국제적 반응에 차이가 있었다며 인종주의와 서구 편향을 언급한 사람들이 많았다.

이것은 편향이다. “미국인들 대부분은 지도에서 레바논을 찾지도 못한다.” 스탠포드 연민과 이타주의 연구 및 교육 센터의 과학 책임자인 스탠포드 대학교의 심리학자 엠마 세팔라의 말이다.

이런 편향은 어디서 오는 걸까? 우리가 어떤 세계적 위기에는 연민을 보이고, 다른 위기는 일어났다는 것도 잘 모르는 이유를 심리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세팔라는 이런 ‘감정이입 격차’가 일어나는 이유는 우리와 비슷하다고 느끼거나 익숙한 장소와 사람들, 우리가 더 자세히 아는 상황과 피해자들에게 영향을 주는 재해에 더 연민을 느끼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연구에 의하면 우리는 우리와 비슷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더 느낀다. 파리에 다녀온 사람들이 많고, 금요일 밤에 미국 밴드가 공연하는 콘서트 홀에 가는 건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내 자신이 그 현장에 있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파리에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다양하다. 여러 가지 면에서 베이루트보다 우리와 더 비슷하다.” 세팔라가 허핑턴 포스트에 말했다.

프랑스인들이 미국과 더 비슷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미국인들이 많다는 이유만은 아니다. 프랑스의 영향이 매체와 문화적 노출을 통해 미국인들에게 훨씬 더 잘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차이는 뚜렷하다. 매년 160만 명의 미국인이 파리를 방문하는 반면, 2013년에 베이루트가 아닌 레바논 전국을 방문한 외국인은 총 130만 명이었으며, 그 중 미국인의 비율은 높지 않다(한국은 비율의 차이가 훨씬 더 높다).

미국인들이 파리에 연관성을 느끼고 좋아하는 것을 설명하는데 이 사실이 도움이 된다. 그리고 베이루트의 문화와 사람들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 부족은 일종의 심리적 거리를 만들어, 베이루트의 비극의 피해자들에 대한 연민을 느끼기 힘들어 하는 사람이 많아진다.

하지만 우린 이걸 바꾸기 위한 행동을 할 수 있다. 매체 보도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왜 우리 대부분은 베이루트보다 파리를 더 친숙하게 여길까? 베이루트에서 죽은 사람들에 대한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이야기를 더 많이 읽거나, 레바논 영화와 책을 통해 문화 교류를 더 했다면 지금처럼 격차가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베이루트와 바그다드에 대한 국제적 반응이 적었던 또 다른 이유를 심리학자 데이빗 로페익은 ‘통계적 무감각’이라고 부른다. 이름 모를 여러 사람들의 문제보다 개인의 문제에 더 신경을 쓰는 우리의 성향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느 연구에 의하면 사람들은 아이 8명을 구하는데 5달러를 기부하는 것보다 아이 1명을 구하는데 11달러를 기부하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우리는 중동에서의 폭력적 충돌을 평범한 일로 보게 되었고 둔감해졌다. 베이루트의 폭탄 테러가 25년 전에 끝난 내전 이래 최악의 살상 사건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파리의 사건에는 그토록 관심을 가지면서도 시리아 난민 위기의 엄청난 인명 피해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도 이것으로 설명된다.

“진짜 인간 한 명, 그리고 크지만 추상적인 숫자를 비교했을 때, 숫자는 똑 같은 감정적 힘을 결코 갖지 못한다. 하나의 죽음이 언제나 백만 명의 죽음보다 더 마음을 움직인다. 이 ‘인류의 근본적 결함’은 인간이라는 동물의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로페익이 오늘의 심리학 저널에 쓴 내용이다.

고통 받는 모든 이들을 위한 공감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세팔라는 우선 우리 자신의 세계적 사건들에 대한 상정과 반응을 더 의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무언가에 압도당했을 때 대상을 비인간화하거나 아예 귀를 닫아버리는 경향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우리는 이런 경향을 의식하고, 그게 테러리스트들이 우리에게 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의식해야 한다. 테러리스트들이 빠진 게 이런 덫이고, 우리가 덫에 빠지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모든 테러의 피해자들은 다 유일무이한 개인들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프랑스인이든, 이라크인이든, 레바논인이든, 어느 나라 사람이든 말이다. 로페익은 테레사 수녀의 말을 인용한다. “내가 군중을 본다면 나는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한 사람을 본다면 행동할 것이다.”

허핑턴포스트US의 Explaining The 'Empathy Gap' In Our Reactions To Paris And Beirut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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